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때는 무음으로 해뒀어야지!

-미안해서 오히려 더 성질내 본다.

by 코알라

그와 나 중에 누가 더 잠이 많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나다.

회사 다닐 때에는 대중교통과 통근버스를 이용하며 왕복 5시간이라는 출퇴근 시간을 보내야 했기에 칼퇴를 해도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회사와 집뿐인 일상에 변화를 주고자 호기롭게 시작한 취미생활도 일주일을 가지 못했고, 평일 저녁엔 늘 10시를 넘기지 못하고 잠들어 버렸다.


야근 없는 평일,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자 그와 만나더라도 식사 후 찾아오는 포만감이 나의 고됨과 더해져 차에서 잠들어 버리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자고 일어난 나에게 이렇게 차에서 잠만 잘 거면 대실비를 지불하라며 그는 볼멘소리로 투덜대지만 나를 일부러 깨운 적은 한 번도 없다.


평일에 만나더라도 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해야 되는 나의 고충을 그도 알기에 밤 10시 전에는 무조건 헤어졌다. 각자의 야근으로 만나지 못한 날에는 잠들기 전 통화로 아쉬움을 달래고자 하지만 몇 마디 나누지도 않고 금세 잠이 온다며 '잘 자'라는 말로 대화를 끊어버리는 내가 그의 입장에선 무심하다 느꼈을 것이다.


간혹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웃긴 짤이나 핫딜가 상품 링크를 그가 보내 놓곤 하는데, 나는 잠들어 있는 시간 동안의 모든 알림은 무음으로 설정해 두기 때문에 그가 보내오는 문자들에 방해받지 않고 꿀잠을 잘 수 있다.

덤벙대고 게으른 내가 '방해금지 시간대 설정'까지 해둔 것을 보면 정말 잠에 진심이다 싶다.

이렇게 나와 공유하고 싶은 게 많은 그는 혼자 밤과 새벽을 보내다 잠이 들었고, 새벽에 일어나는 나는 읽히지 못하고 빨갛게 남아있는 그의 문자를 확인하는 게 기상 후 제일 처음으로 하는 일과가 되었다.


지금까지 그에게 가장 많이 받았던 문자는 '벌써 자게?'였고, 그에게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문자는 '먼저 잘게, 너무 늦게 자지 말고 일찍 자.' 였었다.




그런 우리 사이에 최근 '굿나잇 인사'가 바뀌었다.

"벌써 잔다고?"

이 말은 그가 아닌 내가 요즘 그에게 자주 하는 말이 되었고,

"너도 너무 늦게까지 놀지 말고 일찍 자."

이 말은 내가 아닌 그가 요즘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 되었다.


나랑 더 놀아달라며 떼쓰고 싶지만, 내일 출근해야 하는 그를 생각하면 지금 잠들기에도 이미 늦은 시간인지라 아쉬움을 숨기고 쿨하게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네며 그를 꿈나라로 보내준다.

그는 자고 싶을 때 자면 되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면 되는 나를 부러워하다 배 아파하다 잠이 든다.


그가 사라진 나의 밤과 새벽은 더 고요하게 느껴졌고, 더 쓸쓸하게 다가왔다.


새벽 3시까지 아무 이유 없이 잠이 오지 않는 어느 날이었다. 깨길 바란 건 아니었지만 괜히 아직도 잠들지 못하고 있는 나의 상황을 알리고 싶어 답을 기대하지 않고 문자를 보냈다.

"아직 안 자? 잠이 왜 안 와, 휴대폰 그만 보고 눈 감고 있어 봐."

자는 줄 알았던 그가 보낸 문자에 반가워 재빠르게 문자를 다시 보냈다.

"안 잤어? 심심해서 그냥 문자 보낸 건데."

"자고 있었지, 자다가 문자 알림 소리에 깼어."

소리에 민감한 그도 당연히 나와 같이 잠자는 시간엔 알림을 무음으로 해두었을 거라 여겼는데 나 때문에 깼다는 사실에 갑자기 미안해졌다.

"잘 때는 무음 해놔! 잠 귀도 밝은 사람이 왜 소리로 해뒀어! 그럼 이렇게 자다가 깰 일도 없잖아!"

명백한 나의 잘못을 괜히 그의 탓으로 돌려버렸다.




낮보다는 밤에, 밤보다는 고요한 새벽이 주는 혼자만의 외로운 시간을 즐겼었고, 스스로 꽤 외로움을 잘 갖고 노는 멋진 인간이라 여겼다.

하지만 내가 즐기는 외로움엔 보호자가 있었다. 언제든 내가 연락하면 받아 줄 다른 공간에 깨어 있는 '그'라는 보호자.


회사를 그만두고 난 뒤로 '정말 아무도 없는' 밤과 새벽을 자주 맞이하고 있다.

이제는 고요한 새벽의 혼자만의 시간이 마냥 즐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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