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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Dec 06. 2021

아이의 실패가 내 탓으로 느껴지는 날

어린이집 적응기


사실 바로  글에서 ' 어린이집 경험을 통해 하루의 시간표가 정해져 있다는 사회생활의 규칙을 익히는 '이라는 문장을 쓴 날, 아이3 연속으로 낮잠에 실패했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동네 도서관에 가서   권을 빌린  바로  카페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고 빌린 책을 읽고 있었다. 커피를  모금 마셨을 때쯤 전화가 왔다. 아이가 자기 이부자리에 아예 눕지도 않고 뛰어다녀 잠들  같지 않으니 집으로 데려가 재우는  좋겠다는 담임선생님의 연락이었다. 가방에 책을 넣고 남은 커피를 손에 들고 걸어가는데 바닥이 울렁거렸다. 어린이집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 심장박동 그래프처럼 위아래로 흔들리고 있었다.


세계가  심장박동에 맞춰 흔들릴 정도의 격한 이 감정은 무엇인가? 집에 오자마자 잠이 아이를 침대 안에 눕힌  다소 진정된 감정의 근원을 추적했다. 완전히 얻었다고 생각한 자유로운 시간을 빼앗겼다는 억울함?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한 일상이 흔들렸다는 분노? 가장 뼈아프게 다가온  실패했다는 느낌이었다. 아이는 낮잠에 실패했다. 아이는 오후  시부터  시까지 정해진 낮잠 시간을 지키는 일과에 실패했다. 아이는 학습에 실패했고 아이의 실패는  나의 실패다.



  생일까지  달도 남지 않은 지금 아이는 의미 있는 단어를 전혀 발화하지 못한다. '엄마' '아빠'조차 목적을 가지고 호명의 의미를 담아 말한 적이 거의 없다. 자신이 필요한  있으면 엄마를 부르는  아니라 직접 달려와  손을 잡고 간다. 스스로의 욕구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없기에 답답한 아이는 때때로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없는 부모 역시 답답한 마음에 무력감을 느낀다. 나의 육아 방식이 잘못되었나? 내가 말이 너무 없어서 그런가? 열심히 책을 읽어 주고 그림판으로 단어를 알려 주고 상황을 말로 표현해 전달하려 노력하지만, 아이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는 음절이 아닌 음성에 불과하다.


아이의 실패는  부모의 실패로 느껴진다. 아이는 부모의 2 자아이자 일종의 확장된 존재이기 때문( 커제즈, 부모가 된다는 것의 철학)이다. 영어유치원을 시작으로 아이의 교육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아이의 학교 성적에 민감하취직과 결혼까지 정해진 성공을 자신의 성공과 같이 여긴다. 아이의 성장발달이 조금이라도 뒤쳐지는  같으면 쿨한  넘기고 싶다가도 속으로 끙끙거린다. 말을  하는 아이를 보며 부모인 내가 실어증을 앓는다. 아이의 실패가  발밑의 세계를 뒤흔든다.


아니 내가 두 돌도 전에 코로나 검사를 두 번이나 받았다니까~?


결과적으로 아이는 반항기(?) 3일을 지나 다음 일주일 낮잠도  자고 평화롭게 4시에 하원했다. 결정적으로 평화로운 일주일의 끝에 어린이집 확진자가 발생했다. 토요일 오전 연락을 받자마자 부리나케 검사소로 달려갔고, 아들은  돌도 되기 전에 생애  번째 면봉으로 코를 뚫려 떠나가라 울었다( 번째는 작년 요로감염으로 병원 입원할 ...). 다음날 아침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남편과 나는 집에서 칩거하며 기도했다. 아무  없어라, 음성이어라, 건강하기만 해라, 건강하기만!


낮잠  가끔 건너뛰는  대수야?   늦게 터지는  문제야? 바로 코앞까지 전염병 바이러스가 들이닥쳤는데, 바로   전에 독한 감기까지 겪었는데, 그저 건강하기만  다오. 우리 앞에서 환하게 웃어 다오. 짜장 소스에 비빈   숟가락 먹고 박수를 치고 흥에 겨워 엉덩이춤을 추고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나를 보고 달려와  옆에 서서 내가 하는 일을 목격해 다오.  옆에 있어 다오.


결과는 음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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