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과보호했다.
-너에게만 허용된 나의 감정.
"요즘 너의 온갖 짜증이 나한테 다 몰리는 것 같은 기분이야."
정말 내가 그런가? 그로 인한 것이 아닌 감정들을 부당하게 쏟아낸 적이 있었던가?
짜증이나 화를 잘 내지 않는 그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이 말이 온종일 나를 붙잡고 있다.
잠깐만, 나도 할 말은 있다.
나는 상대방이 좋아하는 열 가지 행동을 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한 가지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내 반응이 재밌다는 이유로 내가 싫어하는 몇 가지 행동을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
그때마다 아무리 진지하게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나의 견해'에 대해 얘기해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자제해보겠다.'라는 그의 간단명료한 대답뿐이었다.
'내가 온갖 짜증을 너한테만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너의 장난 빈도수가 늘어난 거겠지!'
목 구녕까지 차오르는 말을 간신히 삼켜 넣었다.
우리 관계에서 싸움의 신호탄은 늘 나의 고함소리였다는 것을 반박할 수 없기에 장난을 멈출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이는 고집쟁이를 대신하여 나라도 참아 보는 수밖에.
한편으론 그의 말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도 회사를 다니고 있던 그때에는 '오늘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한 사람들'을 '공공의 적'으로 지정하여 함께 그 공공의 적을 향해 신랄한 욕을 주고받았었다. 자기 일처럼 흥분하며 험담과 욕을 뒤섞고 있는 그를 보면서 만족감과 동질감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둔 지금의 나는 하루에 많아봤자 1~2명의 사람과 교류하고 있다. 이 교류 또한 고정적인 것은 아니어서 어쩔 때는 온전히 혼자서 하루를 보낸 적도 있다.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게 되었고 , '에피소드'라는 것도 예전만큼 생겨나지 않게 되었다.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줄어든 이 상황이 좋다가도 서글펐고, 서글픈 나의 유일한 '에피소드' 속 주인공이 그가 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났다.
질량 보존의 법칙.
나의 몸에 담겨있는 각종 감정들은 외부로 표출되어야 하는 하루 할당량이 있다.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고 몸 안에 응집시켜 놓은 채 그를 만나는 날이면 온 신경이 더 그에게 집중된다.
집중된 나의 감정은 그가 나와 다른 의견을 내비치거나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재차 되풀이할 경우 몇 배로 격렬하게 쏟아내어 지는 듯하다.
그의 입장에선 말 하나 잘못함으로써 죽음의 고비를 맞이한 셈일 것이다.
고슴도치는 가시처럼 단단하고 날카로운 털을 세워 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한다. 그 가시와도 같은 털을 함부로 만졌다가는 몸 깊숙이 박히기 때문에 빼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고슴도치의 가시는 자신의 체온을 지켜주는 것은 물론이고 외부의 가벼운 자극에도 반응하여 자신을 보호한다. 고슴도치의 가시는 모두 자신을 위해 움직인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쉽게 빼낼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라는 변명과 핑계를 마음속에서 떼어 내는 데에만 며칠이 걸렸지만, 분명 나의 잘못된 행동들도 존재했다.
다시 나를 다잡고, 정신 차려보기로 했다.
더 이상의 '과보호'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