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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May 13. 2020

내게 맞는 육아서를 찾아서

이연진의 [내향 육아]와 지극히 사적인 육아 원칙

일주일 간 병원에서 아이를 돌보며 딱 한 권의 책만 읽었다. 잠든 아이 옆에서 책을 읽는 내 모습을 보고 수간호사 선생님이 아이가 잘 때 자야 한다고 다독이고 가셨다. 내겐 이 책을 읽는 시간이 휴식시간이었다.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몸과 마음과 원칙을 재정립하는 이완의 시간.


이 책으로 버틴 시간


'내향 육아'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집에서 혼자 책만 읽어도 심심하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 사람과의 대화가 에너지 충전이 아닌 소모로 느끼는 사람, 조용히 글을 쓰며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일에 익숙한 사람, 나는 내향인이다.


그리고 내향인이라는 성향과 육아라는 일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진.


육아서 속 엄마들은 모두 에너지 넘치고 빠릿빠릿해 보였다. 그네들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소문난 육아계 인플루언서들 역시 대개 활동가 타입이라는 것을.
그제야 생각이 났다. 모든 아이가 다르듯 모든 엄마도 다르구나. 모두가 타고난 영역과 살아온 세월, 체력과 환경 등이 다르니 당연한 일이다. 아이의 다름은 인정받지만, 엄마의 다름은 쉽게 간과된다. 아이의 기질은 세심하게 분류되지만, 엄마의 기질은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어느 학자는 내향성과 외향성을 '기질의 남과 북'이라 칭했다. 이 스펙트럼의 어느 지점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성격, 선택과 행동, 삶의 양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하지만 엄마들은 줄곧 '엄마'로만 뭉뚱그려졌다.

(내향 육아, 65쪽)


내향인으로서 엄마가 된 내게 처음으로 닥친 위기가 산후조리원이었다. 내 몸을 회복하며 신생아 돌보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즐거웠지만 딱 하나 식사시간만큼은 압박감이 컸다. 내가 입실한 산후조리원은 5층 식당에서 다른 산모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구조였다. 다른 산모들이 수다를 떨며 조리원 동기를 만드는 동안 나는 혹시라도 누가 말을 걸면 대답할 말을 미리 준비하며 조용히 밥을 먹었다. 아이를 낳은 경험을 공유하고 육아법을 공유하는 대화들은 즐겁긴 했으나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소모시켰다.


내가 이상한가? 식당에서 돌아와 다른 산모들과의 대화에 스트레스를 받는 내 모습에 대해 글을 쓰며 내가 이상한지 곱씹었다. 다른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수다도 떨고 함께 아이를 키우며 스트레스를 푼다는 데 나는 다른 엄마들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스트레스가 오히려 커졌다. 너는 이제 큰일 났다, 아이가 어린이집 가고 유치원과 학교 입학하면 수많은 학부모들과 교류할 일이 산더미인데 그때마다 쭈구리처럼 살래?


이제는 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고, 다양한 아이들만큼이나 다양한 엄마들이 존재하고 그들에게 단일한 잣대로만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을. '엄마니까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말은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폭력이다. 내가 어떤 엄마인지 세심하게 파악하고 아이의 성향을 꼼꼼하게 읽어가며 서로에게 맞는 지점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육아에 절대적인 원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 뒤집기는 못하지만 고개 잘 들고 잘 논다


책을 좋아하지만 육아서를 거의 읽지 않았다. '-해야 한다'는 권위적인 말투에 거부감이 들었고 지금 이걸 하지 않는다면 아이의 미래에 악영향이 갈 수 있다며 불안을 조장하는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책은 '나는 이렇게 했다'라고 자신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려주고 이에 따를 것인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유행 따라 숨 가쁘게 앞으로만 달려가는 육아가 아닌,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장점을 극대화하고 기본을 다지는 육아.


성심껏 육아하되, 희생의 아이콘이 되지는 말자 다짐했다. 나의 육아에는 '내'가 좀 더 필요했다. 아이에 비해 내가 주도성이 약하고 이타성이 강하니, 그래야만 겨우 반반이 되고 타산이 맞았다. 내 개성과 기질을 덮어둔 채 육아에 덤볐다가 고생을 배로 한 느낌이다. 소신껏 나만의 방법을 만들어갈 차례였다.

(내향 육아, 83쪽)


[내향 육아]를 읽으면서 추상적으로 생각만 했던 몇몇 육아 장면들이 구체적인 방법론을 얻어 세밀하게 그릴 수 있었다. 내가 가장 많이 상상했던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 육아, 줄여서 '책육아'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 아무리 바빠도 '책 읽어달라'는 부탁은 거절하지 않기로 했다. "아구, 우리 아기 책 가져왔어? 재미있겠다!" 그렇게 엉덩이 두드려주며 최대한 즐거운 태도로 읽어주었다. 설거지하다가도, 냄비 속을 휘젓다가도 마찬가지였다. 책 읽어주기 가장 좋은 순간은 아이가 원할 때임을 알게 된 후론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랬다.(106쪽)

- 책만 있으면 될 것 같은 독서도, 실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아무리 재미있는 책도 자세나 환경이 편치 않으면 덮게 되지 않던가. 탓해야 할 것은 불편한 환경이지, 의지의 박약함이 아니다.(129쪽)


아이가 원할 때 책 읽어 주기, 강요하지 않기, 책을 읽는 환경을 조성하고 분위기 만들기, 이 밖에도 구체적으로 엄마와 아이가 책을 가지고 어떻게 놀고 읽고 경험했는지 책에 자세히 나와 있다.


아직 앉지도 못하는 4개월 아기를 안아 달래며 책에서 힌트를 얻은 책육아법을 응용하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했다. 내 아이가 책 속 윤하와 같은 외향인이라면 어떻게 접근할까, 나와 같은 내향인이라면 어떤 계획을 짜야할까,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거실을 육아의 중심 공간으로 재구성하고 걷게 된 아이 손을 잡아 매일 산책하며 세상을 관찰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며칠 간의 간병으로 몸은 몹시 지쳤지만 내적으로 생산적인 에너지가 차올랐다.


아직은 인형책만 가지고 노는 4개월 아가


아직은 아이가 너무 어려 책에 나온 육아법을 본격적으로 적용하기까지 한참 멀었다. 지금은 육아를 대하는 기본 원칙부터 다잡는다.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고 아이와 내가 어우러지는 나만의 스타일이 담긴 육아를 찾아서.


행복하게 책을 읽는 아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관심을 갖고 세심하게 관찰할 줄 아는 아이

심심한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아이

자신의 감정을 잘 알고 조절할 수 있는 아이

삶을 사랑하는 아이


내가 생각하는 육아는 '스타일'이다. 육아에는 부모 된 이의 정신이 오롯이 담긴다. 한 사람의 태도와 가치관을 담는 가장 큰 그릇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내향 육아, 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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