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함께 가주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좋은 남자.

-옛날엔 그랬더랬지.

by 코알라

조용한 카페에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 보는 것을 사랑한다.

예전엔 점심시간에 근처 카페까지 걸어가 커피 한두 잔 사마시는 게 전혀 부담되지 않았는데, 돈벌이가 없어진 요즘엔 한잔 한잔 소중하다. 어떤 날은 커피값 아끼려 집에서 녹차 한잔과 함께 독서를 시작해 보지만 역시 카페에서 보는 책이 맛나다.


J 씨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집에서 끊인 보리차가 세상에서 젤 맛나는 사람이다.

나를 만나기 전엔 스타벅스에서 커피 마시는 여자를 '된장녀'라며 혀를 찼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담배나 끊으라며 혀를 찼다.

썸 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스타벅스 아이스 카라멜 라떼를 J 씨에게 계속 사 먹였다.

달달하고 시원하이 여름엔 그만한 음료가 없다.

계획대로 그는 스타벅스 아이스 카라멜 라떼에 맛이 들려 버렸다. 이젠 날 만나면 알아서 카페로 향한다.

"왜 스타벅스 커피가 맛있다고 하는지 알 거 같아. 맛있네."

훗, 성공.


보통은 커피를 테이크 아웃한다.

공원 산책을 가거나 영화를 보러 가거나 하지 매장에선 잘 마시지 않는다.

나 혼자 아침 일찍 카페에 들러 책 한두 시간 읽고 오겠다고 해도 굳이 같이 가자며 따라온다. 그럴 때마다 매장 분위기에 동화되지 못하고 맞은편에 앉아만 있는 그가 신경 쓰여 읽던 책을 덮고 말을 붙인다.

그렇게 한두 마디 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대화의 맛에 빠져있다.


그날도 굳이 같이 가겠다고 해서 아침 일찍 동네 공원 근처 카페에 갔던 날이었다.

2층엔 공원 산책을 마치고 차 한잔 하러 온 듯한 중년의 부부 밖에 없었다. 아내는 책을 읽고 있었고, 남편은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대화는 없었다.

그 뒤편에 자리 잡고 앉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대화를 시작했다. 별것 아닌 주제들로 열띤 토론을 벌이다, 늘 마지막엔 '내가 얼마나 너한테 잘해주는지 아느냐.', '네가 뭘 그렇게 잘해주냐.'라는 유치한 창과 방패와 같은 대화로 마무리한다.

한두 시간 그렇게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그 중년 부부는 전혀 대화가 없었다. 이제는 아내가 휴대폰을 남편이 책을 읽고 있었다.


"두 분 다 대화 없이 각자 할 일만 하네. 살짝 정 없다 그렇지?"

모든 테이블에서 대화가 오고 갈 때도 유일하게 그 테이블만 대화가 없었다.

우리가 나갈 때까지 계속 그렇게 같은 테이블에서 서로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말없이 카페에서 각자 할 일을 하는 중년부부를 만난 건 3년 전 일이었다.

그때와 다르게 요즘의 우리는 정말 테이크 아웃만 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오자고 몇 번을 얘기해도 J 씨의 몸은 도통 움직이지 않는다. 굳이 왜 매장에서 마시냐는 둥, TV 보면서 커피 마시자는 둥, 주차가 불편하다는 둥, 평일에 혼자 충분히 카페에서 시간 보내지 않냐는 둥 갖은 핑계를 댄다. 그중 내가 반박할 수 없는 으뜸의 핑계는 '이번 한 주 일이 너무 많아서 피곤했다. 쉬고 싶다'이다.


카페에서 마주 보고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던 그때의 즐거움이 그리워 어쩌다 한번 가자고 졸라대도 그 어쩌다 한 번을 거절하는 J 씨가 미운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예전엔 카페에서 노는 거 좋아하더니 왜 지금은 같이 가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때의 J는 죽었다.'라는 되지도 않는 말로 내 입을 막아버린다.

'토론까진 바라지 않겠다. 난 책을 읽을 테니 넌 게임을 하든, 쇼핑을 하든 맞은편에 앉아만 있어라.'는 나의 절충안도 못마땅한지 연신 피곤하다는 말만 해댈 뿐이다.


그럴 때마다 그 중년부부가 생각난다.

둘 중 어느 누군가가 카페에 가자고 했고, 다른 누군가는 따라왔겠지? 보통 아내가 가자고 하지 않았을까?

카페에서 대화 없지만 할 일하는 부부의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자주 와봐서 자연스러운 거겠지?

각자의 취향대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한 명의 취향에 맞춘 공간의 배려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겠지? 이게 참 쉬운 일이 아니구나.


3년이 지나서야 남자 친구가 함께 카페에 와준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물론, 나의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DDD.png 혼자서도 카페를 충분히 즐길 순 있지만, 가끔은 같이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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