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참 빠르다. 어느새 9월이 되었고, 내가 회사를 그만둔 지 6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이직 준비는 잘하고 있냐는 이전 회사의 친했던 차장님으로부터 안부 문자가 왔다. 나는 퇴사 당시 말씀드렸던 것처럼 여전히 '회사'라는 곳에 다시 취직할 생각은 없기에 그저 푹 쉬고 있다고 답장을 보냈다.
-너무 오래 쉬면 다시 일을 구하기가 정말 힘들 텐데...
차장님의 한 마디가 고요했던 내 마음에 던져져 '불안'이라는 파도를 일렁거리게 했다.
이직할 생각이 없다는 내 말을 믿지 않으시는 듯 그만 놀고 이직 준비를 해야 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과 부러움이 가득한 문자를 더 주고받다 '언제 밥 한 끼 하자.'는 습관적 멘트를 마지막으로 문자를 끝냈다.
불안의 파도는 '충동적, 섣부른, 잘못된' 등 부정적인 단어들을 밀어 넣고, 내 결정에 대한 믿음을 서서히 쓸어갔다.
나의 삶이 '퇴사'라는 선택으로 어떤 긍정적 변화가 생겼는지 한 번 짚고 넘어가고 싶어졌다. 그래야만, 자꾸만 움츠러드려 하는 어깨를 펼 수 있는 확신의 힘이 다시 생길 것 같다.
그래서 나의 퇴사 후 6개월을 정리해보았다.
2022년 4월(1개월째)
1) 4월 1일, 퇴사 후 첫날 생각 정리 차원으로 나 홀로 당일치기 부산여행
2) 3개월은 계획 없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며 푹 쉬어보자는 나만의 '휴식 만료기간'을 정함
3) 자고 싶은 만큼 자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다짐
4) 평일의 여유!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직장인일 땐 할 수 없었던 평일 오전 여유로운 브런치
4월 어느 날의 일기 한 줄 : 별일 없이 잠만 잔 오늘도 좋았다. 언제까지 좋을지 기대된다.
2022년 5월(2개월째)
1) 카드사/은행 앱 또는 쇼핑몰에서 진행하는 각종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
커피 쿠폰, 포인트 또는 상품권 당첨, 생활 속 가랑비 같은 지출의 최소화를 위한 나름의 경제 활동
2)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보다 생전 쓰지 않던 가계부를 쓰기 시작
통장 잔고가 걱정은 되나, 직장인일 때의 소비 습관을 버리지 못해 씀씀이는 그대로
3) 다이어트를 위해 기구 필라테스 수업을 알아보다 가격이 부담되어 포기
어불성설, 퇴직 선물이라는 개똥 같은 명목으로 200만 원 상당의 명품백 충동 구입
4) 주 4회를 목표로 아침 만보 공원 걷기 운동을 시작하며 라디오 듣는 취미가 생김
열심히 운동하라며 엄마가 워킹화 사줌, 마음은 불편했으나 거절하진 않음
5) 아침 9시 모두가 출근하고 우리 집에서 제일 젊은 나만 남겨져 있는 아침이 썩 유쾌하진 않음
6) 뭐라 하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눈치가 보이기 시작
5월 어느 날의 일기 한 줄 : 가끔 '조졌다.'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몸은 편하다. 퇴사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위에 눌리지 않았다. 다행이다.
2022년 6월(3개월째)
1) 늘어지지 않기 위해 아침 운동시간을 정확히 정함
2) 일상에 대한 간단한 메모들을 시작으로 글쓰기 돌입
3) 통장잔고 숫자가 갑자기 무섭게 느껴져 소비를 줄이기 시작
실비보험 청구, 자동차세 및 자동차보험 환급 등 미뤄두었던 금전 업무 실행으로 소소한 수익창출
4) 내가 정한 '휴식 만료기간'에 종료되어 괜한 심적 부담 발생
애초에 이런 '기간'을 정하지 않았다면 이런 '부담'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을...
6월 어느 날의 일기 한 줄 :아침부터 두통이 있어 약을 먹었다. 요 근래 계속 두통으로 고생이다. 자꾸 이러면 병원에서 정밀검사라도 받아야 되는 걸까? 아픈 게 싫다. 돈 드는 게 싫다. 이래서 백수는 아프면 안 되는 건가 보다.
2022년 7월(4개월째)
1) 브런치 작가 합격
퇴사 이후 활력을 선물해준 노력의 첫 결과물
2) 노력 대비 당첨이 쉽지 않은 각종 이벤트 참여 중단.
당첨을 기대하며 발표일만 기다리는 내가 짠해서 못 봐주겠음
3) 직장인이었을 때의 소비 습관이 많이 떨어져 나갔고, 절약하고 참을 줄 아는 모범 백수가 되어감
4) 줄어드는 통장잔고를 확인하는 것이 무서워져 가계부 작성 중단
5) 날이 너무 더워 아침 걷기 운동 중단 : 라디오 들으며 가볍게 동네 한 바퀴 산책하는 것으로 변경
6) 부지런한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중단된 걷기 운동 대신 아침 독서로 루틴 변경
7) 무더위로 신체 활동량이 줄어들면서 고민과 생각이 많아짐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우울감, 무기력증이 최고조로 달하여 심적으로 가장 힘든 달
8) 엄마가 커피 값하라며 20만 원 용돈 줌
용돈까지 받으니 눈치가 더 보이지만, 현실을 생각하며 주는 돈은 거절하지 않음
7월 어느 날의 일기 한 줄 :엄마가 자주 하던 말, '죽으라는 법은 없다.'
나락으로 떨어져 가던 나의 자존감이 '작가 합격'으로 다시 올라온다. 오늘도 느낀다. 행복은 사실 별 게 아니라고...
2022년 8월(5개월째)
1) 포항에서 만끽한 여름휴가로 8월을 아주 기분 좋게 출발
까르페디엠, 한 주의 여름휴가는 의미 없는 많은 생각들을 멈추게 해 줌
2) 절약만 하기보다는 시간 있을 때 하고 싶은 것은 해보자라고 마음 먹지만 여전히 필라테스 수업은 비싸서 포기
1:1 기구 필라테스 수업을 포기하고 다수의 수업을 신청하면 되는데 이놈의 낯가림으로 용기가 안 생김
3) 하루 종일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것 같다는 생각이 잦아짐
4) 주 4회 브런치 발행을 목표
글을 쓰려고 주위에 관심을 갖다 보니 허투루 지나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 요즘
5) 엄마가 휴가 때 쓰라며 50만 원 용돈 줌
받지 않으려 했으나, 내가 3년 동안 엄마를 위해 매월 10만 원씩 넣어줬던 만기 된 적금을 찾은 날 엄마는 '네 덕에 생긴 돈' 이라며, 부담 갖지 말고 맘 편히 휴가 잘 다녀오라며 손에 쥐어줌.
8월 어느 날의 일기 한 줄 : N 잡러 가 대세인 세상이지만 나는 0잡러이다. 요즘은 회사 출근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무엇이든 해볼까 싶어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이것저것 일자리를 찾아본다. 진득하니 쉬어보기로 해놓고 난 또 다른 곳에 기웃거린다.
2022년 9월(6개월째 ing)
1) 현재의 처지에 맞게 씀씀이가 변함
2) 다시 아침 만보 공원 걷기 운동 시작
선선해진 날씨 덕에 무기력증이 해소된 것 같은 기분
3) 조금의 마음 여유가 생김
미세한 불안이 늘 존재하나, 무시하고 지낼 만큼의 확신도 미세하게 존재
9월 어느 날의 일기 한 줄 : 그곳만 끊어내면 삶이 윤택해질 줄 알았는데, 모든 것이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빗소리가 들린다. 빗소리에 기분 좋게 잠들 밤이다. 오늘은 이거면 됐다.
퇴사를 결정한 게 잘 한 선택일까 의심이 들 때가 있다.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마냥 편한 마음이 아닌데, 이럴 거면 돈이라도 벌고 있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울컥 올라올 때도 있다.
그렇지만 현재의 나는,
달고 살던 위염과 장염이 사라졌고,
이틀에 한 번꼴로 눌리던 가위가 사라졌으며,
이유모를 짜증과 화가 많이 줄었다.
그리고 하고 싶었던 글쓰기에만 집중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이 네 가지 만으로도 나의 선택에 어깨 펼 수 있지 않을까.
티는 잘 안 나지만, 분명 나는 나아지고 있다.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