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wooRan Jul 14. 2020

내 절반을 받은 나의 모든 것

축 200일

삶은 쉽지 않다. 점심으로 라면을 먹으며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음식물 씹기와 삼키기조차 반복적인 훈련으로 습득되는 습관이다. 생후 5개월부터 시작된 초기 이유식을 하루하루 진행하면서 삶의 어려움을 온몸으로 느낀다. 입 속에 든 음식물을 삼키는 일이 익숙지 않은 아이는 입을 벌리고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턱으로 삼켜지지 못한 한우죽이 줄줄 흘러내리고 나의 넋도 함께 흘러가 버린다.


분유만 먹일 땐 10분이면 끝날 식사 시간이 먹이고, 안 먹고, 먹이고, 밀어내고, 먹이려고 시도하고 안 먹으려고 소리 지르고, 한 입만 더 먹자고 들이민 숟가락을 손으로 잡고, 그 손으로 자기 얼굴을 비비고, 이유식 범벅인 옷을 벗기고 씻기고 보습 크림 바르고 배가 덜 차 우는 아이 달래 가며 분유 보충하고. 6개월부터 이유식 2단계가 시작되고 이 짓을 하루 두 번 반복한다. 뻔한 표현이 싫지만 이건 말 그대로 전쟁이다.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전쟁의 한 시간이 쌓여 하루가 되고 전투의 하루가 모여 200일이 된 날, 아이는 아기새처럼 입을 벌리며 이유식을 넙죽 받아먹는다. 어서 달라고 테이블을 손으로 탕탕 두드리며 재촉한다. 빨대컵 사용이 서툴러 숟가락으로 보리차를 한 숟갈씩 떠 주면 입이 먼저 마중 나온다. 분유병을 주니 자기가 두 손으로 잡고 먹는다. 앉는 자세에 꽤 익숙해져 내 다리 사이에 앉아 내가 책을 읽어주면 고개를 들고 나를 빤히 쳐다본다. 인형을 가지고 혼자 노는 아이 옆에서 내 책을 읽고 있으면 내게 다가와 내 손에 든 책을 한참 만지작거린다. 거울을 보여주면 제 얼굴을 한참 보다가 뭐가 재미있는지 내 가슴을 두드리며 꺄르륵 웃는다. 혼자 잘 놀다가도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찾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방긋 웃는다.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역시 뻔한 표현은 사양하고 싶지만, 이건 말 그대로 행복이다.


만세! 200일!!


200일까지 하루도 쉽게 넘어가는 날이 없었다. 작은 은행잎만 한 손이 움직여 뭔가를 잡는 동작 하나까지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하루 여섯 번 똥기저귀를 갈다 하루 한 번에서 두 번 일정한 시간에 대변을 누기 시작한 날, 2시간 간격의 수유 텀이 4시간을 넘어간 날, 통잠을 잔 날, 유모차에 태워 나와 아이 단 둘이 외출한 첫날, 모든 날이 새로웠다. 줄거리를 예측할 수 없는 소설의 페이지를 넘기듯 뒤에 어떤 내용이 나올지 때로는 두려워하며, 때론 기대에 차서 조심스럽게 하루를 넘기고 하루를 쌓았다.


7월 1일과 2일이 이렇게 다른 날이었나? 1일의 아이는 눈썹을 추켜올리는 표정이 꼭 남편을 닮았고, 2일의 아이는 밥 먹는 나를 관찰하는 눈매가 그냥 나였다. 어제와 오늘이 다른 아이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100일 단위로 앨범을 만들어 기록하기 위해 포토북을 만들다 한참을 멍하니 사진만 구경했다. 눈과 코와 귀, 입까지 얼굴 부품은 남편에게서 수주받았는데 전체적인 디자인 원안은 완전 나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다가 남편이 불의의 사건에 휘말려(?) 아기로 변해버린 것 같아 소리 죽여 웃은 적도 있다. 그러다 잠에 깨서 나를 보며 웃는데 또 다른 내가 웃고 있다.


엄마거는 다 신기해 궁금해


내 절반을 이어받은 이 아이는 이제 나의 모든 것이다. 지난주 6개월 접종 후 처음으로 접종 열이 났다. 38도가 넘어가는 열이 접종 하루가 지나도 꺼지지 않아 해열제를 먹였다. 2시간마다 열을 재며 초조했다. 한 번 고열로 입원했던 경험이 예민하게 나를 몰아세웠다. 원인이 확실한 열이라도 쉽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이 열이 예방접종 주사 속 병균을 물리치며 강해지는 과정을 알리는 신호니까, 내일 아침엔 보송보송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웃어주기를, 최소한으로 가능한 짧게 아프기만을 기도했다.


내 삶의 전부가 된 이 작은 존재를 향한 내 마음을 어떻게 형상화해야 하나. 마음은 무한하고 언어는 빈곤하다. 고전의 언어를 잠시 빌려,


북쪽 깊은 바다에 물고기 한 마리가 살았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 하였습니다. 그 크기가 몇천 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 물고기가 변하여 새가 되었는데, 이름을 붕이라 하였습니다. 그 등 길이가 몇천 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한번 기운을 모아 힘차게 날아오르면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았습니다.

-[장자] 제1편 '자유롭게 노닐다' 중에서


크기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물고기 곤과 같이, 길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새 붕과 같이, 우리의 사랑은 그 거대한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는 기세와 같다. 온 세상이 뒤흔들릴 정도의. 이걸 막을 수 있는 건 없다.


200일, 우리에게 와 줘서 고마워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는 사랑을 먹고 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