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적 육아의 순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육아의 연결점

by JiwooRan

거실에서 나는 책을 읽고 있었다. 아이는 놀이매트 위를 뒹굴며 놀고 있었다. 소파에 등을 기댄 자세로 책을 넘기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 태양이 가장 길게 들어오는 오후 시간이었다. 매트 위에 엎드린 아이가 가장 아끼는 토끼 인형에 몸을 기대어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이상하다. 작년 이맘때 같은 거실에 같은 햇빛이 드리워지던 같은 시간 저 아이는 생후 100일이 채 안 되어 역류방지쿠션 위에 누워 제 팔다리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재작년 이때는 올해 임신을 할 수 있을지 불안해하며 혼자서 책을 읽고 있었다. 한결같은 햇빛 아래서.


어디서 뿅하고 튀어나왔니


없었는데요, 있습니다!


웹툰 <어쿠스틱 라이프>에서 난다 작가가 쌀이를 낳았을 때 남편이 말했다는 '모자 속에서 토끼가 튀어나온 것 같은 기분'이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에 가장 가깝다. 마법과 같은, 생명의 경이로움이나 출산의 신비 같이 출산교실 팸플릿에 쓰일 법한 빤한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 '느낌'. 그건 무에서 유로 넘어간 세계의 경이로움이다. 어제는 없던 존재가 오늘 생긴다는 당연하지 않게 당연한 진리다.


세포에서 시작해 제 몸도 가누지 못하던 생명이 1년도 안 되어 두 발로 뛰어다니는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노라면 절로 우주가 빅뱅에서 태어났다는 이론을 믿게 된다. 완전한 '없음'에서 순간의 폭발이 일어나고, 없음의 고요는 있음의 소란으로 대체되고, 하나 둘 별들이 태어나고, 별들이 거느린 행성에게 빛을 비추고, 빛 속에서 생명이 태어난다. 폭발처럼 태어난 새 생명을 향해 태양은 변함없이 빛을 건넨다.


사실 원자적 수준에서 본다면 우리도 그런 경로를 거쳐서 여기에 와 있는 것이다. 수소와 일부 헬륨만 제외하면 지구의 모든 원소들이 수십억 년 전에 있었던 별들이 부린 연금술의 조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지구에 무거운 원소를 공급한 별들 중의 일부는 아직 은하수 은하 저편에 백색 왜성으로 남아 우리 모르게 조용히 숨어 있을 것이다. 우리의 DNA를 이루는 질소, 치아를 구성하는 칼슘, 혈액의 주요 성분인 철, 애플파이에 들어 있는 탄소 등의 원자 알갱이 하나하나가 모조리 별의 내부에서 합성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별의 자녀들이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 458쪽


본격 눕방육아 ㅋㅋ


지금 내 책의 페이지를 비추는 햇빛에서 내가 태어났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의 손을 데우는 햇빛에서 네가 태어났다. 멈추지 않고 타오르는 우리의 거대한 부모가 제 아이들의 손을 잡는다. 그는 한시도 자식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그가 낳고 키운 자녀들 중 가장 진화한 우리가 고개를 들어 하늘 위로 시선을 던진다. '대폭발에서 은하단, 은하, 항성, 행성으로 이어지고, 결국 행성에서 생명이 출현하게 되고 생명은 곧 지능을 가진 생물로 진화하게 된다. 물질에서 출현한 생물이 의식을 지니게 되면서 자신의 기원을 대폭발의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 인식할 수 있다니, 이것이 우주의 대서사시가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같은 책, 487쪽) 아이는 자신을 낳은 나를 응시하고 나는 나를 존재하게 한 별을 보고 별은 그런 우리를 살핀다. 뜨겁고 조용하게.


우주와 연결되는 순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쉴 때가 있다.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 주고 그림책을 읽으며 놀다 문득 이 모든 일이 다 무슨 의미가 있지,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열심히 돌을 굴려 봐야 내가 얻는 게 뭐가 있나, 무의미의 공허가 나를 납작하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그때 거실 바닥에 드리워진 햇빛이 땅에 떨어진 내 한숨을 살며시 들어 올린다. 너는 지금 우주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수소가 별을 만들고 별이 인간을 만들고 인간은 인간을 만든다. 그 누구도 함부로 인간을 창조할 수 없다. 그건 오직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밥 한 숟갈 더 먹이려는 나와 그 숟가락을 탁 쳐내는 아이와의 전쟁이 끝나고 다시 찾아온 평화의 시간, [코스모스]를 읽는 내 옆에 누워 해바라기 하는 아이는 별을 바라본다. 우주를 본다. 거실 안이 의미로 가득 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