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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Feb 08. 2021

조금이라도 덜 실패하기 위하여

요리 똥손의 요리 정복기

내게 요리란 귀걸이와 같다. 딱 한 번 스무 살 때 귀를 뚫었다가 금속 알레르기로 귓불이 빨갛게 부어오르며 진물이 마르질 않아 다시 막아버렸다. 귀걸이는 귀찮았다. 귀걸이를 고르고 작은 부품들을 잃어버리지 않게 관리하는 등 자질구레하게 따라오는 일들에 내 신경을 할당하고 싶지 않았다. 요리도 마찬가지로 내겐 귀찮은 일이었다.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르면 재료와 도구를 준비해 요리를 한 뒤 설거지를 하고 남은 식재료를 상하지 않게 관리하는 일이 하루 세 번 반복된다는 사실이 숨이 막혔다.


무엇보다 두려운 건 그렇게 돈과 시간과 노동력을 들여 만든 요리가 실패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으로 끓인 김치찌개가 냄비 뚜껑을 연 순간 '맑은 김칫국'으로 바뀐 충격은 오래도록 나를 지배했다. 그걸 먹어야 했던 전 남자친구(현 남편)는 아무 맛도 나지 않는 김치찌개가되려다국이되어버린실패작을 아무 말 없이 먹어 없애버렸다. 그때의 충격은 오래 지속되어 고시원에서 나올 때까지 내 식단은 계란 프라이 밥-계란 프라이를 하려다 망쳐 스크램블 에그가 된 밥-라면-만두라면-식으로 단순해졌고 결혼 이후 요리는 남편이 주 담당이 되었다.


그리고 봉봉이가 태어났다.


엄마 이건 좀 아니잖아앜


5개월 첫 이유식 때 혹시 하는 마음으로 산 쌀가루로 만든 죽을 입술 밖으로 흘려보내는 아이를 보며 역시 미련 없이 이유식 정기배송 서비스를 신청했다. 그러다 에어프라이어를 샀고, 설마 하는 마음으로 쌀가루와 바나나를 섞은 반죽으로 티딩러스크(일명 아기 개껌)를 구웠다. 잘 먹네? 핫케이크 가루로 스콘을 구워 보았다. 맛있네? 고구마를 구워 아기 치즈를 얹어 간식으로 줬다. 좋아하네?


죽은 냉동식품도 살려낸다는 마법의 기계가 내 안에 꽁꽁 얼어붙어 있던 요리를 향한 욕망을 해동시켰다. '어차피 나는 요리는 아니야...'가 '한 번 해 볼까...?'로 바뀌는 동안 돌이 되었다. 이유식 배달 비용이 은근 부담스러웠고, 완료기 이유식은 쌀을 쪼갤 필요 없이 밥과 잘게 썬 재료들을 같이 넣고 끓이는 죽과 같아 나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 레시피를 검색해 다진 소고기와 닭 안심, 당근과 브로콜리를 집 근처 슈퍼에서 사 왔다. 브로콜리를 데치고 당근을 잘게 썰고 소고기 핏물을 빼고 닭을 삶았다. 원래 불린 쌀로 만들지만 만약의 실패 가능성을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 밥솥에 쌀밥을 퍼서 냄비에 때려놓고 끓였다. 세 번 먹을 분량으로 두 개의 이유식을 만드는 데 거의 두 시간이 걸렸다.


사투의 현장


아이는 내가 만든 이유식을 싹 비웠다.


방긋방긋 웃으며 박수까지 치는 아이의 식사가 끝나고 폭탄이 떨어진 것 같은 부엌을 30분 넘게 치우는데 기분이 좋았다. 혼돈 속에서 내가 뭔가를 만들었고, 그 뭔가는 꽤 괜찮았고, 다시 남겨진 혼돈을 정돈하며 머릿속도 같이 정리되는 감각이 상쾌했다.


글쓰기와 요리는 비슷하다. 내가 읽기(먹기) 위해 에너지를 쏟고 누군가(독자/가족)를 위해 행동하는 이타적인 행위다.

글쓰기와 요리는 다르다. 한 번 쓰인 글은 반영구적으로 존재하게 되고, 언제든지 고칠 수 있다. 한 번 완성된 요리는 잠깐 존재하다 사라지고, 수정하기 까다롭다.


요리의 순간성을 납득할 수 없었다. 내가 쓴 서툰 글은 고치고 고치면 조금씩 좋아지는 게 보였다. 내가 만드는 것이 쌓이며 느끼는 성취감이 계속 글을 쓰게 했다. 요리는 고칠 수 없었다. 실수로 김치 국물을 모조리 짜내 끓인 김치찌개는 아무리 소금을 넣어도 짜기만 할 뿐 맛을 고칠 수 없다. 한 번 터진 노른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요리가 실패할 경우 다시 시작할 수 없다는 부분이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잘 쓰지 못한 소설은 다시 쓰면 되지만 못 만든 요리는 재료를 낭비한 실패작일 뿐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지금의 내 노력이 헛된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허무감이었다.

나는 실패가 가장 무서웠다.


실패를 사랑하라


하지만 창작이야말로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이 아니던가? 2년 전 첫 소설집을 출간하게 되면서 8년 전에 썼던 첫 습작부터 시간 순서대로 읽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세계적인 작가가 된다면 죽기 전 필히 소각하고 가야 할 서툴고 우스운 실패작이었다. 그렇게 쓰고 쓰고 쓴 소설이 모여 조금 더 나은 소설이 되고 이전보다 괜찮은 소설을 쓸 수 있었다. 무수한 실패가 쌓여 최대한 덜 실패하기 위한 노력 속에 작품은 완성된다.


완벽한 소설도, 흠잡을 데 없는 요리는 사실 불가능하니까.


이번엔 봄동과 연어를 가지고 연어 봄동 이유식과 봄동 된장국과 연어구이를 만들었다. 아기 식탁에 앉은 아이는 아기새처럼 입을 벌리며 이유식을 비웠다. 처음 끓여 본 봄동 된장국은 깔끔한 맛으로 기름진 연어구이와 잘 어울렸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의 만족감이 행복이라는 찰나의 순간으로 잠시 우리 집 식탁에 머물렀다.


그 순간만큼은 완벽했다.


잘 먹을 때 제일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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