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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Mar 01. 2021

우리 집을 모험하는 방법

봉봉일상1

안녕하세요, 형아들 누나들!

오늘은 엄마를 대신해서 내가 왔어요.

엄마는 요즘 바빠요. 매일 책상에 앉아서 두 번째 장편소설을 쓰고 있어요.

그게 나는 싫어서 의자를 잡아당기고 책상을 잡아당기고 울었어요.

엄마는 웃으면서도 가끔 슬퍼 보였어요.

그래서 오늘은 내가 왔어요!

마침 어제 내 힘으로 범퍼침대 탈출에 성공했거든요.

모든 모험의 시작은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는 것 아니겠어요?


탈출을 꿈꾸며⭐️


처음 범퍼침대 탈출을 시도할 때 많이 넘어지고 머리도 박았어요.

가슴까지 오는 가드를 무작정 넘어가려다 머리를 바닥에 꿍했거든요.

내가 울면 엄마도 같이 울어요. 나는 엄마가 우는 게 싫어요.

그래서 이번엔 침대 옆 엄마 아빠 침대로 넘어가는 방법을 써 보았어요. 성공이에요!

내가 요즘 '기어오르기' 기술이 엄청나거든요.

내 힘으로 침대 밖으로 탈출해 안방 문을 열고 나오니 거실에 있던 엄마는 깜짝 놀랐어요.

엄마가 웃는 걸 보니 뿌듯해요.



안방을 무사히 탈출하면 거실이에요.

거실은 내 손바닥이에요.

내 장난감 바구니도, 내 그림책 책장도 다 여기에 있어요.

여기서 나는 뒤집기, 기어 다니기, 일어나기, 걷기, 기어오르기 등등을 연마했어요.

심심한 거실을 장난감과 그림책으로 재미있게 꾸미는 것도 내 중요한 하루 일과예요.

엄마는 왜 자꾸 내가 만든 정글을 치우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또 만들 건데.

내 그림책을 치우던 엄마가 바닥에 누우면 나도 따라서 대자로 누워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맛이 또 재미있잖아요.

그림책을 넘기는 손맛도 재미나고요.

넘기다 보면 설거지를 끝낸 엄마가 와서 책을 읽어줘요.

나는 엄마 목소리가 좋아요.



거실과 부엌 사이 작은 방에도 책이 엄청나게 많아요.

작은방 책은 그림도 없고 무슨 재미인지 모르겠는데 엄마는 매일 책만 봐요.

넘기는 맛은 없지만 꺼내는 재미는 나름 새로워요.

아직 내 손에 닿지 않는 곳이 더 많아서 흥분돼요.

이 방에 모든 책 다 꺼내기 모험으로 반나절은 신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엄마의 방해를 피해 은밀하게 시도할 모험이라 난이도가 높아요.

오늘도 엄마는 한숨을 쉬었어요.



요즘 내가 가장 즐겨하는 모험은 거실 소파 오르기예요.

온몸을 온 힘으로 다 써야 하는 고된 일이지만, 오르기에 성공하면 고통도 다 사라져요.

두 발을 감싸는 푹신한 소파의 맛, 올라간 눈높이가 주는 시원한 맛.

눈높이에 따라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건 일찍부터 알아요.

엄마가 안아줄 때와 아빠가 안아줄 때 공기가 다르거든요.

내 힘으로 얻어낸 높이에선 나를 보며 웃는 엄마 얼굴이 더 잘 보여요.

소파 앞에 있는 커다란 검은 거울에 비친 내 몸도 더 잘 보여요.

빨리 아빠만큼 쑥쑥 커서 높은 시야를 가지고 싶어요.



조심스럽게 소파에서 하산하면 바닥의 정글이 나를 맞아 줘요.

버튼을 누르면 노래가 나오는 책, 한입거리 인형들, 앞으로 굴러가는 자동차들,

가끔 특별한 친구들을 만나고 싶으면 부엌이나 옷방에 있는 바퀴 달린 선반을 찾아가요.

특히 내가 좋아하는 보물은 화장품 병이에요. 단단하고 기분 좋은 향기가 나요.

이건 엄마한테 들키는 순간 큰일 나기 때문에 아주 조용히 작전을 펼쳐야 해요.

쉿, 지금 선반을 탐험할 최적의 순간이에요, 조용히 엄마가 무얼 하는지 소리로 탐지해요.

뭔가 열고 닫는 소리, 규칙적으로 두드리는 소리, 딸기 냄새, 딸기?

작전 중지! 엄마가 딸기를 자르고 있다!

거실로 후퇴하라, 딸기로 에너지를 보충한다!



아직 우리 집에서 내가 제대로 탐험하지 못한 장소가 많아요.

부엌 옆에 하늘이 뻥 뚫린 테라스도 있고,

현관도 나 혼자 나가본 적 없어요.

최근 현관 미닫이문을 여는 방법을 터득했으니까, 다음 모험 장소는 현관이에요.

유리 미닫이문 너머 신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요.

미닫이문 열리는 소리가 나면 엄마가 곧장 방해해서 제대로 된 모험은 시작도 못 했지만요.

모험에서 가장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에요.

그리고 나는 무한한 시간과 인내심을 가지고 있어요.


다시 만날 그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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