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알라 May 09. 2023

엄마는 내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저 믿을 뿐.

  "뭔 일 있어? 표정이 왜 그렇게 안 좋아?"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엄마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TV를 보고 있다.


 동글동글한 생김새부터 불 같은 성격까지 똑 닮은 우리 모녀지만 단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상처를 대하는 방법'이다.

 상처받았거나 속상한 일이 생겼거나, 어이없어 화나는 일이 생기면 바로바로 재잘재잘 엄마에게 다 이야기하고 보는 나와 달리 엄마는 속상한 일이 생겨도 티 내지 않다가 '시간을 통한 상처 회복'이 완료된 다음에야 "이런 일이 있었다?!"라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특히 장민호 가수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볼 때면 기본 표정으로 깔고 있던 엄마의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미간이 찌부러져 있다니! 무언가 큰 걱정거리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큰 이모가 일을 그만뒀대. 매니저랑 좀 안 맞았나 봐. 스트레스 너무 받아서 그만뒀다네. 아휴 참..."

 "이모도 충동적으로 결정한 건 아닐 거 아냐? 매니저랑 얼마나 안 맞길래..."

 "몇 달을 고민했다네, 이제 나이도 있는데 다시 어떻게 직장을 구하려고... 걱정이네 걱정이야."


 엄마는 육 남매 중 둘째로 올해 65세가 되었고, 큰 이모는 엄마와 2살 차이로 올해 67세가 되었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임을 누구보다 경험한 나이기에 큰 이모의 퇴사가 이해되고 공감되었지만, 엄마가 큰 이모의 나이를 말하는 순간 나도 큰 이모의 재취직이 걱정되긴 했다.


 "일을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걱정이다. 걱정이야."

 "요즘 70세에도 일하시는 분 많아. 기회만 좋으면 재취직 잘 될 수 있을 거야. 이모 경력 많잖아?"

 "그래도 누가 늙은 사람 쓰려고 하겠니? 젊은 사람 쓰려고 하지... 일하려는 사람 천지인데."

 큰 이모에게도 몇 번의 백수 시절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쉽게 재취직이 되었던 예전을 생각하며 너무 걱정 말라며 엄마를 다독였지만, 그 뒤로도 큰 이모에 대한 엄마의 걱정은 이어졌다.




 밥을 먹으며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다 결국 또 '큰 이모의 재취직에 대한 염려'로 엄마가 대화의 화제를 돌린 어느 날이었다.

 우리 집에는 1년째 놀고 있는 백수가 있는데, 왜 백수 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큰 이모 걱정만 그렇게 하냐며, 큰 이모보다는 경력 단절 기간이 길어지고 있는 내 걱정이 더 되어야 하지 않냐며 엄마에게 물었다.


 "왜 걱정이 안 되겠느냐. 속이 썩어 문드러진다. 그래 너 한 번 말 잘 꺼냈다. 언제 취직할 거냐? 할 생각은 있는 거냐?", 내가 건넨 질문에 대답은커녕 오히려 폭탄 질문세례를 받게 될까 봐 최대한 들어내지 않던 속마음이었는데 참지 못하고 입 밖으로 꺼내 버렸다.


 "아니? 난 너 걱정 하나도 안되는데?"

 엥? 생각지 못한 대답에 놀라 다시 물었다.


 "걱정이 안 된다고? 왜? 왜 걱정이 안 되는데?"

 "내가 네 성격 몰라? 놀만큼 놀다가 일하고 싶어지면 하겠지. 능력 되잖아 넌."

 생각지 못한 엄마의 과분한 믿음에 감동이 밀려오고, 울대에선 미세한 진동이 일렁거렸다.


 퇴사하고 3개월이 지났을 무렵 한낮에 동네를 어슬렁 거리다 내가 외할머니의 손녀임을, 내가 엄마의 딸임을 알고 있는 동네 사람이라도 만날까 봐 괜히 움츠러들었던 적이 있었다.

 왜 맨날 늦게 나갔다가 늦게 들어오냐며 늦은 귀가를 걱정하던 엄마는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챈 듯

 "일찍 일찍 다녀.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난 너 걱정 하나도 안된다."라고 했다.

 그때는 걱정이 하나도 되지 않을리 없을 엄마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근데 엄마는 왜 내 걱정을 안 해?"

 "내가 네 걱정을 왜 안 해?"

 걱정이 안 된다고 해서 왜 걱정을 안 하냐고 물었는데, 왜 내가 네 걱정을 안 하냐고 되묻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나 면접은 자꾸 떨어지고 이렇게 집에서 글 쓰고 취미 생활 하고 있는 거 걱정 안 된다며~ 1년이나 지났는데 왜 걱정이 안 되냐고~"

 "아~ 그 걱정? 넌 그냥 놔두면 알아서 잘하는 아이니까. 잘할 거니까 걱정 안 하는 거지"




요즘 남동생이 조카에게 자주 하는 말이 "아빠는 아빠딸 믿어!"이다. 

부모의 믿음은 자식에게 자신감과 자립심을 만들어 준다나 어쩐다나.

평소답지 않게 오글거리는 말을 딸한테는 잘도 한다며 동생을 놀렸었는데, 이미 성격과 성향이 다 형성되고도 남을 나이가 된 마흔의 나도 엄마의 무한한 믿음에 자신감이 꿈틀댄다.


 엄마의 염려와 달리 큰 이모는 퇴사 후 한 달 뒤 다른 회사에 취직했다.

 여전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며 열심히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엄마는 여전히 내 걱정은 하지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이심전심이 되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