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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Jan 04. 2022

일상을 유지하고 평정심을 가질 것

두 번째 자가격리와 새해맞이

두 번째 자가격리 통보를 받은 날은 아이의 두 번째 생일이었다. 코로나 검사 결과 문자(음성)로 생일 아침을 맞이했다. 옷방 구석의 미끄럼틀이 다시 거실 정중앙을 차지하고, 새벽 배송된 식재료들이 냉장고 여백을 지웠다. 아이는 잠시 어리둥절해 보이다가도 신나게 미끄럼틀을 탔다. 활짝 웃는 오른쪽 눈 아래가 불그스름했다. 소아과에서 처방받은 3일 치의 약을 먹고도 낫지 않은 다래끼 치료를 위해 안과를 가야 했지만, 나갈 수 없었다.


격리중에 맞이한 두돌과 다래끼…


매일 몇 천 명의 사람들이 코로나 확진자가 되고, 그 몇 배의 사람들이 자가격리 통보를 받고, 4명 이하로 모인 사람들이 9시가 되면 집으로 가야 하는 연말이었다. 2021년의 마지막 날 집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끝내고 잠이 든 남편과 아이를 확인한 뒤 책상에 앉았다. 뭔가를 쓰고 싶었고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책상 위 위스키를 한 모금 입에 머금고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한 권을 읽었다. 새해 카운트다운 방송을 켜지 않았다. 입 안에 오크 향의 침묵이 온몸으로 퍼졌다. 날이 바뀌고 해가 넘어가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변함없는 확진자 수, 낫지 않는 아이 눈, 여전한 내 문장의 한심함.


위기가 있어야 성장이 있고, 갈등이 있어야 화해가 의미를 성취한다. 소설에서 갈등은 필연적이다.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상대를 오해해야 한다.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는 반지 파괴라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끊임없는 반지의 유혹과 반지를 노리는 적들을 물리쳐야 한다. 주인공의 사명은 공격받고, 사랑은 오해되고, 실패는 반복된다. 우리는 주인공이 이 위기를 당당히 이겨내고 보상받는 결말을 원한다. 꿈을 이루고 사랑을 얻고 성공한 주인공의 뒷모습으로 흘러나오는 엔딩 타이틀, 그리고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빨리 완성을 보고픈 마음은


삶의 빨리 감기 버튼을 연타해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싶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0에 가까워지고, 마스크를 벗고, 아이의 눈에서 다래끼가 사라지고, 말이 트이고, 두 번째 책 계약을 한다는 결말, 누구나 원하고 마음이 편안한 해피엔딩으로. 자고 일어나면 아이의 병이 낫고 메일함엔 출판 계약서가 쌓여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의 위기 전개를 건너뛰고 싶다. 우리가 새해 카운트다운에 의미를 부여하고 새해 첫 해돋이를 보러 달려가는 건, 풀리지 않는 문제들로 가득한 현재가 마법처럼 해결된 미래를 향한 의식의 집전일 것이다. 컴퓨터의 리부팅 버튼을 누르듯이.


날이 바뀌고 해가 달라지고 변한 것은 시간뿐이다. 작년 무명의 작가는 새해 무명의 작가일 뿐이고 갓 두 돌 지난 아이는 3일 만에 네 살이 되었고 다래끼는 꺼지지 않았다. 격리 해제 통보를 받자마자 아이를 데리고 안과를 갔고 다섯 종류의 약을 처방받았다. 몸부림치는 아이를 붙잡고 두 종류의 안약을 넣고 연고를 바르고 약을 먹였다. 이렇게 해도 낫지 않으면 수술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린이집은 다시 갈 수 있지만,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ㅋㅋ


결말을 읽을 수 없는 소설의 주인공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안과를 다녀온 뒤 이케아에서 아이가 쓸 새 테이블과 의자를 샀다. 집에 오니 연말에 주문했던 새 블루투스 키보드가 왔다. 아이를 재우고 테이블을 조립한 뒤 책상에 앉아 새 키보드로 글을 써 본다. 기계식 키보드라 글이 쓰이는 소리가 현실적으로 선명하다. 현재에 갇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책 읽기, 블록 놀이하기, 간식 먹기, 목욕하기, 잠든 사이 글쓰기, 매일 쓰기, 희망 없이 절망도 없이 그냥 쓰기, 평정심을 가지고 일상을 유지하기. 그리고 그들은 오래오래 버텨온답니다.


새 책상, 새 키보드, 새해, 한결같은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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