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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May 21. 2023

영업 전입니다만, 거절할 수 없는 주문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더 행복했습니다.

"굳이? 오전엔 한가한 편이라 10시에 출근해도 별 문제없을걸? 10시까지 와도 돼."

오픈 시간 30분 전에 출근해서 재료 손질을 미리 해두는 게 마음 편할 것이라는 남동생 의견과는 반대로 점장인 사촌동생은 집이 먼 나를 배려해 10시까지 출근하라 했다.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 잠시 고민했지만, 아직 모든 것이 낯선 5일 차 아르바이트생 신분에 맞게 숙달될 때까지는 9시 30분까지 출근하기로 했다.


"그럼 키오스크랑 포스기는 10시 오픈 시간에 맞춰 켜도 되니까 30분 동안은 맘 편히 재료 준비만 해."

20대의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은 1~2시간 교육 만으로도 뚝딱뚝딱 혼자 다 잘하는데 유난히 긴장하는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점장님이 다시 업무 순서를 알려주며 말했다.




오롯이 혼자서 처음으로 가게를 오픈해 보는 목요일 아침이었다.

10분 일찍 도착해 유니폼으로 환복 한 후 여유롭게 나를 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만들었다.

키오스크와 포스기는 9시 55분에 켜는 걸로 하고 재료 재고 여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생크림이랑 아이스티 2통씩 만들어야 하고... 썰어 둔 딸기도 하나도 없네... 어제저녁에 바빴나 보네..."

 '이 정도쯤이야 30분 안에 할 수 있는 일거리지' 라며 여유롭게 냉장고를 열었다.

 

없다!? 없어!?

늘 냉장고 오른쪽 하단에 놓여있던 20리터 생수통 한통 분량의 와플 반죽이 보이지 않았다.

반죽통을 다른 곳에 놔둔 건가 싶어 냉장고를 샅샅이 뒤졌지만 여분의 반죽들은 보이지 않았고, 당황하면 바보가 된다더니 반죽통이 들어가 있을 리가 없는 냉동고도 한참이나 확인했다. 


이리저리 찾아 헤매다 선반 위 깨끗하게 씻겨 반대로 세워져 있는 빈 반죽통을 발견했다. 

지금 있는 2리터 정도 되는 반죽의 양으론 오후 1시까지도 버틸 수 없기에 하던 일을 멈추고 당장 반죽 만들 준비를 했다.

10kg짜리 반죽가루 포대를 들고 와 반죽을 시작하려던 찰나 매장 쪽에서 사람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은 오전 9시 38분이었다.



"저... 지금 주문되나요?"

"아... 저희 10시부터 영업시작이라 아직..."

"아... 지금은 그럼 주문이 안 되나요?"

"네... 죄송해요. 아직 키오스크나 단말기도 켜지 않았고, 와플 기계 예열도 안되어서요..."


서로 죄송해하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기계 예열이 되지 않았다는 말에 나가려던 여자 손님이 다시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저... 제가 저번에도 10시에 왔는데 그때 문이 열려있지 않아서 못 사 먹었거든요..."

"아... 그러셨어요? 죄송해요. 점장님께 말씀드려서 꼭 10시엔 영업 시작할 수 있도록 할게요."

누군가가 지각한 어느 날이었나 보다. 

먹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영업시간에 맞춰 가게를 방문했는데, 가게문이 닫혀있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짜증 나겠는가? 

나도 그랬던 경험이 몇 번 있던 터라 충분히 이해되는 마음이었다.


"저... 정말 지금 주문 안 될까요?"

"아... 네 저... 지금 준비된 거 하나도 없는데..."

 포스기 앞 가까운 거리에선 보이지 않았는데 가게문 앞으로 멀어지자 여자 손님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원피스 사이로 유난히 볼록하게 나와있는 배를 보니 임산부임이 확실했다.


몇 초의 순간이었지만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10분 정도 시간이 걸리는데 기다리실 수 있으실까?'

'반죽이 지금 급한데... 지금 안 해놓으면 일이 밀리는데...'

'잠깐, 오픈할 때 포스기 관리자 확인을 어떻게 하더라?'

'에잇 모르겠다!'


"혹시 좀 기다려주실 수 있나요? 그럼 얼른 준비해서 와플 만들어 드릴게요."

"아 진짜요? 몇 분 걸려요?"

"한... 10분 정도요.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손님이 주문할 수 있도록 얼른 키오스크와 포스기 전원을 켰다.

와플 기계의 예열은 3분 정도만 더 시간을 들이면 완료될 것 같다.

반죽은... 일단 주문 완료 후 다시 생각하자. 




여자 손님은 가게에 들어올 때부터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는데, 대충 대화를 들어보니 출근하는 남편과의 통화였던 듯하다.

"10분만 기다리면 된대. 응... 응... 내가 주문 안 되냐고 계속 물었거든... 응... 응..."

몇 분간 우리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남편에게 전하는 여자 손님의 말투에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영업 시작 전에 주문한 것에 대해서' 계속 나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그 마음이 전해져 더 맛있고 더 바삭한 최상의 와플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났다.


"손님, 주문하신 와플 나왔습니다."

활짝 웃는 얼굴로 와플을 받기 위해 카운터로 다가오는 여자 손님을 보니 괜히 뿌듯했다.

'마음은 바빴지만, 역시 주문받길 잘했어.'

내 몸 조금 편하려고 끝까지 주문을 거절했다면 하루 온종일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저...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게 이것뿐이라..."

와플을 받아 든 여자 손님이 사탕 2개를 내밀며 말했다.

"아, 저 주시는 거예요?"

"네, 제가 웬만하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데... 임신 중이라... 너무 먹고 싶었거든요."

"사탕 잘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임신 중이신 것 같아서 많이 드시고 싶으신가 보다 했어요."

"네, 저번에 못 먹었어서 더 먹고 싶었거든요. 감사합니다."

"네, 맛있게 드시고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밀크 사탕 2개,

평소엔 잘 사 먹지도 않는 브랜드의 사탕인데 아까워서 손도 못 대겠다.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한다는 건 이런 기분일까?

그 뒤로 주문이 쉴 새 없이 밀려와 와플 초보자인 내가 주문과 재료 준비를 동시에 쳐내기엔 버거웠지만 힘들진 않았다.

 

역시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
이만한 원동력이 있을까?
뿌듯함과 벅참에 하루 온종일 기분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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