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새해 일기
1초의 시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시작, 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딱 1초가 걸린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일에 1초면 충분하다.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는 데 1초,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기 위해 고무장갑을 끼는 데 1초, 책을 읽기 위해 표지를 펼치는 데 1초, 1초는 모든 일의 시작이다.
봄을 기다리는 씨앗처럼 1초는 시작을 품고 있다.
1시간은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 아이가 낮잠에 들면 한 시간 정도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이제 아이는 깨어 있을 때 내가 책상에 앉으면 절대 가만두지 않는다. 혼자 그림책 가지고 잘 놀다가도 내가 의자에 앉는 1초를 놓치지 않고 다다다 기어와 내 옷을 잡아당긴다. 어서 나를 안아달라는 신호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아이는 걷기 연습에 매혹되어 수십 번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걷는다. 걸음에 서툰 아이가 넘어져 선반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힐까 두려운 나의 의식은 온통 아이에게 묶인다. 내가 온전히 쓸 수 있는 시간은 아이가 잘 때뿐이다.
이 귀한 한 시간에 A4 한 장 분량의 글을 쓴다. 200자 원고지 10장을 무사히 채우면 하루의 작업 끝. 작년에 절반 정도 쓰다 멈춰 둔 두 번째 장편소설 초고를 처음부터 다시 쓰기 시작했다. 사실관계 확인이나 자료조사 같은 세부적인 수정 사항은 미래의 한 시간들에게 미뤄 두고 일단 완성에 집중한다.
아이가 깨면 한 시간 단위로 움직인다. 세 시간 텀의 이유식 먹이기, 그 사이 간식 시간, 지난주부터 직접 만들기 시작한 유아식 제조, 방학에 들어간 남편과 나의 세 끼 식사, 청소, 기저귀 체크, 놀이 시간이 보이지 않는 시간표에 맞추어 돌아간다. 오후 세 시 커피 타임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에게 멸균우유가 든 병을 쥐어 주고 우리가 마실 커피콩을 갈아 정성껏 커피를 내린다. 조용히 우유와 커피를 마시며 보내는 한 시간을 중심으로 하루의 시간이 평가되고 재배치된다. 오늘은 잘 보냈군, 혹은 오늘은 유독 힘든 하루였어. 힘든 하루였으면 나머지 시간은 괜찮으리라 위로하고, 나쁘지 않은 오전이었다면 이어질 시간도 이 기세를 이어가자며 힘을 낸다.
이렇게 한 시간은 2000자의 글을 만들고, 하루를 형성하고, 의지를 생산한다.
1년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가. 눈도 제대로 못 뜨던 신생아가 1초 만에 나를 찾아낼 줄 알고, 제 팔다리가 자기 것인 줄도 몰라 깜짝 놀라던 존재가 제 다리로 걷고 손을 뻗어 내 손을 잡는다. 숨만 쉬던 몸뚱이가 분명한 목적과 감정을 가지고 표현하며 자아를 드러낸다.
시간이 성장을 가지고 온다는 당연한 진리를 잠시 잊고 있었다. 유독 힘겨웠던 한 해를 떠나보내며,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고 한탄하고 있었다. 우울에 한 발을 담근 채 괴로워하던 나를 발견한 아이가 웃으며 두 발로 자박자박 걸어왔다. 꽉 채운 일 년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1초가 1분이 되고 1분이 한 시간을 응집해 일 년을 만든다. 30년 넘게 살아가며 둔화된 성장과 생산의 감각을 아이가 일깨운다. 2020년의 1월 1일과 2021년의 1월 1일을 붙여놓고 보니, 거기에 성장이 있었다.
첫 돌을 넘긴 아이 옆에 작년에 탈고한 첫 장편소설 원고를 나란히 두고 나를 격려한다. 아직 성장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억울하고 우울할 것 없다고, 올해도 만들 것들이 잔뜩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