행복 목욕탕
동네에, 집 가까이 대중사우나가 오픈했다.
날씨도 쌀쌀하니 뜨끈한 욕탕에 몸을 담그기도 딱 좋다. 아들과 남편은 남탕, 나는 여탕으로, 각자 목욕을 마치고 재회했다.
앞서, 나는 두 사람을 입욕장에 먼저 들여보냈다. 그 직후, 문득 타월을 제공해 주는지를 접수 카운터에 물었다. 타월을 1인당 2장 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심했었음을 두 사람에게 말했다.
“남탕에는 쌓여 있어.”
“2장씩 나눠 받았어?”
“아니, 그냥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던데. “
그래, 남탕과 여탕은 (애초에) 다른 곳이지. 대중사우나 이용 횟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남탕과 여탕의 운영방식에 차이가 있었음을 모르지 않았다.
새삼 그 사실을 깨닫고 탕 온도는 어땠는지 물었다. 개인적으로 남탕과 여탕 문화의 차이를 아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워서다.
여탕은 열탕 42도, 온탕 37도, 냉탕 얼음온도였다. 이마저도 남탕은 달랐다. 열탕이 고온이라서 아들은 견디지 못하고 온탕에 머물렀는데, 온탕 온도도 40도 정도였다. 더구나 내부에 김이 자욱해서 노천온천에라도 간 듯했다고 덧붙였다. 나는 의아해했다. 여탕에도 동일하게 습식사우나가 있었다. 수증기를 뿜어 대던 상황까지는 같았다. 그러나 밖으로 빠져나온 수증기는 곧 사라졌고 입욕 중에도 김이 자욱한 적이 없었다. 시야는 또렷했고 나를 비롯한 입욕객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안구에 들어왔다.
나는 직원으로부터 오픈서비스로 헤어드라이기 이용료 100원을 지원받아 두발을 거의 다 말렸다고 자랑했다. 남편은 혀를 찼다. 남탕은 헤어드라이기가 무료였다고 안타까워했다. 어찌하여 유료일 수 있지, 이런 눈빛을 보이자, 이에 나는 어찌하여 무료일 수 있지, 이런 눈빛으로 화답했다.
여탕은 금남의 구역이고, 남탕은 금녀의 구역이다. 여자는 남탕을 모르고, 남자는 여탕을 모른다.
그래서 서로의 입욕장 문화를 소개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나는 입욕을 마치고 나오면 남편에게 남탕이 어땠는지 물어본다. 남편이 본 남탕은 그저 조용히 자신만의 입욕을 즐기는 손님들의 고독한 공간이었다. 건습식사우나 안에서 펼쳐지는 스몰토크가 있는지도 물었다. 남편은 여의도나 출장길에서도 종종 사우나를 이용했지만, 대부분 나신의 손님들은 서로를 응시하지 않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고 회상했다. 게다가 어차피 남편은 극도로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서 사우나에서도 안경을 쓰고 있어야 해서, 안경에 김이 거리면 누가 누군지 잘 보이지도 않고 대화를 나눌 거리도 없다고 했다.
나는 이야기를 다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흥미로웠다. 남탕의 세계는 진중했다. 엄숙하기는 했지만, 서로의 시간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가 예의 바르고 성숙했다. 자, 이제 여탕 이야기를 풀어볼까. 내 혓바닥은 입맛을 다셨다. 버터를 머금고 있던 것처럼 매끄럽고도 눅진하게 움직였다.
우선 남탕에는 없는 특징을 정리해 보려고 눈동자도 굴렸다. 여탕에 들어가면 벽면에 때밀이, 쑥뜸, 실면도 등 유료서비스를 홍보하는 엉성한 전단지가 붙어 있다. 먼저 전단지에게 입장 인사를 올리듯 들어서면, 잠든 유료 헤어드라이기를 내버려 두고 무료 선풍기로 전신을 말리는 손님을 목격할 수 있다. 수건은 1인당 2장을 배급해 주는 곳이 대부분이다. 자주 다녔던 대우미래사랑, 스포렉스도 그랬다.
수건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 2장을 다각도로 응용하여 입욕을 즐기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대우미래사랑에 달목욕을 큰맘 먹고 결제하고 줄기차게 다녔던 지난날이었다. 분명 수건 배급은 2장이었을 텐데, 어째서인지 한 손님이 욕장에서 3장을 쓰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머리에 두른 수건은 지참해 온 개인 물품이었다. 색상이 흡사하여 착각할 뻔했는데, 사실 그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대우미래사랑 사장님이 지급한 수건 2장으로 하나는 브래지어, 하나는 팬티로 접어 입은 것이었다. 그는 지참해 온 방석을 탕 난간에 깔고 앉아 종아리까지만 탕에 담그고 있었다. 한 손에는 커다란 텀블러를 들고 맞은편 손님인지 친구와 화담을 나누는 사이사이 입에 대고 뭔가를 마셨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돌아다니는 내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만큼, 그는 그 어떤 망설임도 없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 손님의 행동은 참신했다. 확실히 그랬다.
그 후 여러 번 사우나를 다녔지만, 그와 같은 수건 활용방식을 보여주는 사례를 만나지 못했다. 한 장은 머리에 두르고 입욕을 즐긴 후 나머지 한 장으로 몸의 물기를 닦는 경우가 흔했다. 한 장을 베개로 삼고, 나머지 한 장으로 몸을 덮고 자는 사람을 보기는 했지만, 역시 위아래로 옷 한 벌을 해 입은 사례는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새로 생긴 사우나의 탕은 그다지 큰 편이 아닌데, 굳이 탕 안에서 스트레칭이나 물장구(킥) 연습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어떤 각도로 탕에 들어가서 앉아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한 사람은 탕 한쪽 면을 다 차지하도록 수평으로 다리 찢기를 시도하고 있었고, 반대편 모서리에서는 어슷한 자세로 발장구를 쳤다. 나는 남은 모서리에 몸을 구기고 들어가 앉았다. 다리 찢기를 하던 사람이 눈을 스르르 감고 잠드는 과정을 지켜봤다. 다리를 찢은 채로 잠들면 어떤 기분일까. 몸이 뻣뻣해서 다리를 찢어본 적이 없어서 아픈지 어떤지 모르겠다. 도무지 모르겠다.
한때 자주 갔던 스포렉스 여탕 입욕장 벽면에는 ‘사적대화 금지‘, ’ 자리 맡기 금지‘, ‘샤워하고 머리 감고 탕에 들어가기’ 규칙이 붙어 있었다. 사적대화 금지는 아마도 코로나시대의 흔적일 텐데, 지금껏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여전히 필요한 규칙인 듯했다. 샤워부스 위에 ‘자리 맡기 금지‘가 붙은 이유는 대강 짐작이 간다. 자리 맡기 중 싸움이 일어나는 장면도 왕왕 봤다. 그다음, ‘샤워 후 입욕’에 대한 강조문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샤워 후 입욕을 완강히 반대하는 입장도 있는 것 같다고, 이제는 나도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머리를 감고 입욕하는 것을 거부하는 이유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러므로 나는 그러한 광경을 보더라도 두 눈을 감고 사색에 잠긴다. 혹 그들의 일탈(?)이 발각되는 날에는 반드시 어떤 일침이 들려올 것이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도 조금 해둔다.
수영장 샤워장처럼 협소한 곳에서는 이러한 일탈이 용인되지 않는다. 정오가 안 될 무렵, 고령의 할머니들과 자유수영을 마친 어떤 날. 비좁은 샤워장에서 순서를 기다리면서 인테리어를 둘러봤다. 샤워장을 만들 계획이 아니었고, 초콜릿 시럽이나 안 팔린 be the reds 티셔츠를 눌러 담은 박스더미를 쌓아두기 좋은 공간을 설계하고자 한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좁다란 기역자 샤워장에 서 있으면, 남이 씻는 것을 안 보기 위해 온갖 상상을 하며 천장에 맺힌 물방울과 눈싸움을 해야 한다. 그런데 한 할머니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샤워를 안 하고 들어가면 어떡해?!.”
내 가슴은 철렁했다. 할머니들이 일제히 일침이 비어져 나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큰일이다.
“누가 샤워를 안 했어? “
“아니, 그게 말이야. 이 아가씨가 샤워를 안 하고 그냥 들어가려고 하잖아.”
“뭐?”
“샤워하고 수영복 입어야지.”
“아가씨, 샤워 안 했어?”
“아… 집에서 씻고 와서요.”
사실일 테지만, 기다란 기역자 샤워장을 지나야 수영장에 들어갈 수 있는 구조상, 누구나 냉혹한 샤워의 검열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탈의실에서 수영복, 물안경, 수모를 장착하고 보송보송한 얼굴로 지나가려고 하다니, 터무니없는 작전이었다.
할머니들의 총공격이 이어졌다.
“집에서 씻고 와도 여기서는 다시 씻어야지.”
”아…“
“샴푸랑 다 갖고 왔어?”
“아…”
“머리도 안 감고 들어가려고 했어?”
“그러면 안 돼. 다 같이 쓰는 덴데.“
“오기 전에 감았다고 해도, 여기 올 때 다시 땀나는데.”
“그럼, 수영하기 전이랑 하고 나서, 꼭 씻어야지.”
“더러워. 안 돼.”
“아… 정말 씻고 와서요.“
“머리 감은 거 맞아?”
“수영복 벗고 빨리 씻어.“
알몸으로 무장한 할머니들은 거침없이 비판의 화살을 쏘았다. 눈동자와 입술이 쉬지 않고 움직였고 그 와중에 두 손으로 자기 몸 구석구석을 씻었다.
젊은 여성은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탈의실로 뒷걸음질 쳤다.
용기 있게 샤워도구를 빌려주겠다고 나서지 못한 내가 원망스러웠다. 미안하네, 젊은이.
이런 일을 목격한 적이 있어서일까. 할머니들의 주장도 이해는 가지만, 너무 몰아세우면 손님이 달아난다.
대중탕 수가 줄었다. 남은 곳이라도 성업하기를 바란다. 그런 뜻에서 조금 미숙해도 이해해 주는 아량 넘치는 입욕 문화를 추구하고 싶다. 결국 우리 모두 깨끗해져 돌아갈 것이므로, 머리 안 감는 사람을 오늘 하루 눈 감아 주는 세상이 되기를 조심스레 희망한다. 물론 감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샴푸가 모자라거나, 건선이 심해서 머리를 두 번 감기가 고통스러운 사람도 있을 수 있는 법이니.
푸근한 목욕탕 온기처럼 얼어 붙은 마음을 녹이는 사회를 이룩합시다(?). 마무리를 위한 혼잣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