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레랑스.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도 이제 해제된다던데 넌 어떡할 거야? 계속 쓸 거야?"
"밖에선 걷다 보면 숨이 차서 안 하고 다니긴 하는데, 안에선 글쎄... 그때그때 내 마음대로?"
결정장애가 있는 나는, 친구가 마스크를 쓸 거냐 말 거냐 묻는 질문에도 시원한 대답을 내 놓지 못했다.
코로나19에 대한 긴장감은 확실히 예전만큼 크진 않지만, 이미 마스크가 주는 편리함에 적응되어 버린 나는 아예 마스크가 없던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게 되어 버렸다.
의무 착용 해제가 된 실내에서는 마음 가는 대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지만, 바깥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다. 걷다 보면 숨도 차고, 무엇보다 안경에 차오르는 습기 때문에 시야 확보가 되지 않은 불편함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작년 12월부터는 간간히 바깥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는데 이유는 입술에 염증이 생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건조해서 이러나 싶어 보습 립밤만 겹겹이 바르고 다녔다. 그러다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건조함이 점점 심해졌고, 입술 주변이 헐더니 수포까지 일어나 버렸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방문한 병원에서 입술 염증이 심하게 올라왔다며 바르는 약과 먹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처방받은 약으로도 입술에 생긴 염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불어대는 찬바람에 자극이 되어서인지 입술이 따가워 신경이 예민해졌고, 결국 안경의 김서림을 감안하고 바깥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게 되었다. 마스크 안에 모인 입김으로 보습이 더해져 예민했던 신경이 한결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처방받은 3일 치 약을 다 먹어도 낫지 않아 다시 처방받기 위해 병원으로 가던 길이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중 7살에서 초등학고 1, 2학년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할머니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 이제 마스크 안 써도 되지 않아?"
"안 써도 되지."
"그런데 왜 저 사람은 쓰고 있는 거야?"
저 사람? 혹시 나인가 싶어 살짝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는데 딱!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내가 맞는 듯했다.
"그러게 안 써도 되는데 왜 쓰고 나왔대. 유별나다 정말, 할머니도 모르겠네."
"난 왜 마스크 하고 나왔는지 알 거 같아."
"왜?"
"얼굴에 자신이 없어서, 마스크 벗으면 자기 얼굴 다 보이니까."
"그래 맞아, 여자는 보이는 게 중요하니까 얼굴에 자신 없어서 그런 게 맞네. 아이고 우리 손녀 똑똑하네."
백번 양보해서 어린아이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치자. 뭐, 아예 틀린 말도 아니니까.
조금 살이 쪄도 티가 많이 나지 않는다는 것과 맨 얼굴로 어디든 나갈 수 있다는 큰 장점 덕에 마스크의 편리함을 느낀 적이 많았으니 맞는 말이긴 하다.
내가 기분이 언짢아진 부분은 어른인 할머니의 대응이었다.
적어도 모르는 타인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될 경우엔 목소리를 줄이거나 속으로만 생각하는 게 예의이다. 나쁜 말은 더더욱 그러하고, 좋은 말이라도 모르는 타인이 누군가에게 관찰되고 있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니까.
그리고 손녀의 발상은 절대 똑똑한 발상이 아니며 칭찬받을만한 일도 아니다. 칭찬이 걸맞지 않은 상황에 칭찬을 하게 되면 아이는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는 자만에 빠지기 쉽다.
이 부분을 조곤조곤 따지고 싶은 마음에 할 말을 정리하는 동안, 이미 그 둘은 횡단보도를 건너 멀어지고 있었다.
1월 30일부터 실내에서 마스크의 착용 의무가 해제되었다.
물론, 의료기관이나 약국 등 마스크 착용을 의무 해야 하는 정해진 몇몇의 실내 장소는 있긴 하다.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라는 말은 해당 실내 장소에선 본인의 의사에 따라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하라는 뜻이다.
의무가 아닌 장소에선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이기적이라 욕할 것도 아니고, 마스크를 착용했다고 유난 떤다 뒤에서 수군댈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전엔 별 것 아닌 일이었는데, 요즘 들어 예민하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하지 않은 행동을 타인이 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일 여유가 사라진 듯하다.
'똘레랑스 (tolérance)'
고등학생 때 배운 이 단어가 갑자기 생각났다.
자신과 다른 특성과 성향을 가진 사람의 인격권과 자유를 포옹하고 인정해야 된다는 뜻의 단어이다.
"그래, 똘레랑스... 나부터 똘레랑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보내기로 했다.
가서 따진 들 무엇하겠느냐, 괜히 어린아이의 한마디에 예민하게 발악하는 아줌마밖에 더 되겠냐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