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동이 싫다

반어법을 공부해 봅시다

by JiwooRan

다음 글을 읽고, 글에서 반어법이 사용된 문장을 찾고 왜 반어법이 사용되었을지 그 이유를 서술하시오.

[반어법: 수사법의 하나로, 본래의 뜻을 강조하거나 표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실제 표현하고자 하는 뜻과는 반대되는 말을 쓰는 표현법]


오늘은 운동을 가고 싶지 않다.

비가 오기 때문이다.

우산을 써도 양말이 다 젖을 정도의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A는 오늘이야말로 진심으로 운동을 하러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운동을 가지 않을 이유는 많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회사 상사가 오늘따라 기분이 안 좋아 성질을 부려서, 기분이 너무 좋아서 쟤가 왜 저러는지 추측하는데 에너지를 다 써서, 월급날이라 기분이 너무 좋아서, 월급날인데 카드값으로 다 나간 잔고를 보고 기분이 다시 안 좋아져서, 어제 운동을 하는데 유독 무게가 안 들리고 호흡이 더 빨리 가빠져서, 이 정도 근육통이면 몸이 제발 오늘 하루만큼은 쉬어달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니 무시할 수 없어서...


A는 퇴근 후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오늘은 반드시 운동을 가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버스가 오고 문이 열리고 A의 뒤에 서 있던 사람이 A 앞으로 끼어들어 A를 향해 우산을 탁 접은 뒤 버스에 탄다. 버스엔 빈자리가 딱 하나 남았는지 새치기한 그 사람이 앉아 있다. 비에 젖은 몸을 털며 A는 새치기범을 흘끗 바라본다. 앙상한 팔과 다리를 근거로 전체 체중을 계산하여 이를 파운드로 환산해 본다. A의 상상 속에서 새치기범은 A의 머리 위로 순식간에 들어 올려진다. 새치기범은 저항 한 번 못 하고 인간 바벨이 되어버린다.


어느 날부터 A는 화가 나거나 불쾌한 사람과 마주치거나 언짢은 사건에 휘말리면 그 사람 혹은 그 사건을 바벨로 만들어 머리 위로 들어 올린 뒤 지체 없이 바닥에 집어던지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그럼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내내 버스에서 서서 오느라 피곤하다고 A는 생각한다. 집으로 들어와 빨래 건조대에 널어놓은 운동복을 걷어 운동 가방에 넣으면서 귀찮다고 생각한다. 현관 앞에서 쏟아지는 비를 보며 오늘은 정말로 운동이 가기 싫다고 생각한다. A가 다니는 크로스핏 박스는 집에서 오 분 거리고 오늘이야말로 운동을 빠져야 하는 날이 아닐까? 고뇌하는 사이에 도착할 정도로 가깝다.


그리고 A가 다니는 박스에는 헤드코치 P가 상주하고 있다.


회원님! 오늘도 오셨군요 회원님! 근데 표정이 왜 그래요?

항상 웃는 얼굴의 P가 세상 모든 피곤을 다 싣고 온 A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묻는다.

오늘은 정말로 운동하기 싫어요.

아니죠 회원님! 운동은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없는 거죠!

박스 사물함에서 크로스핏 전용 운동화와 각종 장비를 꺼내 착용하면서 A는 P의 목소리를 흘려듣는다. P는 운동이 인간의 몸에 주는 각종 유용한 호르몬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현대인에게 해악을 끼치는 부정적인 생각, 방금 불경하게 A가 입에 담았던 '하기 싫다'는 생각을 즉각 중단하고 긍정적인 습관을 몸에 익혀야 하는 정당성에 대해 설명한다. P의 입은 A를 포함한 몇몇 회원들이 옷을 갈아입고 장비를 착용하고 칠판 앞에 모여 오늘의 와드(운동 종목)를 확인하고 탄식하며 스트레칭을 하는 동안에도 결코 멈추지 않는다.


거짓말, 코치님도 운동하기 싫은 때가 있잖아요!

지난주 새로 온 회원 한 명이 P의 버튼을 눌러버리고 만다.


회원님들.


P는 엄숙한 목소리로 오늘의 와드인 랜디 Randy, 스내치 snatch(역도 인상, 바닥에 있는 바벨을 한 번에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동작)를 75개를 채워야 집에 갈 수 있는 운동 종목을 설명한 뒤 이렇게 말한다.


말이란 게 말입니다, 그게 대수롭지 않아 보여도 엄청나게 보기보다 아주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나는 운동이 싫다고 계속 말하다 보면 속마음은 그렇지 않더라도 정말로 싫어지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정말 슬픈 일입니다. 이 마음이라는 게 말랑말랑해서 말을 따라가요. 운동하기 너무 싫다? 회원님들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소리 내서 말해야 합니다. 운동 너무 하고 싶다! 운동하는 거 너무 좋다! 다들 외칩니다, 운동이 좋다! 스내치가 좋다!


순진한 회원 한 명이 눌러버린 'P코치의 이야기 버튼'은 그의 폐활량만큼이나 성능이 좋아서 하나 둘 와드를 끝마치고 바닥에 전원 드러누워 숨을 고르는 순간까지 꺼지지 않는다. 55파운드의 바벨을 바삐 들어 올리느라 정신없는 A의 귓가에 대고 P는 말을 쏟아낸다.

잡아!

해!

고통만이 나를 키운다!

고통이 너무 좋다!

포기하지 마!

다 왔다!

끝까지!

75개의 스내치를 채워낸 A는 바닥에 점점이 떨어진 물방울이 자신의 땀인지 P의 말들인지 의심스럽다.


P는 A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단순한 사람일 것이다. 긍정적인 의미로, 발화되는 말과 내면의 마음이 일치하는 사람.


나는 단순한 사람인가? 생각할 틈도 없이 격한 운동을 마친 A의 머릿속은 텅 비어 있다.


온몸이 다 젖을 정도로 무섭게 쏟아지던 오늘의 폭우도, 폭우를 뚫고 악착같이 버스에 타기 위해 A를 밀친 새치기범도, A를 화나거나 슬프게 한 모든 인간들도, 분노나 슬픔 같은 감정 자체도, 와드를 끝낸 지금 이 순간엔 A의 머릿속에서 전부 추방된다. 이 세계엔 A라고 하는 인간의 몸 하나만이 유일무이한 존재다. 운동이 주는 명쾌한 단순함만큼은 싫지 않았다.


무려 10년 전…..


*이 글은 창작된 이야기로 등장인물 및 배경과 사건 모두 상상의 산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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