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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Jul 21. 2022

돈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

-푼돈이란 없다.

 "아 됐어. 그거 얼마 한다고."

 월급이 따박따박 들어오던 직장인 신분이었을 때 내가 자주 하던 말로 사용처는 다양하다.

 점심시간 차 한잔의 여유를 위해 직장동료들과 들른 카페 계산대 앞에서 찰나의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내 카드를 점원에게 내밀었을 때 '과장님이 지난번에도 커피 사주셨잖아요. 이번엔 제가 살게요.'라는 회사 후배 녀석에게 , 1/n으로 정산하다 애매한 뒷 단위가 나왔을 때 쿨하게 친구 녀석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

 

 그뿐이랴. 회사 다니면서 잔병치레가 많아 병원 가는 일이 잦았는데 그때마다 실비 보험 청구를 잊지 말고 챙겨서 하라는 엄마의 당부에도 서류를 준비하고 신청하는 일이 귀찮게만 느껴져 얼마 되지 않는 돈이라 생각하며 보험금 청구를 신청하지 않았다.

 온라인 쇼핑을 할 때도 최저가를 찾아 헤매는 수고로움 보다는 원하는 제품을 빠른 시일 내에 내 것으로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두었기에 몇 천 원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절차는 늘 패스하곤 했다.

 커피를 너무 좋아해서 하루에 2~3잔씩 사 마시곤 했는데, 다들 커피값 아껴서 주식을 하라고 했지만 열심히 일한 나를 위한 하루의 소소한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아낀다'는 행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번거롭다 느껴질 뿐이었다. 매월 스스로 정해놓은 금액의 저축을 하고 휴대폰비, 보험료 등 고정 지출비를 다 지출하고도 나 혼자 먹고 살기 충분한 돈이 늘 통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재테크에도 관심이 없었던 욜로족에 가까웠던 나는 지금의 경제력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10년 이상을 살아왔고 가끔 카드값에 허덕여 어쩔 수 없이 적금을 깨거나 친구에게 돈을 빌리는 상황이 있었지만, 2~3개월만 고생하면 다시 여유롭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회사를 그만둔 뒤 나의 일상은 부득이하게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신속 정확한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미뤄뒀던 보험금 청구를 신청했다. 실비보험의 경우 청구 가능 기간이 치료 완료 후 3년 이내이기 때문에 부랴부랴 기간이 초과되진 않았는지 확인을 해보았다. 다니던 대부분의 병원이 회사 근처였는데, 마침 회사 동료들과 저녁 약속이 잡혀서 가는 김에 병원에 들러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고 실비보험이 가입된 보험사 앱을 통해 보험금을 신청했다. 휴대폰 액정 교체비 14만 원에 대한 통신사 보험금 신청도 앱을 통해 발 빠르게 신청했다. 내가 지출한 금액에 대한 환급 개념의 보험금이기에 1+1=2 가 아닌 1-1=0 이 정확히 맞는 개념이지만 입금된 금액을 보니 돈 받은 기분이 들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출퇴근용으로만 사용하던 차를 퇴사와 동시에 처분하기로 했다. 처분과 동시에 검색을 통해 자동차 보험 환급 및 연납된 자동차세에 대한 환급 방법을 알아본 뒤 바로 실행에 옮겼다. 자동차 보험 환급금은 신청한 지 하루 만에 입금되었고 자동차세도 3일 만에 입금이 되었다. 자동차 처분 후 입금된 금액은 나의 세 달치 개인연금 납부 금액을 세이브시켜 주었다. 자동차세 환급은 자동으로 신청이 되는 건 줄 알고 '스마트 위택스'앱의 '환급조회'만 확인하며 환급되기를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환급받을 이력이 없다며 조회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관할 지자체 담당부서로 전화하여 환급 여부를 문의하니 환급받을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했고, 3일 만에 입금되었다. 최근 앱보다 사람을 통해 해결된 발 빠른 일 중 하나로 손꼽힌다.


 만남의 주체의 연령대가 어떻든 1/n으로 정상하자며 먼저 제안했다. 친구들을 만나면 다들 전업주부였기에 적어도 커피 정도는 돈 버는 친구인 내가 자진하여 사곤 했고,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인연들 대부분이 나보다 연령대가 낮은 동생들이었기에 얻어먹는 것이 어색해 내가 먼저 계산을 해두는 편이었다. 1/n의 제안이 나 스스로 조금 민망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나의 제안을 다들 당연히 받아들였다.


당연한 것이지만 가끔 이 당연한 것들이 상대방을 당혹스럽게 만든다거나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순간이 있다. 더군다나 내가 만들어 놓은 습관들이었기 때문에 내 처지가 바뀌어 다시 바꿔놓기가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기다림에 취약한 나였음에도 온라인 쇼핑도 최저가 금액조차 만족스럽지 않다면 구입 자체를 미루고 후에 있을 세일을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세일을 하지 않는다면, 포기하는 법을 배우는 셈 치고 구입을 하지 않았다.


  각종 은행 앱에서 진행하는 출석체크 이벤트도 매일 놓치지 않고 응모하여 포인트를 받는다거나 커피 기프트콘을 주는 이벤트는 묻고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응모했다.

 커피는 최대한 기프트콘을 사용하여 사마셨다. 의외로 커피 기프트콘을 주는 이벤트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거의 두 달 정도는 내내산이 아닌 공짜로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단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점점 형편에 맞춰 돈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어 가고 있었다. 청개구리 심보라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하고 스스로 와닿고 절실해야만 그제야 움직이는 타입인 내가 시킬 때는 콧방귀도 뀌지 않던 일들을 알아서 하고 있었다. 돈이 궁하기 때문이다.


 백수도 고정적 지출은 존재한다. 보험료, 휴대폰비, 개인연금, 소액의 적금, 생활비, 병원비 등등...

생각보다 '참는 것'으로만 지출을 줄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참고 아껴 쓰는 것을 넘어서 소액이더라도 수입을 이뤄내야만 했다. 하루하루의 커피값이 쌓이고 쌓여 큰 금액이 되어버린 가계부를 보고 예전처럼 내가 마시고 싶을 때마다 커피를 사 마실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커피를 포기하고 돌아설 때 왜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자괴감이 들어 하루의 기분을 망쳐버렸던 적도 있었다. 나는 이런 기분을 느끼려고 퇴사를 한 것이 아니었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나 스스로 더 행복해지고자 선택했던 퇴사였다. 그러므로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 돈을 대하는 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느꼈고 나의 자존감이 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누리던 것들은 최대한 누리되 지출의 최소화를 위해서는 100원이라도 부수입을 창출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소액이라도 차곡차곡 모을 수 있는 일은 마다하지 않고 뭐든 시도하고 응모하기 시작했다.

 남의눈을 의식하기보다 스스로 만족했다면 그것이 어떤 일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 정리하다 5,000원에 당첨된 로또 15장을 발견했다. 이런 행운이! 진정한 로또로세! 아무래도 귀찮아서 방치하듯 모아둔 것으로 추측된다. 5,000원에 당첨된 로또는 보통 다시 로또로 교환을 하지만, 지금 나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보다 오늘 하루의 커피값을 버는 것이 더 중요했기에 현금으로 전부 교환했다. 예상치 못했던 75,000원이 내 가계부에 '수입'으로 기록되었다. 기쁨으로 벌렁거리는 콧구멍을 손가락으로 눌러 진정시키며 카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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