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름이 또다시 오기를...

-가을의 시작에서 지난여름을 추억하며.

by 코알라

'하계휴가는 전 직원에게 일괄적으로 5일을 지급한다.'라는 회사 규정이 있는 제조업 회사에서 14년을 근무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14번의 여름휴가를 설레는 마음으로 계획했었고, 그렇게 다녀온 14번의 여름 여행은 한 해의 보상과도 같은 날들이었기에 시간과 함께 흘러가지 않고, 기억 속에 뭉게구름처럼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가끔 심신이 지칠 때마다 휴대폰의 사진첩을 열어 그날의 나를 꺼내보며 이와 같은 추억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눅눅한 내 삶을 위로받곤 했다.


올해는 '하계휴가' 회사 규정을 지켜야 하는 직장인 신분이 아닌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사람'의 신분으로 맞이하는 여름이기에 휴가에 대한 기대감이 없을 줄 알았지만, 이미 나에게 습관적 기대감이 되어버린 것인지 여름휴가를 계획한 8월이 다가오자 설레어지기 시작했다.

설렘은 여름휴가만 오매불망 기다리던 직장인 J 씨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 것이라 추측했지만, 휴가를 떠나기 하루 전 잠 못 이루는 나를 보니 그 설렘의 근원은 스스로로부터 시작된 것이 맞다 싶었다.


언젠가 회사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를 가득 안고 떠난 여름 여행에서 물놀이도 관광지 탐방도 맛집 투어도 다 귀찮았던 내게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준 것은 편하진 않지만 타인의 방해가 적은 작은 테라스에서 아이스커피 한잔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었다. 그 작은 테라스는 눈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만 햇빛을 가려주는 천장 막, 고개를 들면 언제든 볼 수 있는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바다의 수평선, 쉼 없이 들리는 잔잔한 파도소리가 준비되어 있었고 그곳은 책을 읽고 글을 쓰다 가끔씩 멍 때리기 아주 적합한 장소였다.

그 뒤로는 거창한 풀빌라나 유명한 관광지 주변이 아니어도 '책을 읽을 공간'과 '사색할 공간'이 확실히 확보된 곳이면 그곳이 나의 숙소 1순위가 되었다.


이번 휴가지에서도 고요한 듯 치열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자연 곁에서 한없이 한 곳을 응시하다가 책이 읽고 싶어지면 책을 읽고 불현듯 무언가가 떠오르면 메모장을 꺼내 끄적이기도 하고, 글자가 지겨워지면 또 한없이 무언가를 응시하면서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했다.

가져갔던 책 두 권 모두 읽어 치웠는데, 무엇이든 진득하니 하지 못하는 성격인 내가 일궈낸 경이로운 결과라 할 수 있다.


올해도 어김없었던 여름 휴가지에서의 자유로운 시간들의 잔상은, 내가 건강하고 활기차게 활동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데 쓰일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사람'여름휴가'반드시 필요하다.

계획한 일출 보기 성공(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우)



오늘 집 앞 공원을 산책하다가 아침 공기에서 가을 냄새를 맡았다.

바람도 공기도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

그중에 가장 새로워진 것은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글을 쓰다가 생각의 정리가 필요할 때면 나는 휴대폰 사진첩을 열어 지난여름을 다시 꺼내어 본다.

읽다가, 쓰다가, 사색에 잠겼다가를 반복하며 하고 싶었던 온갖 것들을 열심히 해나가면서 나는 또다시 여름이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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