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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Jun 19. 2023

제발 다시 와플 가게로 와주세요!

-나에게 취해있던 그날.

 4월 말에 시작했던 와플 가게 아르바이트가 어느덧 2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와도 예전처럼 겁이 나거나 우왕좌왕하진 않지만, 여전히 '음료와 와플 중 어느 것부터 만들어야 최상의 컨디션으로 제공될 수 있을지'에 대한 잠깐의 '생각할 시간'은 필요하다.


 자신감과 자만심, 그 경계의 순간엔 역시 늘 조심해야 하는 건가?

 어느새 재료 준비도 수월해지고, 인기 있는 와플은 레시피를 보지 않고도 뚝딱뚝딱 만들어 내던 나는 그만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대구의 낮 기온이 30도를 넘나들며 무더위가 계속되는 정오쯤이었다.

재료 준비를 끝마친 나는 가게 앞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자 분주히 이동하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아, 덥겠는데?"라는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그때, 신호등 불빛에 따라 가게 쪽으로 건너오던 대학생 커플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오홋, 손님이닷.'

 살짝 무료했는데, 때마침 찾아온 커플 손님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커플 손님이 주문한 제품은 초코바닐라 젤라또 아이스크림과 딸기 젤라또 와플이었다.

 날이 더워져서 그런지 요즘 들어 젤라또 아이스크림 종류가 많이 나가고 있다.


 주문표에 <매장>이라고 표시된 걸 보니, 가게에서 먹고 갈 모양이다.

 초코바닐라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담을 예쁜 유리컵을 꺼내 들고 냉동고로 향했다.

 냉동고에서 꺼낸 든 초코바닐라 젤라또 플라스틱 컵을 꺼내 들어 예쁜 삼각형 모양으로 아이스크림을 짜냈다.


"주문하신 와플과 아이스크림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남자친구로 보이는 학생이 카운터 앞쪽으로 다가와 내가 건네는 쟁반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보고는 잠시 멈칫했다.


 '응? 왜 저러지?'

 쟁반을 받아 들고 화끈하게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머뭇대는 남학생을 보고 있는데, 연신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임산부 아내와 남편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저... 주문 영수증 다시 한번 보여주실 수 있나요?"

 남학생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전혀 잘못 나간 게 없다는 생각에 당당히 주문 영수증을 보여줬다.


 "뭐가 잘못되었나요?"


 "저... 초코바닐라 젤라또가 저게 맞나요?"


 "아~네네. 맞아요."


 "그런데 초코가 없는데..."


 "아, 바닐라 안에 초코칩이 박혀 있거든요. 그래서 이름이 초코 바닐라 젤라또예요."


 "아... 그런가요?"


 남학생은 정말 그게 맞냐는 듯 의심을 멈추지 않았지만, 자리에 앉아서 내 얘기를 듣고 있던 초코바닐라 젤라또 아이스크림의 주인인 여학생은 "아, 그렇구나. 맞다잖아, 얼른 와"라며 남자친구를 불렀다.


'그럴 수 있지, 착각했을 수 있어. 질문할 수 있지, 자연스럽게 잘 대처했어. 잘했어!'

당황하지 않고 잘 대응한 나 자신을 칭찬했다.

그사이 임산부 아내와 남편의 결제가 끝난 주문 영수증이 영수증 단말기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올라왔다.


'오호~ 또 초코바닐라네? 이번엔 초코바닐라 젤라또 와플이고만!'

아까와 동일한 젤라또를 냉동고에서 꺼내 갓 구운 와플빵 위에 골고루 쌓아 올렸다.


"가끔 와플에 있는 젤라또를 숟가락으로 떠먹는 분도 계시던데, 필요하시면 숟가락 챙겨드릴까요?"


"아 진짜요? 네, 그럼 저도 숟가락 한 개 주세요."


"여기요. 맛있게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훗, 이것이 숙련공의 여유지'

젤라또 아이스크림 떠먹으며 만족스러운 듯 가게를 나가는 임산부를 보며 한 뼘 성장한 나의 모습에 취해버렸다.


"잘 먹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20분 정도 자리에 앉아 와플과 아이스크림을 먹던 대학생 커플도 가게를 떠나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


가게 안에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젤라또 기계 주변을 청소하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바닐라 아이스크림 안에 초코칩이 박힌 건... 바닐라향초코칩이라고 스티커가 붙어있었던 것 같은데...'



"에~ 초코바닐라라는 젤라또를 팔아 본 적이 없구먼... 냉동고에서도 본 적 없는데"

에이 설마라는 마음으로 젤라또 아이스크림이 든 냉동고를 잘 보이지 않는 안쪽 끝까지 샅샅이 살펴보았다.


 "아악!!!!!! 이게 뭐야!!!!"

 깊은 산골 옹달샘 누가 와서 찾아 먹을까 싶을 정도의 아주 구석진 곳에, 살얼음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구석진 그곳에 떡하니 초코와 바닐라가 반반 섞여 들어있는 '초코바닐라 젤라또'가 눈에 띄었다.


저리도 확연히 다른 것을, 나는 왜 섣부르고 단호했을까.




 이것은 변명할 가치도 없는 명백한 나의 실수임이 틀림없었다.

 그것도 두 명의 손님에게 모두 말이다.


 정말 초코바닐라가 맞냐고 되묻는 손님의 말에 다시 한번 젤라또 아이스크림 냉동고를 확인해 보았다면, 그래서 다시 만들어 주었다면 내 실수는 '미수'에 그쳤을 것이다.

 물론, 임산부 손님에게도 제대로 된 '초코바닐라'를 제공했을 것이다.


 그런데 난 왜! 내가 알고 있는 것에 그렇게나 확신하였던 것일까?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신입 주제에!


 "점장님, 제가 오늘 큰 실수를 했어요."


 "예? 뭔대요?"


"초코바닐라 젤라또를 바닐라향초코칩 젤라또로 두 분에게 실수로 드려버렸어요."


"아... 초코바닐라가 한참 구석에 있긴 해서, 잘 안 보여서 모르셨나 봐요."


"혹시 제가 없는 시간대에 그분들이 오시면, 제 실수를 대신 만회해 주실 수 있을까요?"


"네, 그럴게요. 저도 예전에 헷갈려서 잘못 드린 적 있어요. 너무 낙담하지 마세요."


점장에게도, 매니저에게도, 오후 시간대의 다른 아르바이트 생들에게도 아주 신신당부를 하며 그날 내 실수의 희생자였던 손님들에 대한 인상착의를 아주 상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나는 그날 이후 해야 할 일들을 끝내면, 한가하다는 걸 남들에게 자랑이라도 하는 듯 가게 문 앞 근처 자리에 앉아 하염없이 바깥을 보고 있다.

그날의 그 커플이 제발 다시 이곳을 지나가기를.
그날의 임산부가 제발 다시 이곳을 지나가기를.


버선발로 뛰어나가 두 손 꼭 잡고 그때는 내가 미안했노라, 그때는 내가 잠시 나 자신에게 취해있었노라 자진고백하며 정성스럽게 다시 '초코바닐라'젤라또를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니 제발! 다시 와플 가게로 와주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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