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부부의 제 갈 길.
-아니면 내가 모르는 그들의 연륜?
여느 때처럼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꽃아 라디오를 들으며 봉무공원의 만보 산책길을 걸었다. 봉무공원엔 저수지인 단산지(丹山池)를 한 바퀴 도는 만보 산책길과 약수터와 전망대로 향하는 여러 갈래의 산길이 있는데, 나는 주로 단산지 만보 산책길을 걷는다. 만보 산책길은 가볍게 '걷기 운동'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담소를 곁들일 수 있는 전혀 무리되지 않는 코스로 한 바퀴 도는데 40~50분 정도 걸린다.
코알라의 방앗간 봉무공원
오롯이 사람의 발자취로만 단단하게 골라진 흙길을 따라 걷다 보면, 왼편에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삼면이 유리창으로 만들어진 나비 생태원이 보인다. 이 나비 생태원이 보이기 시작하면 만보 산책길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20분 정도 걷다 보면 비염기가 있어 어김없이 콧물을 흘린다. 그래서 운동할 때 반드시 챙겨야 하는 1번 준비물이 휴대용 휴지이다. 이 날도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뭉쳐놓은 콧물 닦은 휴지 뭉텅이들을 버리기 위해 나비 생태원을 지나 간이 화장실 앞에 비치된 공원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내 뒤를 따라오던 부부로 보이는 60대 초반의 중년 커플 중 여성이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걸어가는 나에게 무심코 시선이 따라오다 화장실을 발견하곤 "잘됐다" 라며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나란히 걸어오던 중년의 남성은 여성의 걸음 방향이 바뀐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멈추지 않고 원래의 속도를 유지하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는 휴지 뭉텅이를 버리고, 다시 원래의 방향으로 돌아갔다.
화장실과 꽤 거리가 멀어지자 뭔가 허전함을 느꼈는지 중년 남성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있어야 할 아내가 옆에 없다는 것을 발견한 것인지 조금씩 속도를 줄였고, 고개 돌려 뒤를 보았다.
뒤따라 오고 있는 사람이 아내가 아니라는 것을 판단하기엔 시간이 필요했는지 나를 몇 초간 쳐다보았다.
그의 눈은 나의 뒤편으로 시야를 넓혀 아내의 위치를 확인한 듯 한 곳에 시선이 머물러 있었고, 궁금함을 참지 못한 나도 뒤를 돌아 중년 여성의 위치를 확인했다. 중년 여성은 마치 남편의 속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천천히 본인의 속도로 걸어오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어!"
속도만 잠시 줄였을 뿐, 걸음을 멈추지 않던 중년의 남성이 한마디 건넸으나, 중년의 여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무심하다.
함께 나란히 걷다 화장실 간 아내를 기다려주지 않고 제 속도로 계속 걸어 나가는 남편,
화장실 다녀오겠다는 말도 하지 않고 방향을 틀어버린 아내.
뒤늦게 아내가 따라오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걸음을 멈추진 않았던 남편,
남편의 말에 미동도 하지 않고 휴대폰만 보는 아내.
공원 끝 지점에 있는 신발 흙먼지 털이 기계에 도착해서도 중년의 남성은 중년의 여성을 기다리지 않고 신발만 털고 주차장으로 갔다.
뒤늦게 온 중년의 여성은 꼼꼼히 신발과 바지 주변의 먼지를 털어냈다.
한 번 그렇게 어긋난 속도는 가는 끝까지 맞춰지지 않았고 주차장에 주차된 그들의 차에 도달하는 순간까지 앞과 뒤로 나뉘어 그렇게 걸어갔다.
찰나의 무심함이 그들의 간격을 벌어지게 만들었다.
한 번 맛본 행복감은 놓치고 싶지 않기 마련이다.
처음의 간격을 그대로 유지하며 함께 나란히 걸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따뜻한 일인지 경험해봤기에 너무나 잘 안다.
나는 끝까지 이 행복한 따뜻함을 놓치지 않기 위해 상대방에게 세심할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