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괜찮지 않다가도 괜찮아지는 엄마의 위로.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선명하게 추억하는 어린 시절이 있다.
친구들과의 일탈, 여행 등 무모함이 사라져 버린 지금의 나는 절대 할 수 없는, 그래서 더 귀한 어린 시절의 추억은 내 보석함에 고이 간직해 놓은 보석들과 같다.
대부분이 '무모함과 즐거움'에 대한 추억들이지만, 몇 안 되는 '따뜻함'의 카테고리 속 가장 큰 보석은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울면서 나눈 엄마와의 짧은 전화통화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친구들과 재미 삼아 친 화투에서 몇 번의 승리를 맛본 엄마는 기분이 좋았는지 나에게 문구사에 가서 갖고 싶었던 것을 사라며 거금 만 원을 주었다.
30년 전 10살짜리에게 만 원은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있을지 몰라 냅다 돈을 받아 들고 기쁜 마음으로 문구사로 뛰어갔다.
뛰어간 것이 잘못이었는지, 흥분된 마음으로 돈을 제대로 주머니에 챙겨 넣지 않았던 것인지, 아직도 이유는 모르지만 문구사에서 꽤 오랜 시간 고심 끝에 고른 인형을 잡아들고 계산하려고 보니 만 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주변을 아무리 샅샅이 찾아보아도 내 만 원은 보이지 않았다.
돈을 잃어버렸다며 아까워하기보다 엄마에게 크게 혼날 것만 같아 명치끝이 찌릿할 정도로 겁만 났다.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채 한참을 서성이다 문구사 앞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왜? 무슨 일이야? 문구사 안 갔어? 어디야 너!"
예상과는 달리 울먹이며 엄마를 부르는 내 목소리에 엄마는 놀랐고, 재차 어디냐고 물었다.
"엄마가 준 만 원... 잃어버렸어... 어떻게 해..."
"뭐? 돈 잃어버렸어? 어디서?"
"몰라... 문구사에 왔는데 없어..."
울음이 터졌다.
그 큰돈을 칠칠치 못하게 어디에 흘려버렸냐며 불호령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엄마가 나긋이 내 이름을 불렀다.
괜찮다며 별 일 아니라는 엄마의 말은 체한 듯 불편하게 남아있던 불안감을 흘려보내주었고, 다시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엄마를 보자마자 울음이 터져 나왔다.
엄마는 다음부터는 무슨 일이 있든 간에 밖에서 울고 다니지 말고 집으로 얼른 오라 하며 나를 달랬다.
'늘 불같은 엄마라 이번에도 불같이 화낼 줄 알았는데, 오늘은 따뜻한 난로 같네.'
어린 마음에도 이런 생각을 했었던 그날이 나는 여전히 생생하다.
10월 말, 글을 쓰며 휴식기를 가지고 있던 나에게 인사팀 팀장인 친구가 이직 제안을 했다.
사내규정 관리나, 노동법에 경험 많은 내가 함께 일을 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꼭 같이 일하고 싶다 했다. 나에게 큰 스트레스를 준 노무 직무에 내가 다시 뛰어들 수 있을까 고민의 고민을 하다 하지 않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 싶어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외국계 회사라 본사 매니저와의 형식적인 면접만 남겨둔 채 공장 투어와 회사 조직체계도 및 사내규정에 대한 정보를 미리 전달받아 업무 준비를 하고 있던 찰나, 내부 사정으로 내 입사가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정년퇴직을 앞둔 캐나다 지사의 한국인 직원이 한국에서 정년을 보내고 싶다 하여 내가 가려던 자리로 발령받았단다.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느낀 설렘과 잘 해내야겠다는 다짐들이 무의미해져 버린 그 순간 억울함이 복받쳐 올랐다.
'가만히 열심히 글 쓰고 있는 잔잔한 호수에 다시 일하고 싶은 마음을 일렁이게 만든 건 너잖아!'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게 두렵다는 나를 한 달이나 설득한 건 너지 않냐며 친구를 탓할 뻔했지만, 나에게 이런 결과를 알릴 수밖에 없는 그녀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다.
-속상하지만 어쩌겠어. 그렇게 결정된 것을... 너도 너무 마음 쓰지 마. 괜찮아.
속마음과 다른 말을 친구에게 건네며 괜찮다 했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다.
-엄마, 나 입사 취소됐어.
내심 나의 이직에 기뻐하던 엄마에게 짧은 문자로 사실을 알리고 나니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렇구나, 괜찮아. 결과는 반반이었잖아.
사실, 나는 결과가 반반의 확률일 것이라 생각지 않았다. 그래서 더 속상했다.
사람은 다 때가 있다며, 이제 네가 일 할 때가 되어서 그런 좋은 기회가 왔나 보다 라며 나만큼 좋아했던 엄마도 사실은 반반의 확률이라고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도 나만큼 속상했을 것이고...
-엄마 곧 퇴근해, 얼른 집에 와. 별 일 아냐 괜찮아. 집에서 보자.
만 원을 잃어버린 10살, 그때의 공중전화 부스에 지금의 내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처럼 엄마는 밖에서 울지 말고 얼른 집에 오라 했다.
이번엔 울지 않고 여느 때처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집에 들어가야겠다.
속상했을 엄마가 괜찮은 나를 보며 안도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