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뭐 별 거니? 지루하게 앉아있기밖에 더 해?

-캠핑을 가겠다는 의외의 엄마.

by 코알라
동생 : 엄마한테 추석에 캠핑 가자고 얘기해볼까?
나 : 엄마 추석 당일인데 캠핑 가려고 하겠어?
동생 : 전화해봐야지.
나 : 그래, 전화해봐.

설, 추석 당일엔 무조건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이 엄마의 불문율이다. 그런 엄마에게 캠핑을 제안해보겠다는 동생의 말에 어지간히 좋은 소리 듣겠다라며 속으로만 비꼬았을 뿐, 티는 내지 않았다.


동생과의 문자를 끝내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엄마에게 연락이 왔고, 엄마는 동생에게 흔쾌히 함께 캠핑을 가겠노라 했다며 나에게 함께 가자 했다.


나 : 엄마 진짜 캠핑 가고 싶어? 추석이잖아.
엄마 : 엉, 가고 싶어. 추석이라고 뭐 하는 게 있니, 밥이나 먹고 지루하게 앉아있기나 하지.
나 : 간다고? 간다고 했다고? 진짜? 진짜 가고 싶어?
엄마 : 그래 가고 싶어, 몇 번을 말하니.


다만, 동생네는 2박 3일을 계획한 캠핑이지만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이 이번에 처음 지내게 되는 외할아버지의 제사이기에 우리 둘은 당일로 바람만 쐬고 오자 했고, 나도 추석 다음날 약속이 있었던 터라 그러자고 했다.

지금 나에겐 당일이니 1박 2일이니 2박 3일이니 일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 엄마가 달라졌다는 게 너무 충격일 뿐이었다.




어렸을 땐 아빠의 본가인 마산 할머니 댁에서 늘 명절을 보냈다.

엄마는 큰엄마와 작은엄마, 숙모들 틈에 끼어 말없이 요리와 설거지만 했고 어쩌다 생긴 여유 시간엔 불편한 자세로 벽에 기대어 앉아 멍하게 TV만 보곤 했다.

마산 할머니 댁에서 내가 알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유일한 순간은 우리 가족만 남겨진 작은 방에서 잠들기 몇 분 전뿐이었다.


몸이 좋지 않았던 엄마는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몇 차례 명절 연휴와 겹쳐 입원한 적이 있었고, 자연스레 아빠와 남동생만 마산 할머니 댁 본가에 제사를 지내러 갔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아빠와 남동생도 본가에 가지 않게 되면서, 자연스레 명절엔 집에서 우리 가족끼리만 단출히 명절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다고 여유로워진 명절 연휴에 가족들과 해외여행이나 관광지로 놀러 간 적은 없다. 엄마와 아빠는 명절엔 무조건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없었기 때문이다.




"다녀와, 난 집에 있을래."

가지 않겠다는 아빠는 쿨하게 집에 남겨두고, 엄마가 손수 준비한 각종 전과 갈비찜, 소고기 뭇국을 점심으로 배 터지게 먹은 뒤 동생이 예약한 근교 캠핑장으로 향했다.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아도 된다는 올케의 말에 엄마는 "혹시나 먹고 싶을 수도 있잖니, 혹시나 모자랄 수도 있잖니"라고 말하며 남은 음식과 과일을 챙겨 차에 바리바리 실었다. 올케가 챙겨 온 2박 3일 짐보다 엄마가 순식간에 싼 음식 가방이 더 컸다.


"안 그래도 근교 나들이 가고 싶었는데 잘됐다. 설마 갔는데 캠핑장에 우리밖에 없는 건 아니겠지? 명절 쇠러 어디 가지도 않고 캠핑 왔다고 캠핑장 사장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거 아냐? 어머, 가는 길도 이쁘다, 창 밖 좀 봐라."


엄마는 가는 내내 설레면서도 걱정되는지 한시도 쉬지 않고 나에게 말을 건넸다.


"엄마, 오늘 새벽부터 음식 만들고 청소했잖아. 안 피곤 해?"


"뭐가 피곤하니? 청소야 늘 하는 거고, 음식이야 내 가족 먹이는 건데, 그리고 지금은 어쨌든 놀러 가는 중이고."


엄마의 걱정과는 반대로 캠핑장은 우리보다 먼저 와있는 다른 캠핑 가족들로 꽉 차 있었다.

엄마보다는 오히려 내가 더 이 상황에 적응을 못한 채 놀라워했다.


"엄마, 추석인데 캠핑장에 사람 많은 것 좀 봐!"


"다들 가족들하고 캠핑 온 거지, 우리처럼"

엄마는 '캠핑장에 우리밖에 없음 어쩌지'라는 일말의 걱정이 사라진 지금의 상황에 안도하고 있었다, 우리만 명절을 보내는 방법이 달라진 게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안도.


캠핑을 즐기러 온 가족들(좌) 텐트 치는 엄마, 아빠를 방해하지 않으려 익숙한 듯 혼자 노는 조카(우)



어쩌면 엄마도 명절에 이렇게 놀러 가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어른들의 눈치에, 제사에, 당연했던 명절의 노동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도리'가 아니라 생각했기에 내색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해왔을 뿐이지 않았을까?


"우리 가족만 아무 탈없이 행복하게 잘 지내면 되지, 남이 무슨 상관이니 그지? 괜히 걱정했다야."

엄마는 이번 당일치기 캠핑으로 이 마음이 더 확고해진 듯 결의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집에서 가져온 전을 엄마가 웃으며 데우고 있다.

생각 없는 놈이라 욕했던 동생에게 갑자기 고마워졌다.

가끔은 생각 없이 내던져보기도 해야 되는 거였다.


전 데우고 있는 자신을 이쁘게 사진 찍어보라며 지시 내린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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