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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Apr 08. 2020

우리는 모두 카라마조프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읽기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계속해서 연장되고 집에서 방황할 시기 우리 모두 방탄소년단 RM도 읽는 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는 것은 어떨까?..... 는 최근 이 소설을 막 다시 읽은 차에 인터넷에 뜬 BTS RM 책장 사진에서 보고 반가워서 그만.....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으며 일상 유지하기, 꽤 그럴듯하지 않나.


소장 목록이 꽤 비슷하다


가장 소설다운 소설



그건 바로 우리가 드넓은 본성을, 카라마조프적인 본성을 타고났기 때문으로-바로 이것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인즉-우리의 본성은 온갖 가능한 모순을 함께 품을 수 있고, 두 개의 심연을, 즉 우리 위에 있는 심연, 드높은 이상의 심연과 우리 아래에 있는 심연, 가장 저열하고 악취를 풍기는 타락의 심연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습니다.

-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3권 376쪽


내가 죽을 때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소설을 모두 읽을 순 없을 것이다. 소설 취향은 각자가 다 다르고 소설에 대한 개념 역시 가지각색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새 소설을 읽을 때마다 매번 바뀐다. 가장 소설다운 소설이 무엇인지는 한결같이 이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이라는 개념에 가장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소설, 도스토예프스키의 마지막 작품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다시 읽었다.


장장 세 권의 소설


아이돌 그룹에서 입덕 멤버가 다르듯, 소설을 읽을 때마다 최애 캐릭터가 달라진다. 처음 읽을 땐 순수한 알료샤가 좋았고, 두 번째부터 이반의 이성적인 토론에 휘말렸으며, 지금은 미챠의 정열적인 삶의 찬가가 몹시 끌린다.


작품 속 등장인물 모두 저속함과 고결함을 오가며 입체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죽을 만큼 사랑한다며 외치다가도 한순간에 돌아서서 죽여버리고 싶다는 증오의 외침을 부르짖는 인물들은 '인간'이다. 섣불리 정의할 수 없고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소돔과 마돈나의 심연을 동시에 가진 인간.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가 이 지상에서 인간을 짓누르고 있어. 네가 알아서 풀어보라니, 몸에 물 한 방울 적시지 말고 물에서 나오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야. 아, 아름다움이란! 게다가 내가 참을 수 없는 건, 어떤 사람이, 그것도 더없이 고상한 마음과 높은 이성을 지닌 사람이 마돈나의 이상에서 시작해 소돔의 이상으로 끝나고 만다는 거야. 더욱 무서운 건 이미 영혼 속에 소돔의 이상을 품고 있는 인간이 마돈나의 이상을 부정하지 않고, 그 이상 때문에 가슴을 불태운다는 거지. 티 없이 순결했던 청년 시절처럼 진실로, 진실로 불태운다는 거지. 아니야, 인간은 넓어, 너무 넓어서 난 좀 좁히고 싶을 지경이야. 젠장, 뭐가 뭔지 도대체 알 수가 있어야지, 정말! 이성엔 오욕으로 여겨지는 것이 가슴엔 오로지 아름다움이니 말이다. - 같은 책 1권 221쪽


인간이 너무 넓어 고통스러워하는 첫째 드미트리 카라마조프는 온몸으로 삶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작품 내내 진정한 삶을 갈구하며 각종 사고를 일으키고 온갖 스캔들에 휘말린다. 가장 큰 사건이 친부 살해, 아비이자 연적인 표도르 카라마조프 살해 사건이다. 미챠, 이반, 알료샤 삼 형제의 아버지인 그는 생명을 주었으나 아버지로서의 역할과 의무는 전혀 수행하지 않은 무책임하고 비열한 인간이다. 그는 첫째 미챠를 질투하고, 둘째 이반에게 순종적이며, 셋째 알료샤를 사랑한다.

아버지(신)로부터 비롯된 셋은 각각 인간 그 자체, 이성, 사랑을 상징한다. 알료샤는 책 속 등장인물 모두로부터 사랑받는다. 모두 알료샤의 의견을 가장 듣고 싶어 하며 그의 사랑을 갈구한다. 무정한 아버지조차 알료샤에 의해 '자기가 지금껏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이해하게 되었음을'(1권 192쪽) 스스로 인정한다. 알료샤 역시 모든 이를 차별 없이 사랑하고 자신을 증오하는 자도 사랑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삶을 사랑하는 이상적인 인물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삶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삶의 의미보다 삶 자체를 더 사랑해야 한다고?"
"반드시 그래야죠, 형이 말한 대로, 논리보다 앞서, 반드시 논리보다 앞서 사랑해야 하고, 그래야 비로소 의미도 깨달을 수 있어요."
- 같은 책 1권 465쪽


삶 그 자체를 사랑해야 한다는 알료샤의 말에 논리를 들어 반박하려는 둘째 형 이반은 이성적인 인물이다. 그는 신의 존재에 대해,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고뇌하다 의식 불명의 상태로 빠진다. 작품에서 가장 강렬한 챕터인 <대심문관>과 악마와의 대화 장면은 이반의 고뇌와 분열을 잘 보여 준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알료샤(이상)에 대립해 이반(이성)은 대심문관의 입을 빌려 삶의 의미가 있어야 한다 주장한다.


인간 존재의 비밀은 그저 사는 데 있지 않고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있으니까.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는 확고한 관념이 없다면, 설령 주위가 온통 빵으로 넘친다 해도 인간은 사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며, 지상에 머무르느니 서둘러 자신을 없애버릴 것이다. - 같은 책 1권 515쪽


나는 알료샤와 이반 모두에게 동의한다. 삶 그 자체를 사랑하되,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고뇌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첫째 미챠의 삶과 선택이 부상한다.


중의적인 인간


소설의 주요 스토리는 ‘친부 살해’와 범인 찾기로 '미챠는 정말로 아버지를 죽였는가?'를 추리하는 내용이다. 그루셴카를 사이에 두고 연적이 된 아버지를 죽여 버리겠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던 미챠에게 모든 혐의와 증거가 집중되고 소설 후반부 재판에서 검사와 변호사의 논고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이번에 다시 읽으며 흥미로웠던 부분은 미챠가 실제 로 범행을 저질렀는지 아닌지가, 양쪽 동일하게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스메르쟈코프가 진짜 범인이고 미챠는 죄를 뒤집어쓴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의 화자(작가)는 미챠가 아버지와 대면한 결정적인 순간을 은근슬쩍 숨겨 버리고 미챠와 스메르쟈코프, 기타 사건에 엮인 인물의 증언과 추리를 통해 재구성하게 만든다.


소설 후반부 재판 과정에서 미챠의 유죄를 주장하는 검사 논고와 무죄를 말하는 변호사의 논고가 동등하게 대립되어 제시된다. 검사의 논고를 따라가면 미챠의 유죄를 인정하게 되고 변호사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면 미챠의 무죄를 확신하게 된다.

나는 이 부분이 작가의 의도적인 전략이라고 본다. 중요한 건 미챠의 죄, 그가 짊어지게 된 십자가에 있으니까. 소돔과 마돈나의 이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삶을 어떻게 써야 할지 어쩔 줄을 몰라 술을 마시고 싸움을 걸며 막 살아온 그는 아버지가 살해당한 그날 밤 피투성이가 되어 거액의 돈다발을 들고 그루셴카를 찾아 나선다. 그녀가 있는 교외의 마을 여관에서 그는 디오니소스의 주연을 방불케 하는 파티를 연다. 소돔이 된 여관에서 친부 살해죄로 체포되고 심문 중에 깜박 졸며 '시커멓게 말라버린 애기 꿈'(455쪽)을 꾼다. 죄 없이 고통받는 애기들을 위해 지금 당장 무엇이든 하고 싶다고 결심하는 그는 소돔에서 천국으로 단숨에 상승한다.


그의 가슴이 온통 불타오르기 시작하며 어떤 빛을 향해 내달았다. 살고 싶다, 그 어떤 길을 향해 가고 싶다, 가고 싶다, 그를 부르고 있는 새로운 빛을 향해, 어서, 어서, 지금 바로, 지금!
- 2권 456쪽


인간은 중의적이다. 이중적이라는 표현보다 중의적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다. 가장 타락하면서 동시에 고귀할 수 있는, 열렬히 인류애로 끓어 올라 무엇이든 하겠다 외치던 이가 다음 날 집을 불 지르고 악한 짓을 하고 싶다 고백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한없이 약하고 비열하지만 한편으로 신(이상)을 발명하고 '하늘의 저 궁륭처럼 확고부동한 그 무엇'(3권 170쪽)을 꿈꾸는 존재가 인간이다. 빛을 향해, 단 2초 간의 진리를 체험하기 위해 천조 킬로미터의 형벌을 기꺼이 감수할 존재가 인간이다.


그리하여 오로지 '나는 존재한다!'라고 매 순간 나 자신에게 말하고 외칠 수 있으면 되는 거야. 수천 가지의 고통 속에서도-나는 존재한다, 고문을 당해 몸이 오그라질지라도-나는 존재한다! 요새 감옥에 앉아 있을지라도 나는 존재하고 태양을 보는 거야, 태양을 보지 못할지라도 태양이 있다는 걸 나는 알아. 태양이 있다는 걸 안다면-그것만으로도 이미 완전한 삶이야.
- 같은 책 3권 164쪽


문학동네판 번역 가독성이 좋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처음 읽는 독자라면 혼란 그 자체인 인물 묘사와 산만한 서술에 현기증을 느낄 것이다. 그 현기증은 인간의 심연을 응시하며 느끼는 멀미다. 이 소설은 인간 그 자체다. 카라마조프, 중의적인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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