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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Nov 30. 2020

자식의 아름다움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예쁘다 하였으니

(이 글에는 다량의 주접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역대급 잠투정 폭풍이 천둥번개를 동반하고 휩쓴 날, 낮잠 40분으로 하루를 버틴 아들은 침대에 눕히려는 시도만으로도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악을 썼다. 엄마의 눈물과 아빠의 분투와 목욕과 수유 전쟁 끝에 아이는 장장 8시간 만에 잠이 들었다. 역류방지쿠션에서 잠든 아이를 망연히 보고 있던 우리는 갑자기 웃었다.


왜 이렇게 예뻐 또...


잘 때가 제일 예쁨 눈 뜨면 더 예쁨


내 필력으로 이 아름다움을 완전히 묘사할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어떻게 써야 저 긴 속눈썹 끝에 맺힌 눈물 한 방울을 정확히 담을 수 있단 말인가? 과자를 손에 쥐고 앉아 오물거리는 저 볼따구의 말랑말랑함을 어떻게 해야 생생히 전달할 수 있을까? 오후의 해가 깃든 거실에서 걸음마 연습하는 아이의 모습은 핀 조명 아래 파리 패션위크 런웨이에 선 모델 같다. 얼굴은 또 어쩜 눈과 코와 입이 정확히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고 서서 제 할 일을 하고 있단 말인가..... 이토록 호들갑 넘치는 과장된 찬사들. 우리는 아름다움을 사랑하지만 이를 정확히 묘사하는 일에는 항상 실패한다.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는-혹은 '우아한', '사랑스러운', '숭고한', '경이로운', '화려한'같은 표현들과 함께-우리가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가리키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 움베르토 에코 [미의 역사]


그 실패는 우리의 사랑 때문이다. 전지적 부모 시점에서 고슴도치 부모 필터가 장착된 우리의 눈은 이미 객관성을 잃고 오직 최상의 형용사만을 사용할 수 있다. 내 자식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우아하고, 사랑스러우며, 숭고하고 경이로운 존재다. 존재일 수밖에 없다.


분명 우리를 닮았는데....(?)


자식의 아름다움이 주는 이 만족감은 인생 최고의 걸작을 완성한 예술가의 감탄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내 손에서, 아니 내 뱃속에서 이런 완벽한 창조물이 탄생하다니....! 이 외모의 재료는 부모의 것이기에, 우리는 아이의 미의 기원을 찾아 나노 단위로 얼굴을 분석해 본다. 눈코입은 확실히 아빠에게서 왔고, 그게 어우러져 표정을 짓는 얼굴은 엄마 얼굴이고, 첫눈처럼 흰 피부는 둘 모두에게서 받았고... 근데 우리는 이렇게 안 생겼는데.


혼란스러운 우리를 옆에서 지켜보던 지인이 한 마디로 정리했다.


참 잘 빚었다 너희...


그렇게 우리에게서 최고의 것만 잘 받아간 아이 앞에서 오늘도 감상 모드. 절대적으로 상대적인 아름다움은 존재의 빛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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