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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Jul 05. 2023

26살 점장이 울면서 공황장애를 고백했다.

-아직 우린 갈 길이 멀어, 그러니 쉬었다 가자.

 "점장님~ 오랜만이야! 잘 놀다 왔어?"

 "네~ 너무 잘 놀고 왔어요."


 지난주 점장이 5일간의 휴가를 마치고 출근했다.

 농담도 한두 마디 하는 걸 보니, 마음이 많이 좋아진 듯하다.


 5월 말 점장인 사촌동생의 퇴사로 매니저였던 성실한 H가 점장으로 승진하면서 매니저 2명을 새로 뽑았다.

 인수인계받은 점장 업무도 익혀야 하고, 매니저 교육도 해야 하는 뒤숭숭한 6월에 H는 갑자기 휴가를 요청했고 사장인 남동생은 거절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더 H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실한 H와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어서.




 6월 1일 목요일, 비교적 한가한 날이었다.

 1시, 직원들만 사용하는 뒷문이 열리길래 누군가 했더니 점장이었다.


 "어? 점장님!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30분이나 일찍 왔네?"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점장의 목소리가 예전과 다르게 가라앉아 있었다.


 "버스가 일찍 왔어? 너무 일찍 왔는데?"

 "......"


 먼저 말을 걸진 않지만, 묻는 말엔 다정하게 대답하던 점장이 아무 말이 없었다.

 말하기 싫은 그런 날인가 싶어 더 이상 말 걸지 않으려 자리를 피해 젤라또 정리를 했다.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점장이 약봉지를 뜯으며 매장 쪽으로 나오더니 물과 함께 약을 먹었다.


 "어디 아파? 감기야?"


 "아니요..."


 '아~ 아파서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 거였구나.'

 

 "저... 할 말 있어서 조금 일찍 왔어요."


 회사에서 누군가 나에게 '할 말이 있다'라고 하면, 퇴사한다거나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서 덜컥 겁이 났다. 

 '그만둔다고 하면 어쩌나? 지금 얘 말고 능숙하게 일할 직원이 하나도 없는데.'

 몇 초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겉으론 티 내지 않았다.


 "응? 뭔데? 얘기해 봐."


 "저... 사실은..."
얘기 시작하기도 전에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갑자기 점장이 펑펑 울기 시작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천천히 얘기해 봐."

 

 "사실... 점장님이 뒤에 있어서..."


 "뒤에 든든하게 있어줬는데 없어서 불안하다고? 혼자 할 거 생각하니까 걱정되고 불안해?"

 성질 급한 나는 천천히 얘기해 보라고 해놓고 기다려주지 않고 뒷말을 막 갖다 붙였다.


 "죄송해요. 감정 조절이 안돼서... 갑자기 눈물이 멈추지 않아요."


 "괜찮으니까, 천천히 얘기해 봐. 울어도 돼."


 "사실 점장님이 뒤에만 있었거든요. 계속."


 "응? 뒤에만?"


 "네, 아무리 바빠도 뒤에서 앉아서 폰만 하고 도와주지 않았었어요."

 점장은 막상 말하고 나니 더 서러워졌는지 감정이 북받쳐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할 정도로 오열했다.


 여기서 '뒤'라 함은 직원들만 다니는 뒷문 쪽 냉장고와 냉동고, 개인용품 보관함이 있는 좁은 공간으로 의자가 놓여 있어, 손님이 없거나 잠시 쉬고 싶을 때 그곳에서 쉬곤 한다.


 "한 날은 너무 바빠서, 도저히 혼자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도움을 요청하러 뒤로 갔는데 아예 점장님이 안 계셨어요. 그리고 매일 늦게 오셔서, 교대도 늦어지고... 점장님이 그만두고 나니 그런 것들이 더 막 생각이 나면서 이상하게 감정이 주체가 안 돼요."


 사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사촌동생이 제시간에 출근하는 걸 본 적이 없긴 했다.

 사촌동생은 가게 주변에 주차 공간이 부족해 길가에 차를 대곤 했는데, 차 빼달라는 전화도 자주 왔고 핑계 삼아 나가선 꽤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곤 했다. 

 이놈의 자식! 이따구로 일해놓고 사장욕을 그렇게 했던 건가!

  

 "그랬구나... 그런 일이 있었구나... 몰랐네... 그럼 사장님한테 얘기해보시 그랬어... 혼자 끙끙대지 말고."


 "얘기를... 못하겠더라고요."


 "한 두 번이면 괜찮지만, 그런 일이 반복된다는 건 엄연한 근무태만이야. 

 당연히 얘기를 해서 개선시켜야 하는 부분이었는데... 어휴... 하기사 말이 쉽다. 

 입이 잘 안 떨어졌을 네 마음도 이해가 된다만..."

 


 "그래서 사실 아까 먹은 약이 공황장애 약이에요. 병원 갔더니, 재발했다고..."



 도대체 이 착하고 성실한 아이가 왜 공황장애를 겪어야 하는 건지 갑자기 화가 났다.

 게다가 재발이라니.


 "누군가에게 얘기를 하고 싶은데, 얘기할 사람이 없어서 사실 좀 일찍 왔어요."


 오죽 답답했으면 간단한 인사와 한두 번의 농담을 주고받은 게 전부인 나에게 이렇게 오열하며 자신의 병을 알리는 건가 싶어 마음이 아팠다.


 "그래, 얘기해 줘서 고마워. 많이 힘들었겠다. 나도 H만큼 심각한 건 아니었지만, 의사한테 비슷한 약을 추천받은 적이 있어."


 "진짜요?"

 울음이 멈추지 않아 꺼이꺼이 하는 와중에도 대꾸는 다 해주는 착한 H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병이야.
특별하게 H에게만 생긴 병도 아니고, 가장 중요한 건 네 탓이 아니라는 거야.
그러니, 자신을 탓하진 마.
나는 내 탓을 했었거든, 왜 이렇게 생겨 먹은 거냐고..."


 "맞아요. 제가 너무 미워요. 이렇게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아서 울고 있는 지금의 저도 싫어요."


 "그리고 앞으론 말을 해야 해. 부당하고 생각하는 반복되는 일들에 대해선. 처음엔 힘들겠지만 연습해야 해. 그러지 않으면 그걸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계속 네 곁에 있을 거야."


 "네, 연습해 볼게요."


 "자!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혹시 그만두고 싶은 거야?"


 "아니요, 그건 아니고요. 며칠 좀 쉬고 싶어요. 감정 주체가 안돼서 계속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기도 하고... 가슴이 계속 쿵쾅쿵쾅 뛰어서, 일을 제대로 못할 것 같아요."


 "그럼, 사장님께 얘기해서 며칠 쉬고 싶다고 한 번 얘기해 봐. 잘 얘기하면 아마 그렇게 하라고 할 거야."


 "네, 이번 주말에 가게 오신다고 하니 얘기해 보려고요."


 "오늘 일 할 수 있겠어? 내가 좀 더 하고 갈까?"


 "아니에요. 얘기했더니 조금 마음이 편해졌어요. 괜찮아요.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래! 우리 1~2년 돈 벌고 말 거 아니잖아? 죽을 때까지 돈 벌어야 되는데, 지금 지치면 안 된다고!"


 "네, 맞아요."


 동생은 어수선한 와중의 휴가 요청이라 당황스러워했지만, 착실하고 성실한 H와 오래도록 일하고 싶어 5일간의 휴가를 제공했다.

 H는 엄마와 함께 강원도 삼척으로 여행을 다녀올 계획이라고 했고 휴가 후 조금 밝아진 그녀를 보니 다행이다 싶었다.


고작 26살인데 무엇이 그녀의 마음을 병들게 했을까? 

나는 한동안 그녀를 걱정했고, 출근한 그녀가 농담 한마디에 방긋 웃어 보이면 안도하며 퇴근했다.




'착하면 손해다.'


살면서 자주 듣던 이 말이 난 정말 싫었다.

착하면 바보로 보는 듯한 사람들의 시선이 싫었고, 착하면 당하게 되어있다는 게 진리인 듯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싫었다. 

그런데 뱅뱅 돌려 말했지만, 결국 나도 '착하면 손해다'라는 말을 H에게 하고 있었다.

'착하면 손해'라는 말에 공감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착해서 내가 받는 손해는 견딜 수 있는데, 

 착해서 손해를 보는 주변 사람들의 아픔은 견디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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