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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Oct 17. 2023

다정)모르는 할아버지가 자전거 체인을 감아주셨다.

-손에 묻는 기름때따윈 신경쓰지 않으셨다.

 자주 가는 산책로의 끝에 유원지가 있다. 

 유원지엔 다양한 프랜차이즈 카페가 있는데, 그중 투썸플레이스는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카페이다.

 걸어서는 30분, 자전거 타고는 10분 정도 걸리는 투썸으로 오늘은 자전거 타고 가보기로 했다.

 노트북과, 필사할 '작은 모래알 일지라도' 책과 노트, 볼펜을 담은 백팩을 울러 매고 자전거 비밀번호를 맞춰 자물쇠를 풀었다. 

 한창 자전거 타기에 빠져 매일 탔었는데 감기에 걸려 2주를 쉬었더니 통유리 자동문에 비친 자전거 손잡이를 잡고 걸어가는 내 모습이 어색하다.


 산책로 오른쪽 자전거 도로로 진입하기 위해 페달을 밟는 순간, 엇? 페달이 헛돈다.

 자전거 체인이 풀려있었다.

 자전거를 타보기만 했지 풀린 체인을 감아본 적은 없다.

 자전거 수리는 J 씨 담당이었기 때문이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체인 감던 J 씨의 모습을 떠올리며 주저앉아 축 쳐져있는 체인을 맨손으로 들어 올려 체인링에 끼우려고 용쓰던 찰나 내 앞에 검은색 바지가 멈춰서 있음을 발견했다. 


 휴대용 라디오를 가방에 꽂고 큰 소리로 라디오를 들으며 산책로로 내려오던 70대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가서 나뭇가지 하나 구해와. 손으로는 안 돼."

 

 "아, 네."

 다소 강압적인 할아버지의 말투에 나도 모르게 재빠르게 움직여 근처 수풀에서 나뭇가지를 찾았다.


 "이거면 돼요?"


 "안 돼, 이렇게 약한 걸로는."

 답답했는지 직접 튼튼한 나뭇가지를 찾으러 나섰고, 한동안 보이지 않던 할아버지의 손에는 기다랗고 튼튼해 보이는 나뭇가지가 들려있었다.


 "이런 걸로 해야 체인이 잘 걸려. 어디 가던 길이야? 급해?"


 "아니요. 급한 건 아니에요."

미세하게 떨리는 할아버지의 손은 나뭇가지에 체인을 거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할아버지, 힘드시면 저 걸어가도 돼요. 자전거 안 타도 돼요."

 괜히 할아버지의 산책 시간을 뺏는 것 같았다.


 "가만있어 봐, 이것만 걸면 되니까. 옆에서 잘 보고 있어."

 뜻대로 되지 않자 자전거를 들어 올려 거꾸로 세워놓시려는 할아버지를 돕기 위해 손잡이를 잡았지만, 옷 더러워지니 저리 비켜나라는 잔소리만 들었다.

 혼자서 자전거를 거꾸로 세운 할아버지는 체인을 체인링에 걸기 위해 다시 안간힘을 쓰셨다.


 딸칵.

 드디어 체인이 링에 걸렸다.


 "아! 드디어 됐어요! 할아버지!"

 너무 기뻐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자전거 이래저래 손 볼 때가 많네, 체인도 뻑뻑 하이 잘 안 감기네."


 "감사합니다. 덕분에 자전거 고쳤어요."


 "이런 것도 다 경험이야. 해봐야 나중에 혼자 할 수도 있는 거야."

 할아버지의 손엔 검은 기름때가 군데군데 묻어있었다. 늘 가지고 다녔는데 오늘따라 깜박한 물티슈가 간절한 순간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이제 타고 갈 수 있겠어?"


 "네, 타고 갈 수 있어요. 아주 잘 돼요."


 "이런 것도 다 경험이니까, 다 경험해봐야 해."


 경험,

 체인을 감는 동안 할아버지는 내게 뭐든 경험해 봐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야 다음에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혼자서도 잘 해내라는 인생의 응원을 받은 기분이었다.


 무심하게 다가와 다정하게 자전거를 고쳐주신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할아버지의 건강을 기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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