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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Oct 13. 2023

엄마는 역시 엄마다.

-끙끙 앓던 고민을 한방에 해결.

 14년을 직장인으로 살았다.

 견디기 힘들어 스스로 회사를 뛰쳐나온 지도 1년 8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내 영혼을 그렇게까지 갉아대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쳇바퀴 돌듯 출퇴근해 개같이 번 돈 정승같이 잘 쓰면서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을 텐데라며 쏟아내던 원망도 사라졌다.

 얼굴 전체에 퍼져있는 웃음기에 밝아졌다는 말도 곧잘 듣고 있는 요즘 다시 직장인이 되고 싶어 구직 사이트를 기웃대고 있는데 재취직이 여간 쉽지가 않다.


 공개해 놓은 이력서와 경력기술서를 보고 몇 군데서 연락이 왔지만 전부 타 지역이었다. 서울, 분당, 일산, 인천, 부산, 포항 등 대구를 떠나야만 14년간 차곡차곡 쌓은 경력을 써먹을 수 있거나 발전시킬 수 있었고 원하는 수준의 연봉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대구를 떠나고 싶지 않다, 정말로.

가족이 있고 J가 있고 친구가 있는 대구가 좋다. 어릴 땐 큰 물에서 특별하게 살고 싶은 갈망도 있긴 했지만, 지금은 마음 편하고 기댈 곳 있는 대구에서 편안하고 평범하게 여생을 보내고 싶다.

그렇지만 대구에서 취직을 하려니 14년이란 세월이, 경력이 깡그리 무시된 듯 직무도 연봉도 하나같이 내키지 않아 차가워진 가을바람 따라 우울하고 기운 없는 요즘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 대구에 일자리가 진짜 없긴 없어. 원하는 수준의 연봉이나 직무의 회사는 아예 없고, 직무가 딱인 곳은 신입사원만 뽑아. 그래서 요 근래 쭉 속상하고 힘이 안 나."


 "속상할 일도 없다. 넌 왜 그렇게 꼭 회사에 취직하려고 해?"


 언제까지 이렇게 아르바이트만 할 수 없지 않으냐며 돈 벌려면 취직을 해야 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니냐며 반문해야 했지만 그 순간 엄마의 질문 자체가 납득되지 않아 "엉?"이라며  벙진 표정으로 쳐다만 봤다.


 "돈을 버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지만, 네가 가게를 할 수도 있는 것이고 다른 직종으로 변경해서 다른 인생을 살면서도 돈을 벌 수 있어. 그런데 넌 왜 꼭 회사에 들어가려고만 하냐는 거야."


 "장사는... 겁도 나고 자신 없어. 회사만 다녀봤으니 당연히 회사로 다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14년간 쌓은 내 경력이 아깝잖아. 또 써먹어야지."


 "어떤 경험이든 지나면 아까운 법이야. 아깝다고 미련 갖지 말고 다른 일 하고 싶은 거 없어?"



 "다른 일?"


 "너 커피 좋아하잖아, 조그마한 카페 차려서 네가 좋아하는 글도 쓰면서, 가끔 원데이 수업으로 퀼트도 가르치고... 해보는 건 어때? 너 그렇게 살고 싶다며."


 말 한 기억은 있지만 언제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 아주 오래전 내 소박한 꿈을 엄마는 기억하고 있었다.


 "이력서 그만 내고 커피 바리스타 자격증 따보는 거 어때? 시간 많을 때 한번 배워봐, 엄마가 수업료 내줄게."


 "한 번 배워볼까? 커피?"


 "그래, 배워보고 너랑 맞다 싶으면 다른 수업도 들어보고. 일단 뭐든 새로운 걸 시도해 봐."


 엄마는 과거의 영광들에 대한 미련은 그만 거둬들이라 했다. 계속하고 싶은 일인지 아닌지, 행복할 일인지 그렇지 않을 일인지 잘 생각해 보라 했다.

갑자기 내 머릿속을 들쑤시고 다니던 근심걱정들이 한 번에 해결된 듯 개운했다.


 그래!한 우물파는 것도 좋지만 다른 우물 맛도 보긴 봐야지!


 이번주 수요일 바리스타 2급 자격증 첫 수업을 들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쓰다. 산미가 강하다. 고소하다'정도밖에 몰랐던 커피의 새로운 세계가 흥미진진해 신이 났다.


 14년의 경험과 경력을 더 이상 아까워하지 않기로 했다.



 인생은 길고, 할 일은 많다.

 과거는 과거다.

 엄마는 역시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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