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더라도 나가겠습니다.

-우산만 잘 챙기면 돼요.

by 코알라

백수가 된 이후에도 월요병은 존재한다. 그러나 회사 다닐 때와는 사뭇 다른 월요병이다.

'시작이 좋아야 끝도 좋은 법! 월요일은 무조건 알차게 보내야 해!'

주말의 여파로 축 쳐져 아무것도 하기 싫지만 출근은 해야 하는 월요병이 아닌, 늦잠 자지 않고 활기차게 한 주를 시작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다지는 월요병.


이번 주는 화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에 비가 올 것으로 예보되어 있었지만, 지난주에도 오기로 한 비가 오지 않았던 날이 꽤 있었기에 이번 주도 그러리라 생각하며 아침 걷기 운동을 계획하고 잠이 들었다.

' 후두둑 '

점점 커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시계를 보니 6시 42분이었다. 비가 온다.


아침 걷기 운동을 계획한 터라 비가 전혀 반갑지 않았다. 내리는 비를 방에서 멍하게 보고 있자니 갑자기 어디선가 반항심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고 비 때문에 눌러앉아 있고 싶지 않아졌다.

벌떡 일어나 운동복을 갖춰 입고 우산을 들고 집 앞 산책로가 있는 공원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어휴, 저게 누구야~박 씨 할머니 외손녀 아냐~ 비 오는데 뭐 하는 거래~'

'우산 쓰고 운동하는가 보네~ 회사 그만뒀다더니 웬 청승 이래~'

혹시나 동네 인싸인 할머니의 친구분들이 동네 산책로에 존재하는 단 한 명의 운동하는 1인인 나를 알아보고 수군거리면 어쩌나 상상하며 잠시 할머니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건 아닌가 고민되기도 했지만 또다시 갑자기 어디선가 반항심이 스멀스멀 올라와 가던 발걸음에 더 힘을 주어 큰길 건너에 있는 산책로를 향해 걸어 나갔다.

'그러라지 뭐!'


호기롭게 큰 길가로 나가다 멈칫하며 오른쪽에 위치한 쉼터를 슬쩍 쳐다봤다. 이 쉼터는 동네 할머니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과도 같은 곳이라, 여름 같은 경우 늦은 밤까지 더위를 피해 쉬러 나오시는 할머니들이 종종 계신다.

동네 할머니들의 사랑방


'아무도 없네. 다행이다.'

늘 센 척만 하는 나다.


큰길 건너 산책로로 가는 돌계단을 내려갔다. 예상대로 나뿐이군 싶은 순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도란도란 대화 나누며 걷고 있는 이름 모를 중년의 여성과 아들로 추정되는 청년

이어폰을 귀에 꽂고 바닥에 떨어진 비를 보며 걷고 있는 중년의 남성

오늘도 늘 있던 그 자리에 서서 무언갈 바라보고 있는 두루미

날씨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평소보다 준비물을 조금 더 챙기면 그만이다.


비 오는 날의 걷기라... 왠지 더 낭만적이다.

나는 아직도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되지 못하였다. 여전히 그들에게 보이는 내 모습이 중요한 나다.

가족이나 친구들은 나에게 한 직장에서 14년이란 시간을 쉼 없이 달려온 것을 대단하다 해주며, 퇴사를 축하해주었고 나의 잉여스러운 매일매일을 응원하고 당연하다 여겨준다. 고마운 말들이다.

오직 나만이 이 휴식이 합당한 것인지 송곳같이 뾰족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해댄다.

'정말 당연한 쉼인가? 나만 열심히 산 삶이 아니지 않은가? 다들 이렇게 견디고 있지 않은가?'


우산만 준비해서 나오면 계획했던 운동을 여느 때처럼 할 수 있다. 마음이 진정되고 준비가 되면 그제야 계획했던 일들을 여느 때처럼 하면 된다.


준비물이 다 갖추어지면 그냥 밖으로 나가면 된다. 많은 생각은 필요 없다.



앞 쪽에서 땅에 떨어진 비만 쳐다보며 걸어오던 중년의 아저씨가 얼핏 사람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홱 들어 마주오는 나를 쳐다보았다.

'비도 오는데 우산 들고 운동이라니. 거참 대단하네.'

라는 조금은 놀란 눈빛으로 아저씨가 나를 쳐다보다 스쳐 지나간다.

'그러는 아저씨도 우산 들고 운동 중이신 거거든요?'

라는 마음의 소리가 아저씨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며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스쳐 지나갔다.


내가 하면 별 것 아닌 것이지만, 남이 하면 대단해 보이는 심리.
고로 우린 둘 다 대단해요.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