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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Oct 21. 2020

네 인생 이야기 스포일러를 받게 된다면

영화 <컨택트 arrival>와 비선형적 시간 속 아이와 나

*영화 <컨택트 arrival>(2017)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제 arrival, 원작은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요즘 내 감정 상태가 살얼음보다도 얇다는 건 알고 있지만,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눈에서 눈물이 펑펑 흐르고 나는 당황했다. 주인공 루이즈가 딸을 낳아 키우다 어린 나이에 불치병으로 잃게 되는 초반 오프닝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의 파도가 무방비 상태의 나를 후려쳤다. 너 이 영화 원작 소설을 이미 읽었잖아, 무슨 내용인지 대충 알잖아. 언어학자인 루이스가 정체불명의 외계 비행체 12대가 세계 각지에 등장하게 되고 그들의 언어를 번역하기 위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것, 햅타포트라 이름 붙인 거대한 문어 같은 외계 생명체의 언어를 배우게 되면서 그들의 사고방식을 습득하고 그들이 가진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


영화 속 외계인의 언어


동그란 원 모양의 비선형적 문자를 쓰는 그들은 과거-현재-미래를 동등하게 인지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3000년 뒤의 미래를 보았고(알았고? 이들에게 모든 시간대는 동시적이다) 그 미래에서 인류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기에 그때를 위해 자신들의 언어를 전달하러 지구에 온 것이다. 이들의 선물(언어)을 받은 루이즈는 자신의 미래를 보게 된다. 그러니까 영화 첫 장면에 등장한 딸과 함께한 시간은 루이즈의 과거가 아니라 미래였다. 햅타포트의 언어를 습득해 책을 쓰고 인류에게 이 언어를 가르치고 프로젝트에서 만난 이안과 결혼해 딸 한나 Hannah를 낳고 남편이 떠나고 딸이 죽는 일련의 미래를 알게(경험하게) 된 것이다.


만약 우리가 미래를 알게 된다면, '당신 인생을 전부, 처음부터 끝까지 알 수 있다면' 그걸 바꿀 것인가? 상상조차도 하기 싫지만 영화에서처럼 내 아이를 나보다 먼저 보내야 하는 미래를 알아 버린다면, 나는 그 슬픔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다른 선택을 하게 될까?


거울을 보듯 미래를 볼 수 있게 된다면


이제 혼자서 걷기 스킬 습득만 남은 300일 차 아이 주변은 위험 투성이다. TV 선반을 잡고 일어나 50인치 스크린에 손바닥 자국 남기는 건 애교다. 이케아 트롤리 선반 안에 담긴 물건 하나하나 끄집어내 탐색하기, 설거지하고 있으면 부엌까지 힘차게 기어 와서 내 바짓단 잡고 일어서기, 화장실 볼일 보고 있으면 역시 뽈뽈뽈 기어와 화장실 턱에 손 올리고 미어캣처럼 똥 싸는 엄마 구경하기(문 닫으면 열 때까지 괴성 지르기). 선반 속 내피 크림 뚜껑 열어 입에 넣을까 무섭고, 나를 잡고 일어서다 부엌 선반 모서리에 머리 부딪힐까 두렵고, 화장실 타일에 머리 박고 다이빙할까 간이 떨려 즉각 하던 일 중단하고 아이 잡아 드는 게 일상이 되었다. 이상하게 조용해서 살짝 이름을 부르면 샥샥샥 소리 내며 즉각 내 쪽으로 기어와 나를 쳐다본다. 기어 오는 길에 무수한 모서리들, 경첩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구석의 부스러기들이 호시탐탐 아이를 노린다. 테이블 밑에 떨어져 있던 비닐 끄트머리 조각을 입에 넣으려던 장면을 목격한 찰나의 소름은 절대 잊을 수 없다. 매트가 깔리지 않은 맨바닥에 갑자기 대자로 드러누워 머리를 부딪히는 일은 익숙하면서 익숙할 수 없다.


낙관론자로 살아온 33년은 아이를 낳은 순간부터 백지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모유 먹다 사레들리면 어떻게 하지? 안고 있다 내가 넘어지면 어떻게 몸을 돌려야 아이가 무사할 수 있지? 열이 나면 어떻게 하지? 큰 병이면 어쩌지? 지금 넘어져서 부딪힌 게 치명적인 건 아니겠지? 새우 알레르기가 있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아이가 걷기 시작하고 밖에 나가 사고를 당하면 어쩌지? 피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작업하고 있으면 어느새 내 발 밑에


상실이 두렵다. 소중한 것을 잃은 뒤 온몸에 뚫릴 구멍이, 그 구멍으로 파고들 칼날 같은 슬픔이 무섭다.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애초에 그걸 가지지 않는 것이다. 소유하지 않으면 번뇌도 없겠지, 초조해하고 두려움에 떨며 울다 지쳐 잠드는 밤은 오지 않으리라. 내가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피치 못할 미래가 두려워 선택 자체를 피한다면 이런 순간 역시 오지 않을 것이다. 모유를 다 먹고 트림까지 한 뒤 내 품 안에서 꾸벅꾸벅 조는 아이의 눈꺼풀이 떨리는 순간을, 넘어져서 울다가 내가 안으면 삐죽거리며 칭얼대는 입술을, 새우가 든 이유식을 먹고 갑자기 박수를 치는 모습을, 오후의 햇빛이 가득한 거실에서 장난감 상자에 든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내며 탐구에 열중하는 미간을, 미간을 찌푸리며 집중하다 나와 눈이 마주쳐 태양보다 더 밝은 미소로 바라보는 얼굴을 나는 갖지 못하리라.


이야기는 계속해서 시작된다


영화가 시작되고 나를 울린 일련의 장면들은 영화 끝에서 다시 한번 반복된다. 이안은 루이즈에게 묻는다. 아이를 가지고 싶어? 이제 모든 미래를 다 알고 있는 루이즈는 답한다. 아이와 함께한 모든 순간을 생생하게 살아갔고, 살아가는 중이며, 살아갈 그녀는 답한다.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어떻게 흘러갈지 알면서도,  모든  껴안을 거야. 그리고  모든 순간을 반길 거야.


덧없어 보여도 영원한 지금을 위하여


영원히  시간을 반복한다 해도 나는 답할 것이다. .


ps, 영화 오프닝 시퀀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익숙해서 검색해 보니 드라마 <눈이 부시게> 10화의 ‘그’ 장면에 나오는 음악이었다. 잔잔한 음악 아래 휘몰아치는 감정...


Richter : on the nature of daylight


https://youtu.be/b_YHE4Sx-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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