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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O Apr 20. 2022

입찰 임파서블?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고로 재미가 있다.

입찰할 물건이 4월에 몰려있다.

이번엔 연차를 내고 입찰장으로 향했다.

몇 번의 입찰/패찰 경험으로 입찰이 조금은 익숙해졌다. 내일이 입찰일인데 보증금을 수표로 바꾸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 은행 문 열면, 바로 바꿔서 입찰장으로 가면 되겠지’라고 느슨하게 생각했다. 기일입찰표도 전날 미리 작성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쓰면 되지 머..’하며 느슨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사람은 익숙해지면, 느슨해진다. 아직 1건도 낙찰받지 못한 내가 벌써 이렇게 헤이해 지다니 스스로도 놀랍다.​


다행히 아침에 일어나 기일입찰표를 작성했다. 이것도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아침을 챙겨 먹고, 아이가 깨서 아침도 챙겨주며 여유를 부렸다. 은행은 9시에 열겠지. 느슨하게 있다 보니 8시 45분이다. 은행까지 걸어가는 시간을 생각 못했다. 이때부터 시간에 쫓기기 시작했다. 9시 조금 넘어 집 근처 은행에 도착하니 문이 닫혔다. ‘뭔 일이래?’ 당황하며 닫힌 문 옆에 코로나로 인한 업무시간 조정 알림문을 발견했다. 9시 30분에 문을 연다는 것이다. 난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키며 ATM에서 100만 원 수표를 찾을 수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가능했다. 한 번에 최대 600만 원을 찾을 수 있었다. 난 100만 원권 수표 6장을 찾았다. 그리고 또 뽑으려고 하니 ATM은 삐삐 거리며 일일 한도는 600만 원이라는 종이와 카드만 연거푸 뱉어냈다. 보증금 443만 원이 부족했다. 난 현재 시간을 체크하고 다시 짱구를 빠르게 굴렸다. 일단 지하철을 타고 법원 근처에 은행으로 가자. 시간이 빠듯했다. 어쩌면 입찰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할 것만 같은 불안이 밀려왔다. ​


법원 근처에는 은행이 없었다. 난 주변을 검색해 2 정거장 떨어져 있는 역 근처 은행을 발견했다. 난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전속력으로 은행에 돌진했다. 대기인원 4명, 안내해주는 직원이 금방 빠질 거라며 안심시켜주었다. 그리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카드와 신분증을 창구직원에게 내미니 “카드로는 돈을 찾을 수 없다”라고 한다. 통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매번 가져 다니던 통장도 집에 두고 왔다. 멘붕이었다. 다행히 생체인식 등록을 하면 된다고 해서 부랴부랴 등록을 하고 현금 443만 원을 찾았다. 입찰 마감까지 15분 전. 난 또 전속력으로 지하철로 뛰어갔다. 전철은 5분 후 도착이었다. 법원이 있는 남한산성역까지는 지하철로 3분이 걸렸다. 난 남한산성역에서 내려 또 냅다 뛰었다. 오늘 운동 지대로 하는 날이다. 다리는 점점 후덜 거리는데 성남지원은 지대로 오르막길이었다. 허벅지가 터지기 직전이다. 무릎이 아파온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남은 시간은 5분. 드디어 입찰장에 들어섰다. 법원 관계자는 마감시간 안내 멘트를 하고 있었다. 2분을 남겨두고 겨우 투찰 했다. 정신이 없어 보증금 반환표도 잊은 채 돌아서는 나를 관계자가 급히 부르며 반환표를 챙기라고 했다. ​


안도하며 화장실을 다녀오고 개찰 순서를 기다렸다. 내가 입찰한 물건엔 9명이 들어왔다. 그중엔 해당 빌라에 여러 채를 낙찰받은 사람도 입찰에 참여했다. 난 경매 사이트에서 검색을 통해 입찰자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한 빌라에서 저렇게 여러 채를 낙찰받았을까? 그녀의 낙찰 비법이 궁금했는데, 그녀가 바로 입찰에 참여했던 것이다. 그녀는 평범한 중년의 여자로 옷차림이 깔끔하고 프로페셔널해 보였다. 전문직 같기도 하고, 사업가 같기도 한 분위기를 풍겼다. 최종 낙찰은 어떤 아저씨가 감정가에 80%선에서 가져갔다. 2등은 200만 원 차이로 바로 그녀였다. 역시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낙찰도 받아본 사람이 더 잘 받는 느낌이 들었다. 내 기준에선 턱없이 높은 입찰가였지만, 저마다 다른 전략을 가지고 있으니 저 금액에 낙찰을 받아도 그들에게 계획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하여간 2등을 차지하고 패찰한 그녀는 깔끔하게 보증금을 챙기고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뒤돌아 입찰장을 빠져나갔다. 뭔지 모를 냉철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나 역시 패찰을 하고 보증금을 돌려받고 입찰장을 나왔다. 이로써 대리입찰 포함 6번의 입찰이 모두 패찰로 끝났다. 하지만 그 전 패찰 했을 때와 살짝 느낌이 달랐다. 패찰 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전에는 패찰 후 실망감이 몰려오고 다음에 허탈감에 다운이 되었다. 억지로 기분을 끌어올려 다음 입찰을 준비했지만, 이번에는 실망감도 허탈감도 없었다. 어느 정도 내 예상대로 흘러간 느낌이었다. 낙찰가를 모두 맞출 순 없지만, 어느 정도 감이 생겼다고 할까? 6번 만에 감이 생겼다고 하면 오바일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다음 입찰에 대한 실마리를 잡은 느낌이 들었다. 선택과 집중. 물건 선별과 타켓팅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했다.


제일 첫 번째는 수익률! 내가 정한 수익률 이하의 물건은 과감히 패스. 쳐다보지도 말라.


두 번째는 연식이 오래된 빌라를 공략하라. 아무도 안 살 것 같은 빌라를 공략하라.


세 번째 많이 입찰하려고 애쓰지 마라. 타켓팅에 들어온 물건만 입찰에 들어가면 된다. 에너지를 아껴라. 시간은 나의 편이다.​


오늘 입찰을 통해 딱 꼬집어 얘길 할 순 없지만 ‘경매라는 게 이런 거구나! 묘하게 재밌는 걸!’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오히려 배울꺼리가 생기고 그 과정이 재밌다. 경매가 점점 재밌어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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