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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Feb 07. 2020

나는 나의 취향을 믿어야 한다

르네 지라르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과 인스타그램

며칠 전 몽블랑 케이크를 먹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습격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입에 대 본 적 없는 케이크, '만년필 이름 아니야...?' 하던 디저트가 나를 설레게 했다. 실제로 프랑스와 알프스 사이에 있는 산 이름을 따 온 몽블랑 케이크는 산의 봉우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따라 검색해 보니 신기한 모양새와 맛을 가졌나 보다.


한참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블로그와 다음 지도 검색으로 '몽블랑 맛집' '케이크 전문점'따위를 검색하다 보니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아무 카페나 들어가서 "거 몽... 몽... 몽당연필? 케이크 하나 주쇼!"하고 외칠 수 없지 않은가. 지금은 4차 산업 시대, 세상 모든 카페들의 별점과 후기를 읽고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으리라 확신할 수 있는 스마트한 세계가 아닌가.   


카페놀이를 즐기긴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그렇게 몽블랑 케이크 관련 글을 훌훌 읽던 중, 밤 퓌레가 들어간다는 설명에 이성이 나의 욕망에 제동을 걸었다.


야, 너 밤 별로 안 좋아하잖아.

아닌데? 나 군밤 완전 좋아하는데?

밤이어서 몽블랑 찾아 이태원까지 가려고 한 거야?

어..... 잠깐만.


나는 왜 몽블랑 케이크에 꽂혔을까?                                                                                                                    


스스로 욕망하지 못하는 사람


속물은 자신의 개인적인 판단을 감히 믿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욕망하는 대상들만 욕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유행의 노예인 것이다.
- 르네 지라르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67쪽


원인은 내가 팔로우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있었다.  그분은 나를 모르고 나는 그분의 인스타를 탐독하는 사이, 수십만의 팔로워를 이끌고 다니시는 분이 '나는 몽블랑 케이크를 좋아한다'는 글을 최근에 업로드했고 나의 욕망은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음식을 한 시간 거리를 감수하고서라도 달려가게 만들 만큼 강력한 욕망의 대상으로 탈바꿈한 ‘그것’은 내 안에 있지 않았다.


욕망은 외부로부터 침입했다.


타인, 오직 타인만이 욕망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험이 타인의 증언과 반대된 경우 타인의 증언이 자신의 경험보다 쉽게 우세해진다. (같은 책, 78쪽)      

    

1961년에 출간된 문학 비평서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을 10년 만에 다시 읽었다. 이십 대 초반 뭣도 모르고 삼각형의 욕망이니, 주체니 중개자니, 낭만적이니 소설적이니 하는 용어를 넙죽 받아먹었다. 처음 읽었던 2009년과 지금 2019년 사이 내겐 스마트폰이 생기고 밖에서 밥을 먹어야 하면 지도 어플 '맛집' 카테고리에서 별점 순으로 정렬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내 직감이나 경험은 선택의 근거로부터 서서히 멀어졌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준 별점, 블로그 후기글, 한줄평이 나의 '신'이 된 것이다.


우아한 제목, 예리한 통찰


이 책은 '욕망의 삼각형 이론'에 근거하여 세르반테스와 스탕달, 플로베르, 프루스트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요 소설 작품을 분석한다. 우리가 보통 무엇인가를 '욕망한다'라고 서술할 때, 욕망의 '주체'인 나와 욕망의 '대상'인 무엇인가의 사이에 일직선 관계가 성립한다. 내가 사랑하는 자두를 예로 들자면 나와 자두 사이에 끼어들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여기서 '중개자'가 끼어든다. 최근 신촌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인스타그램에서 핫하다는 앙버터 마카롱을 하나 샀다. 팥 앙금과 버터가 들어간 마카롱은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인기가 많다는데 내 미각이 이상한 건 아닐까? 의심하며 한 입 더 먹었고 결론은 '이건 아니다'. 애초에 SNS가 아니었다면 이걸 사지 않았을 것이다. 나-SNS-마카롱 사이에 삼각형의 모양이 완성되었다.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물론 태어나면서부터 독창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은 없다. 어려서 부모의 말과 행동을 모방하고, 친구를 따라하고, 좋아하는 연예인을 추종하며 나만의 개성을 구축한다. 소설 창작에 있어서도 시작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필사하며, 나만의 문체를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하지만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가 오랜만에 개봉했는데 별점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관람을 포기하거나, 서점에서 책을 고르다 괜찮은 책을 발견하면 무의식적으로 인터넷에서 그 책의 평점을 검색하는 행위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


내가 나의 취향을 믿지 못하고 타인의 평가에 매달리며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하지 못할 때, 나중에 무엇이 남겠는가? 그곳에 나(주체)는 없고 인플루언서(중개자)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선심 쓰듯 던져 주는 유행의 찌꺼기를 받아먹는 노예만 남겠지.

                                                                                                                      

우리는 지금 프루스트가 옳았음을 알고 있다. 시간을 되찾는다는 것은 타자의 의견 아래 가려져 있던 진짜 인상을 되찾는 것이다. (... 중략...) 시간을 되찾는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실을 피하는 데 삶을 바치고 있다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자신에게와 마찬가지로 남에게도 독창적으로 보이기 위해 언제나 타인들을 모방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시간을 되찾는다는 것은 자신의 자존심을 좀 깎는 일이다. (같은 책, 84쪽)          


우리는 나 자신을 되찾아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나만의 개성, 나 답다고 하는 요소들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나의 취향을 공개하는 데 부끄러워하지 말 것. 물론 사회적인 규칙과 윤리적인 영역을 지키는 선 안에서. 타인의 의견에 귀담아듣되 거기에 얽매여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사랑하는 건 몽블랑이 아닌 에그타르트라구요


그리하여 나는 몽블랑 케이크를 포기하기로 했다. 언젠가 우연히 몽블랑과 만나게 된다면, 수줍게 한 입 먹어보고 결정할 일이다. 그때까지 나는 내가 사랑하는 포르투갈식 에그타르트를 찾아 '에그타르트 로드'를 만들어 봐야지.


ps. 작년에 이 글을 쓴 뒤 아직까지 국내 에그타르트  맛집을 발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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