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알라 Jul 11. 2023

학생이라 무시했냐는 손님의 전화를 받았다.

-학생 손님에겐 더 주고 싶거든요!

 성실한 매니저님이 점장으로 승진한 뒤, 두 명의 매니저를 뽑았다.

 두 명 다 20대 초반으로 남자 매니저는 카페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고, 여자 매니저는 카페 근무 경험은 없다 했다.

 "며칠 일해보니 남자 매니저님 싹싹해서 손님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

 점장님은 손님들에게 친절하고 잘 웃는 남자 매니저님을 든든해하며, 새로 들어온 직원 모두 마음에 들어 했다.


 매니저님들의 교육도 순조롭고, 승진한 점장님도 본인의 업무에 익숙해지며 와플 가게가 점점 안정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쯤, 점장님과 대화를 나누다 남자 매니저님이 가게 전화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전화받는 걸 무서워한다고? 왜?"


 "모르겠어요. 얼마 전, 컴플레인 전화 한 번 받고 난 뒤로 전화받는 게 무섭다며 아르바이트생한테 대신 가게 전화를 받아보라고 했대요."


 "아... 그래도 매니저인데... 그런 전화를 계속 아르바이트생이 받는 건 좀..."


 "그러니까요. 계속 그러면 얘기해봐야겠어요."


사교적인 성격의 남자 매니저가 전화받는 걸 무서워한다니 조금 의아했다.


 물론, 나도 전화를 받는 게 마냥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전화받기 귀찮다거나 번거롭게 느껴진다거나 아니면 결정을 내리지 못한 건에 대한 독촉의 전화는 받기 싫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전화받는 게 '무섭다'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가끔 문자로 대화를 주고받다 대화의 타이밍이 어긋나 서로 동문서답만 하고 있을 때면 성질 급한 나는 주저 없이 전화를 걸어버린다.

 전화 걸고 전화받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나인데, 그날 그 전화 한 통으로 남자 매니저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재료 준비도 어느 정도 끝낸 느긋한 오전 11시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가게로 걸려오는 대부분의 전화는 설문조사 전화, 대출권유 전화, "사장님 계세요?"라는 물음에"안 계신대요."라고 말하면 그냥 뚝 끊어버리는 전화, 포장 주문 전화라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네, 와플가게입니다."


 "저기요. 어제 제 아들이 거기서 와플을 샀었거든요?"

 싸하다. 말투가 너무 전투적이다.


 "아, 네. 무슨 문제라도 있으셨어요?"


 "평소보다 크림이 너무 적게 발렸던데, 참으려다가 전화드린 거예요."


 "아, 그러셨어요. 죄송합니다. 실례지만, 아드님이 주문하신 메뉴가 어떤 메뉴인가요?"


 "밀크크림에 초코칩 추가한 와플이요. 제가 웬만해선 전화까진 안 할랬는데, 크림에 적다 적다 이렇게 적을 수가 없어서요. 예전엔 크림을 잔뜩 올려주셨던 것 같은데, 이번엔 왜 이렇게 양이 적은지 묻고 싶어서요."


 "아, 네... 예전에 드신 생크림과 밀크크림은 레시피가 조금 다르긴 해요. 

 생크림은 와플 한 면에 3~4cm 정도 쌓아서 드리지만, 밀크크림은 와플 네모 칸을 채울 정도로만 발라서 드리는 게 가게 레시피라 크림의 양 차이가 조금 날 순 있습니다. 

하지만, 양이 적다고 느껴지신 부분은 죄송합니다. 어느 시간대에 아드님이 사가신 건지 알려주시면, 그 시간대 직원에게 다시 한번 교육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나쁘지 않은 대처라 생각했다. 


"제 말이 그게 아니잖아요."


"네?"


"밀크크림이고 생크림이고 양 차이 나는 건 모르겠고, 평소보다 크림 양이 많이 적었다고요!"


"아... 네...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직원에게 다시 한번 주의를 주..."


"애라고 무시한 거예요?"


"네? 아니요. 그런 건 아니에요."


"맞죠? 학생이라고 무시한 거죠? 애들은 주는 대로 불평불만 없이 받아가니까. 컴플레인 전화 이런 거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신 거죠?"


싸우려고 덤비는 이 엄마에게 더 이상 나의 이성적인 태도는 먹혀들어갈 것 같지 않았다. 

나도 똑같이 냅다 내지르고 싶지만, 꾹꾹 참아가며 대답했다.


"학생이라고 무시한 건 아닐 겁니다. 

특히 학교나 학원 수업이 마치는 시간엔 몰려오는 손님들이 많아서, 손님 가려가며 골라서 행동할 만큼의 여유는 없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생각하지는 말아 주세요."


"학생이라고 무시했잖아!"

내리 지르는 고함소리에 "너만 소리칠 줄 알아!! 아니라잖아! 닥쳐!"라고 대응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무시한 건 아닐 겁니다. 하지만, 기분 나쁘셨다면 직원들에게 다시 한번 레시피에 대한 교육을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주문이 들어와서 죄송하지만 더 이상 통화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내가 너네 와플가게 다시 가나 봐라."

으름장을 놓으며 그 학생 엄마는 전화를 끊었다. 내려놓는 수화기 소리마저 날카롭게 들렸다.


예, 오지 마세요. 제발. 바라던 바입니다.
오기나 해요. 그땐 나도 내가 어떻게 대응할지 장담 못합니다.
그리고 아줌마!
애들이 와서 주문하면 귀엽고 예뻐서 더 주고 싶거든요?
학생이라 무시했다는 생각을 가진 아줌마가 평소에 학생이라고 많이 무시하고 다녔나 봐요!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다 같은 줄 아세요? 네!?



차마 내지르지 못한 말을 이곳에 조심히 써본다.




 그저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그게 왜 나여야 하지? 이 아줌마는 미친 건가? 라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해하려고 노력도 잠시 해봤지만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바비큐 서빙, 편의점 알바, 순두부가게 알바, 인사팀 경력 14년 등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인 나도 이 전화를 끊고 한동안 진정되지 않아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경험 많은 나도 이 정도인데,  22살 된 남자 매니저는 오죽했을까?


"어떤 아줌마가 전화 와서 밀크크림을 적게 발라줬다고 난리난리를 부렸어요. 설명을 하긴 했는데, 별로 듣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어요. 분풀이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출근한 점장님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얘기했다.


"어머. 진짜요? 고생하셨네요."


"고생은 아닌데... 전화받는 게 무섭다던 남자 매니저님이 조금 이해되더라고요."


"저도 잔뜩 화나서 전화 오는 손님들 전화받고 나면 왠지 기운 빠지고, 울적하긴 해요."


"컴플레인 전화 많이 와요? 다 저렇게 화 내?"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와요. 네... 이미 화가 나셔서 전화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세요."


"아이고, 다들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겠네..."


"어쩌겠어요. 듣고 있어야죠..."



상냥하고 다정한 컴플레인은 이 지구상에 없는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26살 점장이 울면서 공황장애를 고백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