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응원이 쏘아 올린 나의 용기.
-친구가 있어 든든하게 글을 쓴다.
"20년 전부터 내가 글 써보라고 했지!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네."
나와 너무 닮은 20년 지기 친구가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나의 쑥스런 고백에 박수까지 쳐가며 기뻐했다. 기뻐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엔 대화 한 번 나눠보지 않은 옆 반애로 얼굴만 알고 있었던 우리는 뻘쭘했던 대학교 학과 OT에서 낯익은 서로를 발견하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다가갔고,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향적인 우리에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 학과에 같은 고등학교 출신은 오직 우리 둘 뿐이었던 우연을 시작으로 힘들었던 취준생 시절, 그녀의 결혼과 출산, 술잔에 한 주의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회사원이 되어서까지 사회인으로 성장해가는 모든 시간 속에 우리는 함께였다.
둘 다 낯가림이 심해 선뜻 누구와 친해지지 못하는 성격이라 얼마나 서로가 소중했던 시절이었는지... 나는 부끄럼 많던 그때의 우리 모습이 너무 선명해 사무치게 그립다.
회사를 그만두고 시작한 나의 글쓰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말할 용기가 도저히 생기지 않았다.
예전부터 글을 쓰고 싶었지만 이제야 글을 써 볼 용기가 생겼다는 나의 결심이 남아도는 시간에 겨우 찾은 할 일로 치부되거나 허영으로 보이진 않을까 걱정되었고, 응원한다는 그들의 말속에 사실은 전혀 다른 진심이 숨겨져 있을 거라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지독한 자격지심에 빠져버리진 않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냥 놀고먹고 지내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게 마음이 편했고, 그래서 지금은 이 친구를 제외한 나의 주변인들은 내가 24시간 중 대부분의 시간을 무엇에 열중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아니, '열중'이라는 행위 자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학시절부터 나의 글재주를 좋게 평가해주었던 이 친구에게만은 말하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용기를 내어 보였으니 나에게 힘을 달라고 떼쓰고 싶었던 것 같다. 많은 염려들을 물리치고 어렵게 꺼낸 나의 고백에 그녀는 너무 기뻐서 눈물 날 것 같다며 예상보다 더 격정적으로 화답을 해주었다.
감격해하는 그녀의 모습이 나의 결정에 대한 수 가지 의심들을 거둬들이게 해 주었다.
나보다 더 나의 재주를 믿어 의심치 않아 준 그녀가 있기에 나 스스로도 나의 도전을 응원할 확신이 생겼다.
시작조차 하지 못한 일은 미련으로 남게 되고, 그 미련은 불쑥불쑥 올라와 내 앞을 가로막으며 과거에 연연하게 만든다. 그렇게 미련은 후회를 반복시키고, 익숙하게 만든다.
남들 정도로 밥벌이를 하고 살려면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순 없는 것이고, 그 하고 싶은 것을 기어코 하려 한다면 경제적으로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스스로에게 핑계 댔지만, 사실은 겁이 났던 것 같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시작이 되어버릴까 봐, 실패만 맛보고 아무것도 남게 되지 않아버릴까 봐.
여전히 겁은 난다. 여전히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이고 그들의 한마디에 흔들리고 나를 의심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라 여기며 실패를 교훈 삼아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려 하는 큰 마음을 지니지 못한 졸렬한 마음의 소유자인 것도 여전하지만, 더 이상 후회에 익숙해지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미루었던 나의 미련이 후회로 발현되지 않도록 휴식을 선택한 지금, 글쓰기에 온 마음을 다해 시간을 들여보기로 했다.
매일 글을 쓰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레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나'를 생각하는 시간이 늘다 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게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니, 나에게 너그러워졌다.
나에게 너그러워지니, 타인에게도 조금씩 너그러워진다.
내가 먼저 타인에게 너그러워지니, 타인도 나에게 조금씩 너그러워진다.
글쓰기를 하는데 내가 정리가 되어간다.
글쓰기를 하는데 무엇이든 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난다, 그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모든 선순환의 영광을 의심 많은 나의 굳은 심지(心志)가 되어 준 나의 친구에게 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