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1월 22일 박완서 선생님 10주기를 맞아 여러 책이 다시 나왔다. 표지를 단장하고 새롭게 출간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후속 소설을 구입했다. 2002년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서 이 책을 소개할 때, 나는 이미 책을 읽었노라 자랑스러워하며 혹 유재석과 김용만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 대답할지를 고민하던 중학생이었다. 아빠의 서재에서 우연히 읽은 이 책은 어린 내 눈에도 너무나 재미있었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개성의 박적골의 풍경이 생생했고 제목에서 언급되는 싱아라는 풀을 맛보고 싶었다. 책을 다 읽고 학교 도서관에서 박완서 선생님의 책을 찾아 읽었다. 동네 도서관에서 학교에 없는 나머지 책들을 빌렸다. 그렇게 데뷔작인 [나목]부터 거의 모든 소설과 에세이를 읽으며 고등학생이 되었다.
내 꿈의 세계 창밖엔 미루나무들이 어린이 열람실의 단층 건물보다 훨씬 크게 자라 여름이면 그 잎이 무수한 은화가 매달린 것처럼 강렬하게 빛났고, 겨울이면 차가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힘찬 가지가 감화력을 지닌 위대한 의지처럼 보였다. 책을 읽는 재미는 어쩌면 책 속에 있지 않고 책 밖에 있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창밖의 하늘이나 녹음을 보면 줄곧 봐 온 범상한 그것들하곤 전혀 다르게 보였다. 나는 사물의 그러한 낯섦에 황홀한 희열을 느꼈다.
-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158쪽
그때 읽은 책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으로 은희경 작가님의 [새의 선물]을 꼽아 왔다. 지금 다시 [싱아]를 읽으며 이 책이 내게 끼친 영향력에 대해 새롭게 되새길 수 있었다. 싱아가 지천인 개성의 박적골을 떠나 서울 현저동으로 이주해 성장한 ‘나’의 상실감과 그리움에 공감하며, 그즈음 학교 대표로 나간 백일장에서 고향을 주제로 쓴 글이 우수상을 받았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시나 소설에서 향수에 대한 감정을 배우는데 도시에서 나고 자란 요즘 아이들은 잘 모르는 것이다, 나 역시 세 살 때 경기도로 이사를 온 뒤 방학 때 시골에 가긴 하지만 내 그리움은 진짜 고향을 가진 부모님과 비교했을 때 거짓된 것처럼 느껴진다, 식의 글이었다. 그건 나를 둘러싼 세계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다 나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최초의 시도였다. 잃어버린 유년기를 향한 그리움을 '싱아'로 구체화한 글의 힘을 배웠다.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 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꺾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 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았다.
나는 마치 상처 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나는 하늘이 노래질 때까지 헛구역질을 하느라 그곳과 우리 고향 뒷동산을 헷갈리고 있었다.
-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89쪽
십여 년 만에 다시 읽으면서 생생하게 떠오르는 책의 장면들, 뒷간에 엉덩이 깐 자세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골 아이들, 처음으로 송도를 바라보며 은빛으로 빛나는 도시에 넋 놓은 묘사, 서대문형무소 근처 현저동의 생생한 모습, 해방 직전 박적골에서 어머니와 숙모들이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서책으로 그릇을 만들며 이야기를 나누던 날의 평화, 역사가 아닌 생생한 삶으로 통과한 전쟁의 기억들. 이렇게 많은 장면을 통과하면서 '나'는 살아남았다. 살아남아서 그 모든 기억을 기록하기로 결심한다. 내 인생을 소설로 쓰면 수십 권이다 넋두리하는 사람은 많다. 실제로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작품들이 지금까지 생생하게 읽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20여 년 전의 십 대 소녀를 매혹했던 선생님의 글은 지금도 강렬하다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획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라.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마지막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