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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Jan 24. 2021

돌쟁이들은 무엇을 할 수 있나요

12개월 아가의 2차 영유아검진

"걸어? 혼자서 걸어 다니나?"


돌이 되기 한 달 전부터 양가 조부모님은 전화로 손주가 이제 걸을 수 있는지 몹시 궁금해하셨다. 카톡으로 아이가 소파를 잡고 옆으로 걸어 다니는 영상을 부지런히 보내드렸다. 대부분 '스스로 걷기'를 돌이 된 아기의 중요한 기준점으로 잡는다.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듯이 아아는 부지런히 걷기 연습에 매진했고 돌잔치 이틀 뒤 진짜 돌이 된 날에 두어 발 아무것도 잡지 않고 걸어오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두 발로 선 순간부터 아이의 표정은 자신만만하다. 곧 자신이 보여 줄 동작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 안다는 미소를 입에 걸고 한쪽 발을 들어 올린다. 한 발, 두 발,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들어 올린 두 팔은 아이가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고 오직 자신의 힘으로 앞으로 가는 데 성공한 아이는 기쁨의 미소와 함께 엉덩이로 안전하게 착지한다.



좀 더 정확한 아이의 발달상황을 알고 싶으면 9개월부터 받을 수 있는 2차 영유아검진의 '발달선별 검사지'가 있다. 소아과 검진 전 문진표와 함께 대근육 운동, 소근육 운동, 인지, 언어, 사회성 등의 항목으로 나뉘어 각각 8문항식 체크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검사지를 작성해야 한다. 검사지를 체크하면서 우리는 평소보다 좀 더 세부적으로 아이를 살필 수 있었다.


9개월 발달선별 검사지


1. 대근육 운동


1번 '가구를 붙잡은 상태에서 넘어지지 않고 자세를 낮춘다'부터 8번 '혼자 열 발자국 정도 걷는다'까지, 9개월 이상의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동작들을 알 수 있다. 아이는 발달선별 검사지에 이런 항목이 있다는 걸 태어날 때부터 알았다는 듯이 시키지 않았는데 혼자서 걷기 위해 몸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이전 글에서 쓴 것처럼 인간은 직립보행의 본능이 유전자에 내재되어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2. 소근육 운동


손을 이용해 과자를 잡고 컵을 잡고 잡고 있는 물건을 놓치지 않고 내려놓을 수 있는지, 바퀴가 달린 장난감을 들고 앞으로 굴러가도록 할 수 있는지, 별생각 없이 문항을 넘기다 '(색) 연필과 종이를 주면 선을 이리저리 그리며 낙서를 한다'에 당황했다. 손에 잡히는 건 모조리 입에 들어가는지라 연필을 한 번도 쥐어준 적이 없었다. 검진 전날 연필과 종이를 주고 옆에서 낙서하는 시범을 보였고 아이의 손에 든 연필은 입으로 직행했다.



3. 인지


그림책에 재미있는 그림이 있으면 관심 있게 쳐다보는지, 리듬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는지, 상자 속 물건을 꺼낼 수 있는지, 어른의 행동을 흉내 낼 수 있는지, 외부 세계를 능동적으로 바라보고 관찰하며 이에 호응할 줄 아는지를 물어본다. 요즘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책을 뽑아서 내게 오고 애착 인형을 꼭 안은 채 내게 돌진한다. 특히 사진 앨범 감상을 즐기는데, 유독 자신의 50일 앨범에 황홀해하며 감상하는 취미가 있다. 자기 자신의 아름다움(?)을 확실히 인지하는 것 같다고 우리는 판단했다.


4. 언어


엄마, (그리고 가끔) 아빠를 정확하게 발음할 줄 안다. 냉장고를 가리키며 엄마라고 하거나 아빠에게 안겨 엄마라고 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원하는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자신의 의사표현을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는 편인데 동작을 보여주지 않고 말로만 '주세요'나 '밥 먹자'등의 요구를 하면 멍하니 내 얼굴을 바라만 본다. '엄마, 아빠 외에 말할 줄 아는 단어가 하나 더 있다'에서 우리는 아이의 입을 스쳐간 수많은 옹알이들을 파헤쳤고 그 안에 확실한 의미를 포함한 단어는 없었다. 음운이 되지 못하고 스러져간 그 음절들이 어느 순간 '말'이 될까? 우리는 급 불안해졌고 검사지를 본 소아과 의사 선생님은 첫째인 아들들이 말이 가장 늦게 터진다며 책 많이 읽어 주고 말을 많이 걸어주라며 독려하셨다.



5. 사회성


모르겠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돌 전에 어린이집을 갔을지, 적어도 지금보다는 조부모님도 더 자주 뵈었을 것이고 아이 또래의 다른 친구들도 좀 더 많이 만날 수 있었으리라. 사회성 1번 항목 '다른 아이들 옆에서 논다'에서 '전혀  수 없다'에 체크하며 사실 이건 '전혀  수 없다'라 중얼거렸다. 다른 아이를 만나 봤어야 알지, 지금 두 달 넘게 아이도 엄마도 집에서 숨죽이며 5인 이상 모임 금지 조치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인데... 아이가 부모를 제외한 다른 어른들과 조우했던 몇몇 귀한 사례들 탐구해 '사회성이 없진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낯선 얼굴을 보면 일단 울음을 터뜨려 준 뒤, 좀 진정되면 슬금슬금 다가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재주들을(짝짜꿍, 사운드북 버튼 누르기 등) 선보인다. '주세요'등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편이고 부모를 포함한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는 편이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돌이 지난 아기들은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스스로 걷거나 적어도 혼자 서 있을 수 있고, 손을 써서 물건을 집고, 외부 세계에 능동적으로 반응하고, 자신의 의사를 몸짓 언어나 음성언어로 표현할 줄 알고, 부모 이외의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행동할 줄 압니다. 이 기준에서 조금 늦을 수도 있고 빠를 수도 있다. 우리 아이는 대근육 발달이 빠르고 언어 발달이 늦은 편이다. 남들보다 빨리 걷는다고 딱히 좋을 건 없고(이제 온 집안이 위험구역이 되었다) 좀 늦는다고 불안할 것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더 신경 써서 말을 걸어주고 세심하게 돌보기, 평소대로 원하는 만큼 안아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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