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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Jul 12. 2021

낮이 가장 긴 하루의 육아일기

인생은 흘러간다. 우리들 집의 상공에서 구름은 끊임없이 변화하지. 나는 이런저런 일을 하고, 또 이런 일을 하고, 또 저런 일을 하지. 만나고 헤어지고, 우리는 다른 형태로 모여서 다른 모양을 만들어내지. 하지만 내가 이런 인상들을 벽에 못을 박아 고정시키지 않으면, 나의 내면에 있는 많은 인간으로부터 한 인간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만약 내가 지금 여기에 확실하게 존재하지 못하면(멀찌감치 있는 산에 흩뿌려진 눈의 자태로가 아니라) 그리고 사무실을 지나가면서 미스 존슨에게 영화는 어땠느냐고 물어보고, 찻잔을 받아 들고, 좋아하는 비스킷도 받지 않는다면, 그러면 나는 눈처럼 떨어져 내려서 사라지겠지.

-버지니아 울프 [파도]


아침에 출근하는 남편 등 뒤로 현관문이 닫히고 아이는 운다. 셋에서 둘과 하나로 분리되는 순간을 아이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이는 내가 보여준 사과에 곧 울음을 그치고 방긋 웃는다. 이제 아이의 세계는 사과를 중심으로 재구성된다. 현재는 단맛과 아삭거리는 질감으로 만들어진다. 순간을 집는 손가락은 다소 끈적거린다.


지금 이 순간 단 하나의 사물에 집중하는 능력은 성장하며 잃어버리는 것 중 하나다. 나는 자주 분리된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아침으로 토스트를 먹을지 커피만 마실지 고민하는 나와, 빨래를 언제 돌려야 잘 마를지 계산하는 나와, 사과를 다 먹은 아이가 가지고 놀 장난감을 고르는 나로 조각조각 분해된다. 여러 명의 나를 바라보는 나는 쓴다. 이 중에 진짜 나는 누구인가? 이 모두가 나인가? 그중 하나가 소리친다.

'냄새가 지독해!'

아이의 기저귀가 묵직하다.


흔한 아침육아 풍경


아이가 스피커 쪽으로 다가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어플로 동요 모음집을 재생하고 테이블에 앉아 남은 커피를 마신다. 커피는  식었고 읽으려고 꺼내 둔 쇼펜하우어는 멀뚱히 나를 본다.  음악을 들을 때 절대적인 행복을 느꼈다는 냉소적인 철학자가 당황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노래인가?' 뽀로뽀로뽀뽀뽀로로로 안녕안녕안녕, 노래를 들으며 책을 읽는  힘겨운 일이다. 뽀로로 밴드가 신나게 노래하고 아이가  앞에서 엉덩이를 흔들고 나는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줄을 겨우 읽는데 표상이 뭐냐, '감각에 의하여 획득한 현상이 마음속에서 재생된 ' 그렇다면 지금  귀는 뽀로로 동요를 듣고 있고 공룡 이름을 외우고 있으니 세상은 공룡이다(?).


나의 감각이 세계를 형성한다면 아이는 지금 애착 인형의 촉감으로 세상을 자각하고 나는 모기에 물린 오른쪽 무릎의 간지러움으로 세계를 만드는 중이다. 확실히 쉼 없이 가려운 모기 자국 때문에 머릿속이 가려움으로 꽉 차 있으니 지금의 나는 무릎에 집약되어 있다. 아이가 먹을 오트밀을 휘저으면서도 무릎을 긁고 있으니까. 엄지손톱만 한 자국은 내 몸의 주도권을 주장한다.


오트밀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운 아이는 아기의자에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본다. 아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가. 웃는 얼굴로 보아 기분이 좋고 노래가 마음에 들었거나 배가 불러 만족스럽다는 추측을 해 보지만 내가 생각하는 아이의 속마음은 '아이다움'필터가 작동 중이다. 의외로 아이는 지금 고차원적인 고뇌에 빠진 상태일 수도 있다. '이 동요의 비트는 나의 기분을 고양시키는데 왜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지 궁금한데 아직 말을 할 수 없으니 해결할 수 없는 질문은 어렵구나'같은 생각 중일지도 모른다. 사실 배부르고 좋아하는 노래가 나와서 기분이 좋은 건 18개월이나 서른다섯이나 똑같다.


소고기비트죽에 단단히 고정된 18개월


'나'는 지금 먹는 음식에, 귀에 들리는 노래에, 쓰다듬는 인형에, 땀을 흘리다 마주한 선풍기 바람에 단단히 붙들린다. 살아있다는 감각은 더운 여름 참고 참다 켠 에어컨 바람이 생생하게 되살린다. 나는 내가 읽는 책에 붙들리기도 한다. 철학이 읽고 싶어 꺼내 든 니체와 쇼펜하우어는 확실히 아기상어 노래와 그리 어울리는 이름은 아니다. '모든 것을 인식하지만 어느 것에 의해서도 인식되지 않는 것이 주관이다.' 나는 노래를 듣지 노래를 듣는 나를 들을 수 없다, 이게 맞나? 아기상어 노래를 들으며 점심으로 아이는 소고기죽을 먹고 나는 비빔면을 먹고, 아이는 낮잠에 들고 나도 한숨 자고 싶고, 나의 일부는 낮잠에 빠져들고 나머지 나는 책을 보고, 쇼펜하우어...의지....잠에 대한 갈망...욕망.....


뭘 쓰고 있는 걸까?


아무것도.


 자고 일어난 아이는 치즈와 요거트와 주스를 차례대로 해치우고   드는 거실 의자에 앉아  발가락을 입에 문다. 나는 쓰레기통  개를 비우고 청소기를 돌리고 초코칩  개를 먹는다. 오늘은 해가 가장  하지고 평소보다 햇빛이   뽀얗게 표백된 느낌이다.  남편이 퇴근하면 둘에서 셋이 되고 셋은 저녁을 먹고 양치질을 하고 잠에 월요일이 간다. 비슷한 루틴으로 화요일이 오고 가고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조금씩 해가 짧아지기 시작하고 주말에 셋이 시간을 보내면 새롭고 오래된 월요일이 온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텅 빈 나를 띄우고 저절로 지나가게 둔다. 어제와 같은 하루는 구별되지 않고 어제와 같은 나는 구분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둥실둥실 강물이 되어가는 나, 그런 나를 나의 아이가 잡아챈다. 아이가 나를 본 순간 나는 엄마로 고정된다. 뽀송한 새 기저귀에, 갓 지은 이유식에, 잘게 썬 사과에 엄마라는 이름으로 단단히 붙들린다. 나는 사라지는 대신 아이의 밥을 챙긴 뒤 글을 쓴다. 이것과 같은.


비누방울처럼 날아가기 전 잡아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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