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그러다 횡문근융해증이 잡으러 온다?

크로스핏의 어두운 일면에 대하여

by JiwooRan

크로스핏터를 겁주려면 어떤 협박이 효과적일까?

너 철봉 하다 손 터져서 손 씻을 때마다 따가움,

너 허리 나가서 중량 무겁게 못 침,

너 코로나 걸려서 운동 쉬어야 함,

부상으로 인한 운동 금지가 대부분인 괴담 속 가장 공포스러운 단어 하나가 있다.


너, 그렇게 무리해서 운동하다 횡문근융해증 온다?!


장난감을 사 주지 않는다고 쇼핑몰 바닥에 드러누운 아이에게 '너 이러면 이놈아저씨가 잡아간다!'는 어조와 용법으로 사용 가능하다. 횡문근융해증, 단어도 무섭게 생겼다. 시작부터 '횡'으로 포문을 여는 기세가 비명횡사 같은 무서운 말들을 연상케 한다. 삐끗하면 이 세상에서 저 너머 돌아올 수 없는 선을 가로질러 횡-하고 넘어버릴 수 있다는 무자비함이 느껴진다.


실제 횡문근융해증의 정의는 더 무시무시하다. 횡문근융해증은 근육이 괴사 되면서 세포 안에 있는 근육 성분이 혈액으로 방출되면서 나타나는 증후군이다. 내가 처음 이 단어를 접한 건 크로스핏에 입문한 지 한 달 되던 날, GHD-싯업을 배운 날 알게 되었다. 코치는 동작 설명을 하면서 초보자가 이 운동을 무리하게 할 경우 콜라색 오줌이 나오면서 응급실로 직행할 수 있다고, 그렇기에 절대 무리하면 안 된다고 경고하며 '횡문근융해증'을 입에 올렸다.


GHD-sit up


나중에 크로스핏 레벨 1 코치 자격증 수업을 듣게 되면서 왜 특히 GHD-싯업 동작을 할 때 유독 횡문근융해증 경고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 실제로 크로스핏 와드 도중 저 동작을 지나치게 무리해서 하다 횡문근융해증이 온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크로스핏에서 '레벨에 맞지 않는 와드를 수행했을 경우 맞이할 수 있는 최악의 사례'를 횡문근융해증으로 압축하여 전달하게 되었는지, 3일 간 진행되는 크로스핏 연수를 마친 뒤 내 머릿속에는 크로스핏의 열 가지 목표나 올바른 자세 지도법 같은 건 흐릿해지고 오직 '횡문근융해증'만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머릿속에 남아버렸다.


작년 가을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치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다치면 운동 어떻게 하지?'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차에 치여 날아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이만하면 운동을 할 수 있다고 안심했고 안심하는 나 자신에게 경악했다. 운동을 쉰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감기에 걸려도, 허리가 아파도, 전날 덤벨을 들어 올리다 어깨가 찌릿한 느낌이 영 좋지 않았음에도 어떻게든 운동을 하러 박스로 기어나갔다.


건강하기 위해 운동하는 게 아니라 운동하기 위해 건강한다. 동작이 크고, 거칠고, 무리하기 쉬운 크로스핏의 특성상 부상을 입기 쉽다. 즉각적인 성취감과 도파민을 보상으로 부여하는 크로스핏의 장점은 운동 중독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곧 단점이 된다. 부상을 입어도 운동을 멈추지 않는다. 터진 손을 훅그립테이프를 칭칭 감고 철봉을 또 잡는다. 부항자국으로 얼룩덜룩한 허리를 부여잡고 바벨을 꺼내든다. 무릎이 아프니까 대체할 수 있는 상체 운동 프로그램을 짜 달라고 코치에게 간청한다.


이 모든 광기를 압축한 단어가 횡문근융해증이다.


손이 터져도 바를 잡는 광기(?)에 대하여…


횡문근융해증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나를 죽일 수 있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 오히려 내 근육을 녹여버리는 극단적인 상황은 크로스핏을 대하여 양가감정이 들게 한다. 작년 크로스핏 리저널 대회에서는 선수 사망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극한까지 밀어붙여야 하는 극단적인 과제 앞에서 누구보다 단련되어 있었을 심장이 멈추었다.


열정으로 너의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자고 달려드는 크로스핏 앞에서 나는 귀신 앞에 부적을 들이대듯 횡문근융해증! 하고 소리쳐 멈춰 세운다. 너를 맹목적으로 사랑하기만 할 순 없어, 나는 재만 남고 싶지는 않거든. 손바닥의 굳은살을 눈썹칼로 긁어내며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지만 적어도 죽을 만큼 고통스러울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고뇌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