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나는 너처럼 시댁을 가진 않지만.

-동질감은 느낄 수 없지만, 동감은 확실히 할 수 있어!

by 코알라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인 이번 주 월요일 친구를 만났다.

이번 설은 연휴가 짧다는 내 말에 친구가 정색하며 4일이나 되는데 뭐가 짧냐 했다.

토일은 주말이라 원래 쉬는 날이고 월화만 설 연휴가 아니냐 반박했다. 그러고 보니 회사를 그만둔 지가 언젠데 연휴를 생각하는 마인드가 여전히 직장인인 내가 싫다.


"토일도 설 연휴잖아. 난 토요일부터 시댁 가서 전 부쳐야 돼."

아... 친구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되었다.

결혼하지 않은 백수이지만 직장인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한 나는 실질적인 공휴일의 개수만 생각했지만, 친구에겐 설연휴의 시작과 끝이 중요했다.

힘내라는 식의 나의 위로는 어차피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아마, 이 순간 친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과 똑같은 처지의 동료들이다. 안타깝지만 나는 아니다.


기혼인 친구들 틈에 단일한 미혼인은 시댁얘기, 가족얘기, 자녀얘기만 하는 그 무리에 흥미를 점점 잃어버려 자발적으로 빠지게 되거나 도태되어 버린다.

물론,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나 빼고 절차대로, 순서대로 그들만 나아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고, 겉도는 위로나 공감밖에 해줄 수 없는, 간혹 그 말조차 나오지 않았던 순간들이 있었다.


만날 때마다 또 하고 또 해도 재밌기만 한 지난 학창 시절을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들의 만남의 이유가 충분했던 날들이 점점 줄어가고 있다는 걸 느낄 때쯤
이러다 친구들이 다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두려웠던 적도 있다.


그들과 다른 일상을 보내고 있는 내가 그들에게, 그들이 나에게 흥미를 잃게 되는 순간이 오면, 우리는 지금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내가 들어만 주는 게 이들에게 언제까지 효력이 있을까?




그래서 도리어 '나'는 어땠는지 생각해 보았다.

흥분해서 해대는 나의 회사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내 기분이 어땠는지 복기해 보았다.

들어주는 내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중간중간 적당한 취임새도 놓치지 않는 그녀들이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진심이든 입 발린 소리든 너나 할 것 없이 내 편을 들어주며 내가 욕한 그 상사를 더 심한 욕으로 밟아주고 있다.


'나는 이 정도도 좋은데?'

나는 들어주는 그녀들의 그 표정만으로도 후련해지고 치유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나도 그렇듯 기혼 친구들도 내 호응만으로도 좋을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내 마음이 만들어 낸 답 없는 고민이니, 내 마음이 답을 내버리면 되지 않을까?


친구와 신나게 아이 쇼핑하고, 하도 수다를 떨어대 목이 말라 벤티 사이즈의 히비스커스도 배 터지게 마셨다.

오후 4시, 친구가 하원하는 딸을 데리러 유치원에 가봐야 할 시간이 되어 헤어져야 했다.


"이번 주 힘들겠다. 설 연휴 잘~보내고 우리 또 보자. 담엔 거기 가보자 새로 생긴 뷔페."

고달프게 설 연휴를 치러야 하는 친구에게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며 인사했다.

"좋지 좋지~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너도 설 연휴 잘 보내, 연휴 끝나고 봐."

웃으며 친구도 다음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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