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다 이유가 있다.
"그만 내려놔, 그러다 키 줄어들어."
"엄마, 무슨 이 정도로 키가 줄어... 오바야."
아기를 좋아하는 내가 조카를 안아 들어 어화둥둥 하고 있으면, 조심스레 나에게 다가와 나만 들리는 목소리로 엄마가 소곤댄다.
100일이 조금 지난 둘째 손자가 눈에 아른거린다며 매주 동생네 집에 갈 만큼 손녀, 손자 사랑이 지극한 엄마라도 아직까진 내가 일등인가 보다.
엄마는 늘 불필요하다 싶을 정도로 나를 걱정한다.
엄마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아는 이모들은 그런 엄마가 자식에게 유난이라며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목소리로 놀려댄다.
설 연휴, 막내이모와 팔공산에 오르며 나눈 어느 이야기 끝에 이모가 나에게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엄마 자식한텐 유난스럽잖아. 좀 갑갑하긴 하겠다."
"뭐 좀... 그럴 때가 있긴 있어."
물론 캥거루족으로 살고 있는 내 현실을 탓해야겠지만, 귀가 시간을 매일 체크하는 엄마의 잔소리에 사실 좀 갑갑하던 찰나였다.
월요일 오후 1시쯤, 통화할 일이 별로 없던 셋째 이모로부터 전화가 왔다.
셋째 이모는 보통 월요일이 휴무일인데, 그걸 알고 있는 외할머니가 서울 사는 막내 이모에게 보낼 반찬 택배가 있으니 근처 우체국까지 데려다 달라고 전화가 왔단다.
하지만 이모는 펌을 하러 미용실에 와 있는 상황이라 갈 수 없었고 펌이 끝나려면 2~3시간은 걸리는데 외할머니가 지금 당장 택배를 보냈음 한다며, 나에게 택시를 불러 달라는 것이었다.
"나보고 택시 불러 달라는데, 내가 언제 택시를 불러 봤었어야지... 무슨 앱으로 택시를 부를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게 뭔지도 모르겠고... 너 시간 되면 택시 좀 불러 줄 수 있어?"
"아~그래? 알겠어. 내가 택시 불러 줄게 이모."
회사 재직 중에 외근을 가야 할 때면 운전하기가 싫어 카카오T를 자주 이용했었다.
예전에 외할아버지가 병원 입원 중이실 때, 외할머니에게 몇번 택시를 불러드렸는데 그때마다 등록된 신용카드로 자동결제가 되니 절대 기사님께 돈을 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외할머니는 매번 내가 택시비를 지불하는 것을 고맙다 했고 미안하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일부러 더 밝은 목소리로 외할머니에게 말했다.
보통 때 같으면 외할머니가 나에게 직접 택시를 불러 달라고 했을 것인데, 아무래도 이놈의 자동결제가 마음에 걸려 셋째 이모에게 택시를 불러 달라 한 듯하다.
엄밀히 말하면 이놈의 자동결제보다는 백수가 된 손녀의 처지를 염려해서 인 듯하다.
"할머니, 제가 택시 불렀으니까 곧 집 앞에 택시 갈 거예요. 자동결제되니까 절대 기사님한테 돈 드리지 마세요."
"네가 또 돈을 내니? 아니다 아니야. 내가 낼게. 미안해서 어쩌니..."
"아니야, 이거 자동 결제하면 더 할인되니까 걱정 마요. 얼마 안 해."
도저히 끝나지 않는 외할머니의 걱정에 되지도 않는 할인을 들먹이며 외할머니를 안심시켰다.
퇴근하고 돌아온 엄마에게 하루의 일과를 이야기하다 외할머니에게 택시 불러드린 이야기를 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듣고 넘길 엄마가 갑자기 정색했다.
"셋째 이모는 왜 그 많은 조카들 중에 너한테 전화해서 택시 불러 달라고 하고 난리야?"
"응? 내가 할머니한테 자주 택시 불러 줬으니까... 그거 알고 그냥 전화한 걸걸?"
"네가 택시 자주 불러 준 걸 할머니가 얘길 안 했는데 걔가 그걸 어떻게 알고! 지가 오기 귀찮으니까 괜히 너한테 일이나 시키고 말이야."
"미용실이라 올 수가 없었대. 별 것도 아닌데 왜 그래?"
"미용실은 무슨... 11시에 미용실 갔다던데 1시면 곧 끝날 텐데 지가 와서 우체국 가면 되지!!"
"아니 뭐... 늦게 끝날 수도 있지, 그런데 왜 이렇게 화를 내? 별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화를 내나 싶었다. 그 정도는 내가 해도 되지 않나 싶었다.
갑자기 화를 내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아 나의 언성도 조금씩 높아졌다.
"뭐 필요하고 시킬 때만 널 찾니? 설에 용돈은 다른 조카들은 다 주고 너만 안 주고! 뭐 맛있는 거 먹으러 갈 때는 큰 이모네 부르면서, 택시 부를 땐 왜 널 부르냐 이 말이야! 내가 너한테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가만 보면 셋째 이모도 약아빠져선..."
아... 엄마가 단순히 셋째 이모가 나에게 부탁한 그 일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알게 모르게 쌓인 지난 일들이 있었고, 챙겨 받는 건 다른 조카인데 부림 당하는 건 내 딸이라는 생각에 욱했던 것이다.
자식 사랑이 끔찍한 엄마에겐 더없이 화날 일이다. 인정.
"그냥 외할머니가 편하게 택시 타고 다녀왔다는 것만 생각하자. 괜히 화내면 혈압 올라. 워워~"
"내가 뭐 할머니 택시값이 아까워 이러는 줄 알아!"
"그래 그래 알겠어, 알다마다! 셋째 이모는 왜 그런대!!! 참나! 담부터는 전화도 안 받을 거야!"
"뭐 또 전화를 안 받기까지야..."
역시, 내가 쎄게 나가면 진정되는 엄마다.
불현듯 팔공산에서 막내 이모의 말에 반박하지 않은 내 입을 치고 싶을 만큼 후회되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생각했다.
다음에 막내 이모를 만나면 다시 얘기할 것이다.
"너희 엄마 자식한텐 유난스럽잖아. 좀 갑갑하긴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