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 중, 친구를 잃어가는 중입니다.

-도서.'타인의 마음'을 읽고.

by 코알라
모두에게 똑같이 대하는 것은 내 마음의 현황판을 그리지 못해서입니다.
다양한 관계 속 내 마음의 현황판을 그리다 보면, 적어도 모두에게 '괜찮다'고만 하는 사태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도서 '타인의 마음' 중에서


몇 년 전 어느 주말 아침, 눈을 뜬 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이러다 내가 죽으면 누가 나를 기억이나 해줄까?'라는 우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무섭고 불길하고 우울하고 외로운 생각은 늘 찰나의 빈 공간을 노린다.

그 노림수에 놀아나거나 갖고 놀거나... 그때 그때 다르다.


월~금요일까지 업체 사람들로 북적이며 울리던 휴대폰도 주 5일제 근무인지 주말엔 울리지 않았다.

카톡과 문자는 친구, 지인과 주고받은 것보다 광고가 일방적으로 보내온 것들이 더 많았다.

주말에 약속이 없어진 지는 오래되었다. 친구와의 약속은 연애, 결혼, 출산에 밀린 나이가 되었다.


그러다 문득, 더 이상 내 주변의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것은 막아야겠다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괜찮아, 나도 좋아.'를 입에 달고 살 게 되어 버린 것 같다.


이 습관의 단점은,

첫째, 나의 취향을 잃어간다는 것과

둘째, 가족과 몇 안 되는 찐친,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짜증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간혹 그 짜증은 전혀 어울리지 않은 타이밍에 발산되기도 하므로 당하는 상대방은 억울할 때가 있다.


그리고, 이 시기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넌 나한테만 이러지? 내가 제일 편하지? 엉!"이다.

처음엔 뭘 또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받아들이나 라며 상대방을 탓했다. 그러다 이런 말을 듣는 빈도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쯤 되니 나한테도 뭔가 분명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인간관계에 대한 다짐을 바꿨다.
'솔직해지자, 친구를 잃는다 해도.'



'타인의 마음', 인간관계의 태양계를 만들어 보라는 책 속의 말이 너무 와닿았다.

경조사에 따라 주변의 타인들과 나와의 거리를 알고, 그 거리에 맞게 타인을 대한다면 더 이상 남에게는 '괜찮'지만, 나에게는 '안 괜찮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정리.png 책 내용이 너무 좋아 필사 중 (왼) / 인간관계의 태양계 (오)



서울로 이직한 지 5년 정도 된 남자 후배가 있다.

단톡방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흔한 새해 인사조차 나누지 않는 사이다.

그러던 그 후배가 단톡방에 작년 연말쯤부터 시덥잖은 농담을 한두 마디 툭툭 던져댔다.

시답잖은 농담에 반응하는 멤버는 늘 그렇듯 막내 박대리뿐이다.

하루이틀 정도 지나니 그 후배의 프사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친구의 사진으로 바뀌었고, 단톡방의 한 멤버가 결혼하냐고 물었다. 평소에도 사소한 일신의 안부들은 무시하고 농담만 해대던 그 후배는 결혼하냐는 그 질문에도 '네, 아니요.'의 대답은 하지 않고 아무도 원치 않는 이상한 농담들만 해댔다.


-다들 어디예요? 청첩장 받아야죠?

바뀐 프사덕에 결혼을 곧 하긴 하나보다 라고 짐작만 하고 있던 어느 날, 당연한 듯 청첩장을 건네려 하는 그의 태도가 갑자기 너무 '싫어졌다.'

필라테스를 끝내고 대화 내용을 마저 읽어보니 결국 언제, 어디서, 어떻게 청첩장을 전달하고 받을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 또 시덥잖은 농담들만 늘어놓아져 있었다.


-과장님, 결혼식 갈 거예요?

단톡방 멤버인 박대리가 나에게 물었다.


-결혼한대?

-하니까 청첩장을 준다는 거 아닐까요?

-어디서 한대?

-서울... 에서 하지 않을까요?

-우리 보고 오래?

-단톡방에 청첩장 이야기 하는 거 보니... 오...라는 거 아닐까요?

-'결혼한다. 결혼식에 와달라.'이 간단한 말조차 안 하는 애한테 3만 원도 아깝다. 안 가.

-에? 진짜 안 가요? 다들 서울이라 못 가더라도 축의금은 할 것 같은데...

-안 가고 축의금도 안 해. 거기 낼 돈 있음 친구들한테 커피나 한 잔씩 쏠래.

-오... 과장님 단호하시네요.

-어, 단호하려고.


예전 같으면 단호하게 마음먹은 일이라도 다수가 선택하지 않은 나의 선택은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였다.

나는 '아니요.'이지만, 남들이 '예'이면, 망설이지 않고 나도 바로 '예'로 바꿨다.


그렇게 유지된 그와 나의 관계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정말 그 돈으로 매주 나와 놀아주는 친구에게 커피 한 잔 쏘는 게 훨훨씬 낫다.



나는 요즘 조금씩 거절하고 있다.

무턱대고 막무가내로 내지르는 거절이 아니다. 무분별하지 않다.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하며 거절을 표현하는데 신중을 구한다. 무례하지 않다.

상대방은 모르는, 상대방에 대한 내 마음속 응어리가 없어지다 보니 상대방을 대하는 내 마음이 한결 편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말 내 마음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다.


괜찮지 않은 건 괜찮지 않은 거다.
억지로 끼워 맞춘다고 괜찮아지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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