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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Aug 02. 2021

너는 지금 내 손을 잡아

18개월 재접근기 아기 육아 풍경

지금 이 글을 쓰기 시작하자마자 아이가 다가와 내 손을 잡아끈다. 내 손가락을 꼭 잡은 아이는 나를 나의 서재로 인도한다. 서재 안에 아이 장난감은 없고 아이는 그저 나를 보며 웃는다. 내가 알 수 없는 아이만의 놀이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의도대로 엄마를 움직이게 한 것이 기쁜지 모르겠다. 내가 확실히 아는 건 아이가 내 손을 잡는 이유가 자신이 원하는 게 있을 때라는 사실이다. 이제 아이는 냉장고 문이 열리면 뭔가 맛있는 게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특히 밥을 다 먹은 뒤 엄마가 냉장고를 열어 아기치즈를 꺼내 주는 패턴을 깨달았다. 식사를 끝낸 아이가 아기의자에서 내려오면 내 손을 꼭 잡고 냉장고 앞으로 데려간다. '지금 나는 치즈를 원한다!'는 확실한 의사표현이다.


급하다 급해


자아가 생기고 원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직 말이 트이지 않은 아기가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비언어적 표현을 사용한다. 부모의 손 잡아끌기, 뚫어져라 쳐다보기, 소리 내기, 울기, 울면서 머리 박기. 아이가 자아를 자각한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날 아이는 하루 종일 울고 소리 지르고 손에 잡히는 건 다 던졌다. 하필이면 PMS시기와 겹쳐 나 역시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당장 울음을 터뜨릴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출산 이후 얻은 가장 안 좋은 것 중 하나인 생리전증후군이 양 손에 칼을 들고 칼 위에서 춤을 췄다. 자신 안에 깃든 정체 모를 무언가에 쫓긴 우리는 3일 내내 울었다. 머리를 감으며 샤워기를 최대로 켜 소리를 숨기며 울며 나는 나를 벗어던지고 싶었다. 아이도 어쩌면 같은 심정이었을지 모른다. 말을 못 해 직접 물어볼 순 없지만, 장난감 상자에 블록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울면서 장난감을 집어던지는 아이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달력을 보니 딱 18개월이 되는 날이었다.


생후 16에서 24개월 사이 유아는 엄마로부터 신뢰감과 소속감을 재확인하며 독립을 준비한다. 혼자 잘 놀던 아이가 갑자기 다리에 매달리고 안아 달라 떼를 쓰고 수시로 엄마를 찾는다. 7월 한 달은 내 지정석인 거실 식탁에 거의 앉을 수가 없었다. 사운드북을 누르며 몰입한 듯해서 노트를 꺼내 한 글자 쓰는 순간 내 손을 잡고 자신의 놀이터로 나를 데려간다. 부엌에서 밥을 하고 있으면 싱크대와 나 사이로 파고들어 나를 떼어내기 위해 용을 썼다. 재접근기 개념을 알고도 급격한 아이의 변화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안아 주고 아이가 손을 잡으면 순순히 끌려가 주는 정도였다. 내 손을 잡은 작고 뜨거운 저 손에 아무런 목적이 없어 보여도, 내가 따라간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일 것이다.


엄마가 하는 건 다 따라해 보기


아이가 원한다. 밥이나 잠, 뽀송한 기저귀 말고도 나의 확고한 애정과 관심을 원한다. 아이가 손을 잡아당겨 나를 어디론가 데려갈 때 약간 귀찮으면서도 신기했다. 이토록 작은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욕망의 존재가,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 뒤에 숨은 그 무엇이 경이로웠다. 이전까지 아이가 살아 있는 인형처럼 느껴졌다면 비로소 한 명의 인간처럼 보였다. 독립된 이야기를 가진 한 명의 어엿한 인간.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는 저마다 각자의 욕망이 있고, 이 우주의 법칙에 따라 그 욕망은 갖은 방해물로 인해 쉽게 충족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저절로 그들 모두에게는 하나의 이야기가 생긴다.

- 김연수 [소설가의 일]


7월엔 예고 없는 소나기가 자주 쏟아졌고 코로나 확진자 최대치를 매일 갱신했으며 글을 거의 쓰지 않았다. 재접근기와 PMS 폭풍이 한바탕 지나간 뒤 급 평화가 찾아왔고 아이도 나도 울음을 멈췄다. 엄마를 옆에 두고 방긋 웃으며 에듀테이블을 두드리는 아이를 보며 따라 웃었다. 두 번째 장편소설까지 끝을 낸 뒤 새로 떠오른 두 개의 아이디어를 양 손에 하나씩 쥐고 만지작거렸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란 생각이 들면서도 첫 문장을 쉽게 쓸 수 없었다. 쓸 생각은 있고? 이미 완성된 원고들은 끊임없이 출간을 거절당하고 어떻게 고치고 써야 할지 방법을 알 방법이 없었다. 마감이 없는 무명의 작가가 계속해서 글을 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 나의 욕망,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을 아는 데서 시작해야겠지.


아빠랑 엄마랑 놀때 제일 신나!


육아를 제외한 다른 일에 손 놓은 채로 한 달을 멍하니 보냈다. 브런치도 쓰는 둥 마는 둥 책만 조금씩 읽으며 하루 종일 에어컨을 가동한 집에서 꼼짝 않고 창밖의 폭염을 관망했다. 아이가 멍한 나를 끌고 자신의 책장 앞으로 데려간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 한 권을 꺼내 강아지가 그려진 페이지를 펼친다. 내 손을 끌어당겨 강아지를 가리킨다. 멍멍! 인간 사운드북이 되어 강아지 소리를 내자 활짝 웃는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명쾌하다.


나도 누군가 내 손을 잡아끌고 나도 모르는 나의 욕망이 무엇인지 명확히 가르쳐 주면 좋겠지만 내 손을 움직이는 건 오롯이 나의 의지에 달렸다. 보통 내가 욕망하는 것은 지금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이다. 내 힘으로 열지 못하는 냉장고 안의 치즈, 아직 읽을 수 없는 그림책 속 이야기, 몇 번을 확인해도 부족한 엄마 아빠의 애정, 그때마다 아이는 움직인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향해. 결국 내가 원하는 건 한 편의 잘 쓴 완성된 소설이고 그걸 가지기 위해 나는 나의 손을 움직여야 한다. 축 늘어진 내 손을 잡아당겨 노트 위에 둔다.


가지지 못한 것들이 우리를 밀고 가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이 사실을 이해하면서부터 나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더 많이 원하자고 생각했다. 나 자신에게도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고 마음먹었다. 왜 안 되겠는가? 어쨌든 결말은 해피엔딩이 아니면 새드엔딩이다. 원하는 걸 가지거나, 가지지 못하거나. 그게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엔딩이 찾아오면 이야기는 완성된다. 이야기는 등장인물이 원하는 걸 얻는지 얻지 않는지에 대해선 신경쓰지 않는다. 인생 역시 이야기라면 마찬가지리라. 이 인생은 나의 성공과 실패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에 얼마나 대단한 걸 원했는가, 그래서 얼마만큼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느꼈으며 또 무엇을 배웠는가, 그래서 거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가, 다만 그런 질문만이 중요할 것이다.

- 김연수 [소설가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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