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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Jul 19. 2022

엄마, 아직은 돈을 벌지 않아.

-기쁜 소식을 엄마에게 처음 알리는 이유.(feat.브런치 작가 합격)

 작년 8월 퇴직을 완전히 결심하면서 더욱 확고해진 생각은 현재 상태의 나라는 인간은 '회사'라는 곳에서 '생활'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망가져 있다는 것이었다.

 목 구녕이 포도청이라 앞으로 먹고 살 일이 막막하다는 현실적 걱정보다는 나의 고장 난 마음을 회복시키는 것이 급선무라 판단하여 남들이 보기엔 대책 없고 무모한 선택일 수 있겠지만 오래전부터 부단히 버티다 결정한 퇴사였다. 그리고 '퇴사'라는 어두운 결정을 내리기 위한 생각의 늪에서 나에게 빛처럼 다가온 희망의 계획은 '글쓰기에 몰두해보기'였다. '글쓰기'는 오래전부터 내가 꿈꿔왔던 행위이다.

 

 그래서 틈틈이 열심히 글을 써보았고 작년 9월 처음으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며칠을 기다렸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몇 개월 동안 브런치를 아예 쳐다도 보지 않는 것으로 나는 불합격에 대한 소심한 복수를 했지만 아마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뻐팅기면 뭐하랴.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 블로그를 몇 년째 운영하는 글쓰기가 일상인 블로거들도 몇 번의 도전 끝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후기만 골라보며 '내가 아주 글쓰기에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구나.' 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위로했다. 그렇게 다시 브런치 작가 신청에 도전하였고 불합격의 쓰라림을 한 번 경험해서 인지 발표를 기다리는 시간이 하염없이 느껴졌고 마냥 불안했다.

 

나약, 불안, 잉여, 재능 없음, 헛된 도전, 겉멋, 역시 너는 안돼, Go to hell......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온갖 부정적인 단어들이 내 머릿속을 헤집었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밥 값이라도 해야 하는 처지라 그날도 어김없이 설거지와 방청소를 끝내고 大자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넋 놓고 보고 있을 때  휴대폰 진동 알람이 울렸다.


얼핏 봐도 기분 좋은 문장들임을 알 수 있다.

 합격이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않고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브런치 작가 신청했었는데 합격했어! 방금 연락 왔어!"

 "엄마 지금 집에 가는 길~ 브런치가 뭐꼬?"

 "이제 내가 글을 쓰면 사람들이 볼 수 있고 내 글이 마음에 들면 사람들이 구독도 하고 그러는 거다! 그럼 나는 독자가 생기는 거고! 이제부터 시작이지만 저번에 한 번 떨어졌어서 대개 불안했는데 이번에 붙었다! 붙었다고~~!!"

 지금의 내 처지에 이것마저 떨어졌다면, 얼마나 자괴감에 빠져 더 잉여스럽게 살았을지 찐득하게 게을러진 내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엄마와 통화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너무 벅차올라 울대가 울렸고,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엄마의 축하 한마디에 금방이라도 기쁨의 눈물을 펑펑 흘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감정 좋고!

 Mom, I'm ready. Come on.


 "얼마 주는데?"

 "응?"

 "그기 당첨되가 작가 되면 얼마를 벌 수 있는 건데? 돈 많이 주나?"

 하긴...... 돈 얘기부터 꺼내는 엄마를 나는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입장이다. 암 그렇다마다.

 지금은 내 죄가 크기에 분위기 못 맞춰준다고 역정을 내기보다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엄마에게 설명해주었다.

 "지금 당장 작가로 어디 취직한 게 아니고 이제 글 쓰는 일로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거지! 작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 말이야~"

 "아. 아직 돈 버는 건 아니고? 아~그래그래. 축하한다 아고~축하한다~~ 축하~"

  엄마는 분명 뭘 축하해야 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았지만, 내가 서운해할까 봐 기쁜 척 목소리 톤을 올렸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나의 기쁨이 최고조에 달하는 그 첫 순간, 단박에 나의 기쁨을 공감해 준 적이 거의 없다.

 첫 번째 이유는 나의 기쁨의 대상이 되는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여 알기 전인 상태에서 나에게 기쁨을 강요받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늘 잘 속고 다니는 내가 또 어디 가서 호구 짓 당하고 오진 않았을까 하는 노파심에 그 찰나의 순간 현실적인 것부터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6년간 벌었던 돈을 다 날려버렸던 나의 과거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기에 당연한 엄마의 걱정이라 생각된다.


 그렇다고 엄마가 나의 기쁨에 아예 동참을 해주지 않는 매몰찬 어미는 아니다.

 그날 엄마는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큰 소리로 나를 이렇게 불렀다.

 "정 작가~~정 작가 집에 있어? 엄마 왔는데~~? 정 작가~~~"

 엄마에게는 단지 상황을 이해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고, 이해가 끝나면 이처럼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과감히 오래도록 표현해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엄마에게 늘 성에 차지 않는 축하를 받지만 제일 처음으로 기쁜 소식을 알리고 싶은 이유이다.

 

나는 그 뒤로도 계속 엄마에게 '정 작가'로 불리고 있다. 언젠가는 이것이 기쁨이 아닌 부담이 되는 순간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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