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근날, 엄마와 함께 먹었던 묵밥.

-엄마와 나의 출근길을 회상하다.

by 코알라

여름 철 입맛 없을 때마다 엄마가 만들어 주었던 별미 중의 별미 묵. 밥.

남동생은 무슨 맛으로 먹냐며 묵밥을 좋아하지 않지만, 담백한 멸치 육수, 탱글탱글한 묵, 짭조름 한 김가루가 한가득 내 입에 들어올 때의 그 몽글몽글함을 사랑한다.


회사 근처 칼국수로 유명한 식당에서 왠지 면이 땡기지 않아 먹게 된 묵밥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냉과 온, 선택이 가능했던 묵밥이었는데 온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맛은 동일하게 끝내줬다.

게다가 가격도 5,000원으로 아주 저렴했다.

퇴사 후 회사 근처는 쳐다도 안 본다 다짐했지만, 이 묵밥을 먹으러 일부러 찾아갔던 적도 있다.


"묵밥 어때?"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6월, 입 맛도 없는데 뭘 먹을까 고민하던 엄마의 입에서 나온 '묵밥'이라는 단어에 특근 날 엄마와 함께 출근했던 옛 추억이 떠올랐다.




10년도 더 된 듯하다.

딱 한 번 엄마와 함께 회사에 출근했던 적이 있다.

육아휴직 예정이었던 인사총무팀 대리님의 추천으로 품질팀에서 인사총무팀으로 입사 4년 차에 부서 이동을 했었다.

사실 입사는 인사총무팀으로 했지만, 입사 한지 6개월 만에 품질팀으로 강제적 부서 이동을 했다가 3년 만에 다시 인사총무팀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때는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까라면 깠던 순진무구한 시절이었다.


당시에 돌고 돌아 다시 인사총무팀으로 온 나를 모두 축하해 주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품질팀에 쭉 있었다면 노사분쟁이니 소송이니 압수수색이니 이런 별스런 일을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번아웃의 경험 없이 지금도 여전히 회사에 다니고 있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입사 4년 차에 새로 시작하게 된 직무에 대한 어려움과 불안감에 월 마감 기간이 되면 평일 야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출근을 했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시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어느 토요일 아침.

월 마감 업무를 하기 위해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날도 따사로이 좋은 날 집에만 있는 게 심심하다며 금방 끝나는 일이면 회사에 함께 따라가고 싶다 했다.


우리 회사에서 차로 10분 정도 가면 있는 송해 공원과 용연사 벚꽃길이 꽤 유명했는데, 엄마도 예전에 친구들과 놀러 갔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뭐 어렵다고? 오늘 다른 직원들은 출근도 안 할 테니 같이 가자!"


경비실에 간단히 엄마를 소개하고 함께 사무실로 들어왔다.

나는 일을 했고, 엄마는 맞은편 박 대리 자리에 앉아 열심히 맞고를 쳤다.


"끝나가니?"

맞고를 치며 4시간 정도를 버티던 엄마에게 한계가 온 건지, 잠시 눈치 보다 나에게 말을 걸었다.


"지겨워?"


"아이고, 지겹네. 앉아만 있었더니 허리도 아프고, 근데 얘는 자리가 왜 이렇게 지저분하니?"


"그 정도면 양호한 거야. 사실 내 자리는 더 지저분 해."


"어휴, 이렇게 지저분한데 일이 되긴 되니?"


"지저분해야 일이 더 잘되는 몰라?"


나도 마침 배가 고파오기도 하고, 내일 와서 마무리 지어도 될 만큼의 일만 남아있던 터라 슬슬 일을 마무리했다.


"배 고프지? 용연사 가는 길에 묵밥 맛있게 하는 식당 있는 데 갈래?"


"묵밥? 엄마 묵밥 완전 좋아하잖아! 그래 거기 가서 밥 먹고 벚꽃 구경하러 가자."


묵밥 얘기에 신나 하는 엄마를 보니, 엄마와 특근날 회사에 오기를 잘했다는 뿌듯함이 들었다.


평일 점심시간엔 대기가 당연했는데, 주말의 이곳은 비교적 한산했다.

따뜻한 묵밥 2개를 주문하고 5분 정도 지나자, 드디어 묵밥이 모습을 드러냈다.


"맛있게 생겼다, 냄새도 죽이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는 묵밥과 스르르 녹아들어 가고 있는 김가루들을 보며 엄마가 들떠했다.


"김치도 어쩜 이렇게 맛나니? 적당히 쉬었네."


"여기, 칼국수 맛집이라 김치도 맛있어. 칼국수도 한 그릇 시켜볼까? 맛볼래?"


"어휴, 묵밥만 먹어도 배부르다. 다음에 와서 칼국수 먹어보자."


"다음? 엄마 또 나 따라 회사 오게? 지겹지 않아?"


"좀 지겨운데, 다시 오고 싶을 만큼 맛있네 여기."




엄마와 밖에서 밥을 사 먹고 돌아오는 길엔 늘 말싸움을 했었다.

"비싸기만 하고 맛이 없네."

"짜지 않니?"

"내가 만든 게 더 맛있어. 이런 걸 이 가격에 팔다니..."

사준 사람 성의는 생각지 않고, 혹평만 하는 엄마가 미워 나도 지지 않고 반박했었다.


"엄마! 기분 전환도 할 겸 나왔는데, 꼭 그렇게 초를 쳐야 해?"

"다음부터는 다신 엄마랑 외식 안 해!"

"그냥 맛있었다고 하면 어디 덧 나? 난 맛있고만!"


나중에야 엄마가 속 마음과는 반대로 말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게 되었다.

사실은 오랜만의 외식에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는 것을,

사실은 대개 맛있었다는 것을,

그렇지만 자식 주머니에서 돈 나가는 게 마음에 쓰여서 반대로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담백하니 묵밥이 아주 맛나네. 다음에 또 오자."

"가격이 싸서 더 마음에 든 거지?"

"그렇지."


"그래! 다음에 또 오자. 그땐 한 그릇은 먹고 가고, 한 그릇은 포장해 가자. 그래도 만 원이야!"


"그래, 바람도 쐴 겸 또 오자."


하지만 그 후로 엄마와 함께 출근하는 특근 날은 없었다.

3~4시간으로는 도저히 마무리되지 않을 일들이 넘쳐났기 때문에, 엄마를 데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퇴사일 보름 전,

감기가 심해 조퇴를 하려는 데 비가 오던 날이었다.

내리는 비를 보니 뜨끈한 묵밥이 생각났다. 묵밥이 생각나니 덩달아 엄마도 생각났다.

퇴사하면 언제 또 오나 싶어 가는 길에 일부러 들러 묵밥 2인 분을 포장했었다.


"내려가서 외할머니랑 같이 먹어야겠다. 넌 약 먹고 쉬고 있어."

아파서 일찍 퇴근한 내 손에 들린 '묵밥'을 낚아채 듯 들고, 엄마는 1층 외할머니에게 달려 내려갔다.

친구들과 맛있는 걸 먹고 있노라면 엄마가 생각나듯, 엄마도 외할머니가 생각났나 보다.



"비 오니까 묵밥 생각난다. 그 묵밥 맛있었는데."

출근 준비를 하던 엄마가 새벽부터 내리고 있는 빗소리에 '그 묵밥'을 추억했다.

아마 '그 묵밥'이라 함은 특근 날 나와 함께 먹은 '그 묵밥'인 듯하다.


"언제 한 번 먹으러 갈까?"

"뭐 하러! 회사 근처까지 가서 5천 원짜리 묵밥을 사 먹어! 됐어! 해 먹으면 되지."


치를 떨며 퇴사한 건 나인데, 나보다 더 우리 회사를 싫어하게 된 엄마는 '회사'라는 단어만 들어도 버럭 한다.

그리고, 엄마 얘기 꺼낸 건 엄마인데.


엄마! 나 괜찮아!
그러니 나랑 먹었던 따뜻한 묵밥을, 행복했던 그날까진 잊지 말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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