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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Aug 23. 2021

취미는 카페 수집

엄마의 취미 활동

메모 앱을 옮기게 되면서 이전에 썼던 앱을 정리하다 예전에 정리했던 '취미란 무엇인가' 카테고리를 발견했다. 브런치 작가 등록이 완료된 뒤 고민했던 브런치 북 주제 중 하나였다. 내가 가진 취미를 주제로 스무 가지 정도의 목록을 만들어둔 과거의 열정이 기억났다. 취미 수집 자체가 또 하나의 취미로 인정될법한 노력의 흔적이었다.


잊고 있었던 2년 전의 기록


지금은 스무 가지의 방대한 취미를 쳐내고 한두 개로 압축했다.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독서와 글쓰기가 가능한 카페 가기. 임신과 출산을 거쳐 혼자서 외출하는 일이 귀해지고 일주일에 한 번 어떤 카페를 방문할지 리스트를 만들고 선택하는 과정이 하나의 취미가 되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나만의 카페 선정 기준은 첫째, 의자와 테이블이 편안한가? 둘째, 일부러 찾아갈 만한 가치 있는 공간인가? 셋째, 커피와 디저트가 맛있는가?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해 카페로 나가는 것이기에 요즘 유행하는 낮은 의자와 더 낮은 테이블의 카페는 불편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카페는 의자가 좀 딱딱하긴 하지만 성당의 이미지를 훌륭하게 구현한 공간의 아름다움이 만족감을 준다. 책 읽기 좋은 클래식 음악도 마음에 들고, 무엇보다 커피가 맛이 좋다. 이렇게 취향에 맞는 카페를 찾아내면 오늘 하루는 성공적이다. 성공적인 하루는 일주일의 배터리가 되어 나머지 6일간의 육아 업무에 도움 되는 에너지를 준다.


경건한 마음으로


아이를 낳으면서 나는 내 아이에게 내 모든 걸 주겠다는 다짐을 했다. 딱 1%만 남겨 놓고. 그 1%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혼자서 누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의미했다. 육아서가 아닌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는 시간과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을 쓸 수 있는 작은 공간.


아이의 낮잠이 하루 다섯 번에서 한 번으로 차차 줄어들고 돌이 되어 보행의 자유를 획득하면서 온 집안이 아이의 영역으로 흡수되었다. 혼자 쓸 수 있는 시간이 깎이고 개인적인 공간은 졸아들었다. 키가 크고 호기심도 쑥쑥 자란 아이의 손이 책상 위 내 만년필까지 향했다. 클렌징크림으로 까맣게 물든 아이의 손을 닦으며 한숨을 쉬었다. 이제 이 집 안에서는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1%밖에 남지 않았다. 서재 안 책상은 고사하고 거실 테이블에 앉아 메모 앱이라도 켜면 아이는 귀신같이 알아채고 달려와 내 손을 잡아끈다. 99%의 지분을 주장하며 어서 나를 안아달라는 아이는 숨 막힐 정도로 사랑스럽고 숨 막힐 만큼 피곤하다.


버지니아 울프가 강조한 글 쓰는 여성에게 필요한 '문에 자물쇠를 채울 수 있는 방'은 독신 여성과 아직 아이가 없는 기혼 여성에게까지 허락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문에 자물쇠는커녕 그냥 방을 가진 엄마가 얼마나 될까? 4년 전 결혼을 하면서 내 방을 비운 바로 다음 날 엄마는 지체 없이 가구를 버리고 도배를 새로 했다. 그렇게 생긴 방은 잡동사니와 이불 빨래가 차지했다. 엄마는 엄마의 방에 무엇을 넣어야 할지 몰랐을지도 모르겠다. 방 세 개의 집에서 안방을 제외한 두 개의 방은 나와 동생이 하나씩 차지하고 사춘기가 온 뒤 문을 닫았다. 엄마는 거실에 앉아 TV를 보았다. 엄마의 가계부와 여성 잡지는 소파 옆 피아노 위나 부엌 식탁에 놓여 있었다. 엄마의 공간은 집 전체였으나 동시에 사적인 소유는 불가능했다. 엄마의 시간은 항상 가족들과 공유되었다.


육아 협업 속에서 유지되는 공간


내 취향의 카페를 찾아 나서는 과정은 엄마가 아닌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한 시간과 공간을 찾기 위한 의식이다. 오늘 방문할 카페의 이미지와 어울릴 만한 옷을 입고 그곳에서 읽을 책을 고르는 일까지 의식의 일부다. 너무 쉬워 다 읽어버릴 위험이 없으면서도 집중이 어려울 정도로 까다롭지 않은 완벽한 책 한 권과 노트를 에코백에 챙기는 것부터 시작이다. 지극히 사적인 시간과 공간을 소유하려는 노력이다.


엄마는 내 방을 엄마 방으로 만드는 대신 꽃 사진을 찍는 취미에 빠져드셨다. 아빠와 함께 DSLR 카메라를 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때 거기서만 피어나는 희귀한 꽃을 찾아다니신다. 거실 테이블엔 한국의 들꽃 도감이 펼쳐져 있다. 엄마의 카톡 프로필에 걸린 각종 꽃 사진을 보며 나는 엄마가 엄마 자신의 시간과 공간이 찍힌 풍경을 감상한다.


오늘의 카페 사진을 찍고 오늘 읽은 책 구절을 인용하면서 나만의 풍경을 저장한다. 오직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카페를 누리는 일은 취미를 넘어선 생존본능이다.


가끔 같이 가는 카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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