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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Jun 14. 2023

손님보다는 직원을 위한 가게 청결.

-뭐든지 처음이 중요한 법.

 "있잖아, 나 하루만 더 교육받으면 안 될까? 혼자선 아직 도저히 못하겠어. 겁나."


 나이 먹으며 늘어나는 건 겁과 뱃살임이 확실하다.

 20대의 아르바이트생들은 1~2시간 교육이면 가게 오픈을 혼자서도 잘한다는데, 교육을 세 번이나 받았는데도 혼자서 가게 안 모든 일들을 멀티로 해내야 한다는 게 걱정되고 겁났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일까?


 "그럼, 매니저님께 요청해서 내일 하루만 더 오픈 교육 해달라고 할게. 다른 애들은 금방 따라 하던데 누나는 왜 이렇게 더뎌?"

 더딜 수도 있지 자식아. 어떻게 사람이 다 같냐?


 "원래 손이 좀 느려."

 하고 싶은 변명은 수 가지지만 나보다 14살이나 어린 사촌동생(점장)과 말씨름하는 게 더 비참할 듯 해 관뒀다.


 오전 영업시간엔 손님이 밀려와 와플을 빠르게 구워내야 하거나 음료를 만들어야 하는 분주함은 사실 없다.

 영업 준비와 청소, 생크림 및 반죽 만들기, 소스통 채우기 등의 재료 준비로 근무 시간의 반 이상을 보내고 퇴근 1시간 전쯤부터 조금씩 손님들이 생겨난다.

와플 가게 바로 앞이 횡단보도라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려 들어오는 일이 많은데, 그럴 땐 가끔 횡단보도를 없애버리는 상상을 한다.


 아침부터 손님이 끊기지 않는 의외의 어떤 날도 있다.

 그래서 오후/저녁 영업시간에 사용할 반죽을 못 만들 수도, 10가지 종류의 버터크림을 정리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사실 다 해놓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다만, 오후 타임 근무자들이 죽어날 뿐.


 회사 생활을 해봐서 알지 않은가?

 나의 사소한 안일함이 때로는 누군가에게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4대 보험에 가입조차 안 되는 단시간 아르바이트 생이지만, 이왕 시작한 일이니 나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싶었다.


누구에게든 성실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내 몸이 부서져라 고된 게 낫다.




 나의 교육을 맡은 26살의 매니저는 옆에서 며칠 지켜본 결과 참 성실하다.

 출근길에 눈에 띄는 쓰레기들이 가게 주변에 있으면 일일이 다 주워서 들고 온다.

 그게 뭐 대단하냐 싶지만은, 내 가게가 아니면 쉽지 않은 일터에 대한 마음 씀씀이다.


 "다른 건 웬만큼 마스터하셨으니, 오늘은 버터크림 소분하고 정리하는 법 다시 한번 알려드릴게요."


 우리 와플 가게엔 생크림과 누텔라 초코잼, 젤라토 아이스크림, 소분되어 작은 통에 담겨 있는 사과잼, 딸기잼, 블루베리잼 등 각종 과일잼 외에 계산대 바로 옆에 비치되어 있는 10가지의 버터크림이 있다.


 전날 저녁 영업시간이 얼마나 전쟁 같았는지는 남겨진 10가지의 버터크림을 보면 알 수 있다.

 현란한 스패츌러의 움직임으로 크림들이 뒤죽박죽, 엉망진창 되어 있는 날이면 항상 전날 마감 영수증의 매출 금액이 높았다.


 "밀크, 초코, 모카, 딸기 크림 순으로 제일 잘 나가니까 이 4가지는 늘 여분으로 한 통씩 더 만들어 놔야 해요."


 "밀크가 제일 잘 나가요? 의외네요. 저는 초코나 딸기일 줄 알았어요."


 "음... 뭐랄까 와플에 밀크 크림을 바르면 어린 시절 시장에서 사 먹던 그 와플맛이 나요. 그래서 저도 밀크 크림을 제일 좋아해요. 나중에 한 번 드셔보세요."


 "오~~ 알겠어요. 나도 먹어보고 싶네요."


 "각 종류의 크림을 반듯하고 깔끔하게 정리가 다 끝나면, 크림통 주변을 깨끗이 닦아줘야 해요."


 "아~ 손님들에게 청결하게 보이기 위해서요?"


 "아니요. 직원들을 위해서요."


 당연한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직원들을 위해서? 왜요?"


 "크림통 상태에 따라 직원들이 대하는 태도가 달라요.
깨끗하게 닦아 놓으니까 더럽히지 않으려고 직원들도 조심해서 크림을 떠내더라고요."


깨끗하게 닦여진 크림통을 보니 나부터 깨끗하게 쓰게 된다.



 나에겐 예상을 빗나간 대답이었지만, 매니저는 당연하다는 듯 내뱉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이 가게의 청결은 모두 손님들을 위한 것인 줄 알았다.


 '같은 처지니까 알아주겠지.'라는 동질감에 직원들이 주로 머무는 곳이나 직원들만 보이는 곳에 대한 청결은 덜 신경 써도 된다고 생각했다.  더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아예 생각해보지 않았다.


 "원래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은 쉽잖아요.
다음 시간대의 직원을 위해서 늘 깔끔하게 정리해 두는 게 좋아요."


 "나 지금 매니저님한테 오늘 한 수 배운 것 같아서 심히 감동스러운대요?"


 "네? 제가 뭐라고 했는대요?"


 "그냥 좋은 말, 잊고 있었던 말, 너무 당연해서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말, 명품 가방보다는 영양제를 잘 챙겨 먹는 게 건강에 더 좋을 것 같다는 말."


 "네? 제가 그런 말을 했어요?"


 "네, 그런 말을 했어요. 크림통은 아무리 바빠도 잊지 않고 깨끗이 잘 닦아 놓을게요!"


 우리 매니저는 어쩜 저리도 성실하고 마음이 어른스러울까?


 평가를 위한 성실함이 아닌 몸에 밴 듯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성실함을
26살의 매니저에게 배운 나의 마지막 와플 교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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