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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Feb 15. 2021

올해의 책을 미리 소개합니다

마리아 포포바 [진리의 발견]과 '나'의 존재론

이 책을 열 때와 닫을 때 나는 울고 있었다. 한 달 전 버스 정류장에서 울었고, 일주일 전 그림책을 보는 아이 옆에서 울었다. 두 울음 모두 소리가 없었다. 마스크를 적신 눈물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세상에게 버려진 고아, 아니 폐기물 쓰레기처럼 느끼고 있었다.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고 내 존재를 알지 못하는데, 이 모든 일이 다 무슨 의미가 있지? 출판 거절 메일을 다섯 개쯤 받은 날 가방 안에 이 책이 들어 있었다. 800페이지가 넘는 책이 내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울고 있을 때 조용히 뒤에서 토닥이는 위로의 손길과 같은.


버스에서 첫 페이지를 읽으며 나는 울음을 까먹었다.


이 모든 것, 그러니까 토성의 고리와 아버지의 결혼반지, 해 뜰 무렵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구름, 포름알데히드 병에 담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뇌, 그 유리병의 유리를 구성하는 모든 모래알과 아인슈타인이 그 뇌에서 떠올린 모든 생각, 내 고향 불가리아의 릴라 산맥에서 들리는 양치기 처녀들의 노랫소리와 그네들이 모는 양 떼의 모든 양, 챈스의 복슬복슬한 귀에 난 모든 털과 메리앤 무어의 땋아 내린 붉은 머리칼과 몽테뉴가 키운 고양이의 수염, 내 친구 어맨다의 갓난쟁이 아들의 투명한 손톱, 버지니아 울프가 우즈 강에 투신하기 전 외투 주머니에 채워 넣은 모든 돌, 인간이 만든 것 중 처음으로 성간우주에 진입한 물체에 실린 디스크를 구성하는 모든 구리 원자,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분노의 발작을 일으키다 쓰러져 청력을 잃고 만 그 마룻바닥에 깔린 떡갈나무 지저깨비, 무덤가에서 흐른 모든 눈물과 그 무덤을 찾아와 슬퍼하는 이들을 지켜본 모든 까마귀의 노란 부리,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퉁퉁한 손가락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와 그 손가락이 가리킨 목성의 위성을 이루고 있는 모든 기체와 티끌 분자, 내가 사랑하는 이의 북두칠성 모양 주근깨와 내가 그녀를 사랑할 때 부드럽게 진동하는 축삭돌기의 모든 떨림, 우리가 끊임없이 현실을 파악하고 바꾸는 도구로 사용하는 모든 사실과 환상. 이 모든 것은 138억 년 전 한 점에서 폭발하여 존재하게 되었다. 우주의 시작은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을 여는 음표보다 조용했고, 자아I의 대좌에서 내려와 작아진 나i위에 떠 있는 점보다 작았다.


꽉 찬 한 달 간의 독서


이 두껍고 독특한 책의 정체는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여러 인물이 나오고, 그 인물들은 수백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쉼 없이 얽힌다. 우리가 보통 전기 biography라 부르는 직선으로 재배열된 것이 아닌 '여러 측면과 여러 빛을 지닌 그림'으로 형상화된 삶이다. 요하네스 케플러에서 시작된 '삶'은 마리아 미첼, 허먼 멜빌,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마거릿 풀러, 찰스 다윈, 윌리어미나 플레밍, 해리엇 호스머, 에밀리 디킨슨, 레이철 카슨으로 얽힌다.


왜 우리가 이들의 삶을 알아야 하는가? 저자는 수백억의 우리 중 왜 이들을 골라 호명했는가? 시대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삶을 개척한 여성들, 종교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과학적 신념을 지킨 사람들, 죽음을 두려워하며 불멸의 무엇인가를 남기기 위해 애쓴 노력들, 저자가 주선한 이들과 한 명씩 만나며 내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이 바뀌었다. '왜 사는가?'에서 '어떻게 사는가?'로 바뀌었다.


한 달 동안 이 책을 읽으며 도중에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 Soul>을 보게 되었다. 재즈가 자신이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이자 삶의 불꽃이라 생각하며 살아온 주인공 존 가드너는 꿈에 그리던 무대에서 공연을 하기로 결정된 당일 사고를 당해 태어나기 이전의 세계로 떨어진다. 혼수상태인 자신의 몸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태어나기를 거부하는 영혼 22호를 설득하는 멘토 역할을 하면서 존은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22호의 삶의 불꽃을 찾아가는 이야기겠구나 하는 중반 이후부터 영화는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다. 그토록 꿈꿨던 무대에서 공연이 끝난 뒤 존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응시한다. 이게 다야? 그 옆에서 존이 동경하던 유명 뮤지션이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존에게 말한다. '이렇게 매일 공연하는 거야.'


왜 태어나야 하나? 가 아닌..


왜 살아야 하는가? 에서 '왜'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존 가드너와 같이 허무함에 빠지기 쉽다. 나는 재즈를 위해 살아! 하지만 재즈 공연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고 무대 조명이 꺼지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삶의 이유를 찾아가는 길의 극단은 자살이다. 애초에 운명처럼 정해진 불꽃같은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꿈과 같은 불꽃은 삶을 움직이게 하나 잘못하면 존재 자체를 태워버릴 수도 있다. 내 운명의 '유일한' 불꽃같은 건 불가능하다. 나의 자아조차 고정돼 있지 않다.


322쪽, 삶에서 본질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과 성격의 격변 속에서 어떤 사람을 "같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혼란과 노화를 향해 착실하게 나아가고 있는 우주 안에서 우리는 무언가 고정되고 영속된 것에 힘껏 매달려, 한순간에 사라져 버릴 존재 안에 견고한 자아를 새겨 넣으려 애를 쓴다. 하지만 견고 함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에 있는 모든 원자의 쿼크는 우리의 의식에 남아 있는 첫 기억, 첫 단어, 첫 키스 이후로 계속해서 대체되고 있다. 살아간다는 행위 안에서 우리는 다른 꿈을 꾸고 다른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며 다른 사랑을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경험을 할 때마다 다시 태어난다고 할 수 있다.


여자가 대학에 간다는 사실조차 생경하던 19세기에 의대를 졸업하고 당대 최고의 성공적인 조각가로 이름을 날린 해리엇 호스머는 말년을 영구 운동기관 발명에 소진한 뒤 파산하여 숨을 거둔다. 미국 여성주의 운동의 시작점을 힘 있게 찍은 마거릿 풀러는 이탈리아에서 자신의 이상형과 전혀 다른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게 된다. 자신의 오빠와 같은 여자를 사랑한 에밀리 디킨슨은 이후 14년 간 자신의 집에 스스로를 가둔 채 생전에 결코 발표되지 않았던 1700여 편의 시를 쓴다. 내가 이렇게 요약하는 것만으로는 이 인물의 삶을 정확히 알 수 없다. 과학자이자 작가, 예술가, 시인, 사회운동가, 불가능한 사랑을 욕망한 연인으로 살아온 이들의 삶은 여러 조각이 모여 완성되는 모자이크와 같다.


영화를 본 뒤 책을 읽으며 나는 질문을 바꾸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소멸할 수밖에 없는 이 영혼을 데리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케플러의 경우 최초의 SF소설이라 할 수 있는 <꿈>이라는 책을 쓰면서, 상상력으로 우리가 가진 한계를 돌파하려고 시도했다.

마거릿 풀러는 여자를 위한 대화 모임을 만들고 <19세기 여성>이라는 책을 통해 여성해방운동의 힘을 충전시켰다.

에밀리 디킨슨은 자신의 방 안에서 자신의 재능과 사랑에 대한 확신 속에서 숨을 쉬듯 시를 썼다.

레이철 카슨은 자연을 향한 사랑에 충실하며 과학의 오용에 맞서 생태운동을 탄생시킨 <침묵의 봄>을 완성했다.  


그들은 썼고, 그들을 거부하는 대학에서 강의를 들었고, 강의를 했고, 잡지와 신문에 글을 발표했고, 책을 출간했고, 혜성을 발견하고, 대리석으로 조각을 만들고, 시를 썼다. 레즈비언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던 시대에 허용되지 않는 사랑을 향해 돌진했다. 내가 죽은 뒤 세상에서 소멸될지도 모를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모든 걸 바쳤다. 사랑도, 책도, 지구조차 유한한 세계 속에서 그 유한함에 슬퍼하면서도 손을 움직였다. 앞으로 나아갔다.


312, 아무리 위대한 사랑이라도 오직 "일시적"으로만 존재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절망해야 하는가, 기뻐해야 하는가? 시간에는 탄성이 있어서 사랑의 깊이와 정도에 따라 수축하고 확장하지만 결국  양은 한정되어 있다. 책처럼, 삶처럼, 우주  자체처럼 유한하다. 그러므로 사랑의 승리는 용기와 성실함에 있다.  용기와 성실함으로 우리는 초월적인 일시성이 우리를 결합시켜주는 사랑의 순간을 살아가며, 똑같은 용기와 성실함으로  사랑을 떠나보낸다. 풀러가 코레지오의 그림을 보고 외친 , 전에는 알지 못한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내뱉은 감탄에는 사람의 마음에 대한   진실이 담겨 있다. "사랑의 달콤한 영혼이여! 하지만 나는 너에게도  싫증이 나겠지. 하지만 그날 사랑은 눈부시게 빛났네." 한때  사람을 끌어당긴 자력의 일부는 서로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게 된다.


용기와 성실함으로 순간을 살아가라,  순간이 지나가리란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우주는 인간에게 당연히 무심하고,  무심함 속에서 우리는 용기를 내고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채워야 한다. 우주조차도 변한다는 진리를 기억하라.


진부하지만 진리는 보통 진부하다.


소설이 내 운명이라는 진부한 말로 거의 십 년을 버텼다. 작가가 나의 운명이라면 왜 나의 책은 초판도 다 소진되지 못하고 내 원고는 거절만 당하는가. 대부분의 작가들이 거절당하고 거절당하며 그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쓰고 투고하고 또 쓴 작가들만이 작가로 남아 작품을 남겼다고 했다. 매일 한 장씩 꾸준히 백지를 문장으로 채운 원고들이 쌓여 한 편의 단편이 되고 한 권의 소설이 되고 그렇게 남은 책들은 나보다 오래 이 세계에 남아 있으리란 믿음. 우주에 찍힌 창백한 푸른 한 점처럼 나를 모르는 이 세계에 작디작은 점 하나만 남길 수 있다면, 내가 존재했다는 아주 작은 증거를.


삶 그 자체가 의미가 되는 삶.


책의 마지막 문장을 옮겨적으며 나는 나의 눈물을 접었다.


그동안에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누군가 사랑을 나누고 있으며 누군가는 시를 쓰고 있다. 우주 어딘가에서는 3등 성인 우리 태양보다 몇 곱절이나 큰 별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블랙홀로 붕괴되기 전의 마지막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블랙홀은 시공간을 왜곡하면서 우리를 스쳐 지나간 모든 원자, 우리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모든 정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시와 조각상과 교향곡을 삼켜버릴 수 있는 무의 우물을 만들어낸다. 비난과 자비의 질문에 무감각한, "왜"라는 질문이 결여된 엔트로피적 장관이다.
40억 년이 지나면 우리의 별 또한 그 같은 운명을 따라 백색왜성이 되어버릴 것이다. 우리는 결국 우연히 나타난 존재이다. 보이저호는 한때 케플러가 "천공의 산들바람"이라고 상상한 날개에 실려 여전히 경계 없는 성간 공간을 항해하고 있으리라. 보이저호에 실린, 아득히 먼 곳의 푸른 점에서 아득히 오랜 옛날 사랑과 전쟁과 수학을 만들었던 교향악적 문명이 제작한 금빛 디스크 안에는 베토벤의 음악이 수록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 한번 창조된 것은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완전히 떠나지 않는다. 한번 심어진 씨앗은 몇 세대, 몇 세기, 몇 문명의 시간이 지난 후, 집단과 나라와 대륙을 가로지르고 이주하여 꽃을 피울 것이다. 그동안 사람들은 날뛰는 전쟁 중의 평화 속에서, 잠재적 재능이 숨어 있는 빈곤과 무명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얻지 못한 많은 것을 가지고, 난파된 사랑의 잔해 속에서 살아가고 죽는다.
나도 죽으리라.
당신도 죽으리라.
우주적 관점에서 아주 잠깐 자아의 그림자 주위로 뭉쳤던 원자들은 우리를 만들어낸 바다로 돌아가게 되리라.
우리 중에 살아남게 될 것은 기슭 없는 씨앗과 우주먼지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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