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월 아이의 사건사고
사건 1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이상하게 조용하다. 서둘러 정리하고 거실로 가 보니 텔레비전 모니터 뒤로 침입해 숨겨둔 리모컨을 탈취하는 중. 종잇장 같은 티브이 모니터가 두려움에 팔랑거리고 있었다.
사건2
반쯤 막아 둔 중문 틈 사이로 고양이처럼 통과해 탈출하는 데 성공. 신발은 손에 쥐고 맨발은 먼지로 새까매진 채로 중문 밖에서 나를 보며 웃고 있다.
사건3
서재 책상에서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하다 뭘 찾으러 잠시 자리를 뜬 사이에 커피잔 손잡이를 잡아버린 아들, 다행히 식은 커피는 다행이지 않게 책상과 바닥과 아이 옷을 흠뻑 적신 뒤.
사건4
옷방에서 절대 날 리 없는 찰랑거리는 물소리에 튀어나가니 옷장 문을 여는 데 성공한 아이가 물먹는 하마를 손에 들고 입에 넣기 일보 직전.
사건 189870345
소리 없이 입 안에 뭔가를 오물거리고 있다? 일단 입 벌리게 하고 반드시 안에 든 걸 확인해야 함. 지금까지 자동차 장난감 백미러, 빵끈, 화분 이파리, 기타 바닥에 떨어져 있으리라 생각도 해 본 적 없는 자질구레한 것들이 입 안에서 발굴되었다.
참고로 사건 1-3은 하루 만에 일어난 일들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말을 할 줄 모른다. 그래서 훈육이 잘 먹히지 않고 하지 말라는 금지 선언은 허무하게 튕겨져 나온다. 두 돌까지 훈육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그때까진 말로 타이르라는데, 얘가 지금 내 말을 듣고 있나? 듣기는 하는 것 같다. 뭔가 엄마가 혼을 낼 것 같은 행동을 하기 전에는 재빨리 내 눈치를 본다. 눈을 마주치고 하면 안 된다고 말하면 입을 삐죽거리며 내 눈을 피한다.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복장이 터진다.
걷기를 마스터하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급증하면서 말이 터지기 직전의 이 시기를 육아 과도기라 부르고 싶다. 세상은 오롯이 가능성으로만 활짝 열려 있고 금지와 제약의 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 뭐든지 입에 넣어야 하고 뭐든 일단 손으로 만져봐야 직성이 풀리는 시기. 잘 닫혀 있던 장롱과 서랍들이 활짝 열리고 나도 잊고 있던 물건들이 백주대낮에 끌려 나와 벌벌 떠는 요즘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뭐 해? 안 돼, 하지 마, 입 안에 든 거 뭐야, 눈에 안 보이는데 이상하게 조용하다? 일단 이름을 부른다. 그런데도 조용하다? 재빠르게 달려가 입에 들어가려는 전기 코드나 옷걸이를 구조한다.
해야 할 일과 하면 안 되는 일 사이의 선을 지키는 건 어렵다. 그보다 더 어려운 건 그 선을 알려주는 것이다.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해도 손을 뻗는 아이를 번쩍 들어 놀이 매트에 앉혀 놓으면 다시 그 자리로 되돌아오는 아이의 무지 앞에서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인내심,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인내심을 가져라, 상대는 아직 엄마 아빠 까까 맘마밖에 못 하는 15개월 애송이다, 부엌 서랍 열고 반찬통 꺼내는 재미에 취한 인생 새내기다.
열면 안 되는 서랍에 잠금장치를 설치하고, 유리로 된 물건들(주로 술병)을 손 안 닿는 곳에 치우고, 물먹는 하마를 새 것으로 교체하고, 바닥 청소를 꼼꼼히 한다. 그러면 아이는 내 노력에 보답하며 잠금장치를 뜯고 내가 미처 몰랐던 곳에 둔 병을 찾아내고 쓰레기통을 열어 손에 잡히는 게 무엇이든 입에 넣을 것이다. 파도 한 방에 지은 줄도 몰랐던 모래성을 처음부터 다시 짓는다.
반복되는 일상, 되풀이되는 감정, 고통은 곱씹으면 악화될 것 같지만 나는 지금의 힘듦을 기억해야 한다. 아이의 서투름과 나의 어설픔이 힘겨루기를 하며 서서히 형성되는 ‘선’을 기록해야 한다. 내가 기록하는 육아일기는 어설픔의 기억들이다. 아이의 처음과 엄마의 처음이 부딪혀 그려낸 해안선의 지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