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집콕 육아
이러다 지구 전체가 떠내려가는 게 아닐까 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폭우가 끝나자마자 코로나가 다시 몸을 키워 기습했다. 우리는 다시 집 안에 갇혔다. 오전에 잠깐 유모차를 끌고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는 순간도, 오후 한나절 아이를 맡기고 카페에서 글을 쓰는 시간도 박탈당했다.
스스로를 집순이라 칭할 만큼 집에 머무는 일은 자신 있었지만, 그것도 자발적이어야 긍정적인 성격이 되지 수동적으로 집에 갇히게 되면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을 코로나가 깨닫게 해 주었다. 사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아이 돌 전까지는 외출이 쉽지 않겠다는 건 알고 있었다. 사람이라기보단 아직 아메바에 가까운 신생아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이젠 스스로 앉기까지 가능한 8개월 아기와 하루 종일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오전 7시 반 분유수유, 트림을 시키고 아기의자에 앉혀 치발기 쥐어주고 내 아침식사, 점퍼루를 타거나 에듀테이블을 두드리거나 놀이매트 위에서 기어 다니며 놀기, 놀다가 매트 밖으로 나와 내 발 만지작대기, 아침 응가(아기), 1차 낮잠, 12시쯤 이유식 및 분유 보충, 쌀떡뻥 하나 쥐어주고 내 점심식사, 점퍼루를 타거나...(반복)... 2차 낮잠 후 4시쯤 2차 이유식을 먹고 분유보충하고 과일 갈아서 먹이거나 과일퓨레를 주거나 해서 먹고 놀고 싸고 자고 목욕하고 자고...
..... 시간이 안 간다.
쉴 틈 없이 젖병 닦고 기저귀 갈고 턱 밑으로 질질 흐르는 침 닦아주고 웃으며 낚아채는 내 안경을 구출하고 이렇게 많은 일을 했으니 점심때가 되었나? 싶어 시계를 보면 이제 아침 10시다. 오늘 내가 일을 안 해서 그렇구나, 하여 아이가 낮잠에 든 사이 하루 작업량으로 정해둔 A4 한 장을 꾸역꾸역 채운다. 정오까지 5분 전이고 나는 시계를 믿을 수가 없어 창 밖을 바라본다. 빛이 환하다. 아직도 하루가 절반 넘게 남았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여유롭거나 게으르게 보내는 건 아니다. 정신없이 바쁘다. 이유식 재고를 확인하고 소리 없이 싼 아이의 응가를 냄새로 추리해 처리하고 인형 가지고 잘 놀다가도 잠깐 사이에 점퍼루 받침대로 돌진해 머리 박고 우는 아이를 달래고 내 머리채를 잡는 아이의 손가락 사이에 낀 머리카락을 제거하고 기어 다니는 아이를 위해 수시로 거실 바닥을 닦는다. 빨래와 청소와 설거지 같은 보통의 집안일도 코러스처럼 육아의 노래 사이로 끼어든다.
육아를 하고 집을 관리하고 글도 쓰는데 왜 시간은 아직 아침이죠?
나만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평행우주에 갇힌 건가요?
다들 빛의 속도로 나아가는 우주선을 타고 저 먼 우주로 나간 사이 나만 지구에 남아 느릿하게 흐르는 시간에 묶인 느낌이다. 우주선 창문으로 바라본 나는 거의 멈춘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사실 이 비유가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시간은 상대적이고 나의 시간은 숨 막힐 정도로 느리다는 사실만 감각할 뿐.
무슨 짓을 해도 시간이 안 가는 것을 본 나는 두 가지 취미활동에 몰입했다.
낮에 책을 읽고, 밤에 술을 마셨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도 꾸준했던 취미지만, 즐기며 했던 과거와 달리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를 써서 하는 활동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아이가 점퍼루에서 신나게 점프하는 옆에서 책을 읽고 아이가 잠이 들면 서둘러 맥주나 위스키를 들이붓는 일은 취미라기보다 안간힘에 가깝다. 시간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 보려 애쓰는 일.
그렇게 매일 술을 마신 결과 내 몸무게는 만삭 때의 최고치를 넘겨버렸다.
그렇게 매일 책을 읽은 결과 조금 더 지혜로워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상대성 이론도 잘 모르는 것을 보니 읽기만 한 것 같지만.
자아를 잃고 불행하거나, 비참하거나, 고통스러운 감정은 아니다. 조금 지루할 뿐이다. 잠깐의 외출도 허용되지 않는 세계, 집 안에서 아이와 한정된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힘겨운 것이다. 아이가 자라 말을 하고 글을 읽고 책을 보며 나와 대화를 나눌 수 있기까지 기다린다. 한 명의 완전한 성인이 되어 함께 술을 마시는 날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건 결국 시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