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만 아니었어도…
오늘은 형이 나 대신 대리입찰을 해주었다.
입찰 당일 실시간으로 전화 통화를 하며 코치를 해주었다.
형은 자기 도장을 안 가지고 왔다며 1차 멘붕이 왔다. 도장 케이스를 가져왔는데 안에 도장이 없었다고 한다. 어이가 없었지만 형을 탓하고만 있을 순 없었다. 다행히 형 도장은 없어도 되니 지장 찍으라고 했다.
또 조금 있다가 형에게 전화가 왔다. 인감증명서도 넣어야 되냐고 묻는다. 당연하지. 내가 입찰 대봉투 안에 들어갈 것 3가지를 얼마나 여러 번 강조했던가!
1) 기일입찰표
2) 돈봉투
3) 인감증명서
형은 완전 멘붕이 되어 “인감증명서를 안 가져왔네. 아 진짜..”라고 짜증을 내는 건지, 미안해하는 건지 모를 말투로 얘길 했다. 성내며 울고 싶은 건 나인데 말이야.
이 말을 들었을 땐, 정말 단전 깊숙한 곳에서 끌어 오르는 분노가 용암처럼 분출하며 올라왔다. ‘아! 정말.. 형이고 모고 그냥 쌍욕을 날리고 싶었지만…’ 앞으로 계속 대리입찰 부탁을 해야 했기에 화를 겨우 누르고 쿨한 척하며 “처음이라 그럴 수도 있지. 어쩔 수 없지 모… 인감증명서 없으면 입찰 못해. 그냥 집에 가. 어찌 됐든 오늘 수고했고..” 형은 미안하게 됐다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물건 검색/분석/임장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허무감이 밀려왔다. 정말 도움이 안 된다며 형을 계속 탓하고 저주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산이 빙빙 돌고 뚜껑이 열리려고 한다.
그렇게 숨을 고르며 진정하고 있는데 형에게 카톡이 왔다.
“입찰했다”
오잉! 문자를 한참을 쳐다봤다. ‘인감증명서가 없는데 어떻게 입찰했다는 거지? 미안한 마음에 인감증명서 안 넣고 그냥 넣었다는 건지??’ “인간증명서 없는데 어떻게?”라고 물으니 다행히 가져왔다고 한다. 처음이라 정신이 없었다며 너스레를 떤다. ‘이 인간이 정말.. 형만 아니었어도…’
어찌 됐든 다행이었다. 모든 서류가 구비되었고 입찰을 넣었다. 경쟁률은 치열했고 결과는 깔끔하게 패찰이었다! 형은 “오늘 당황해서 맥 빠진다”며 고기 굽는 사진과 함께 “덕분에 새로운 경험 했다”며 소감을 전했다.
“처음엔 좀 그래, 다음번에 훨씬 쉬울 거야” 애써 형을 안심시키며 다음 입찰도 부탁한다며 마무리했다.
존경하는 형님~ 계속 부탁해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